"그러니까, 쉘터에 있었다고?" T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한 손에는 이빨 자국이 남은 에너지바가 들려 있었다. "... 그게 한 달 넘게 연락이 없던 이유라고?"
그리고 손에 든 에너지바를 거칠게 베어 물었다.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나를 향한 분노의 표시였다.
"용케 섬까지 찾으러 가지는 않았네." 나는 무심한 말투로 대꾸했다. 형은 대답 대신 조용히 입속의 것을 잘근잘근 씹었다.
"세 명." 천천히 에너지바를 삼키고 나서, 형이 낮게 말했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 K 서장을 제외하고 내가 마주친 사람의 수야."
형의 말투엔 침울한 기색이 가득했다.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는 손끝이 조금 떨렸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혹시 지금 이 사람이,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아닐까 하는... 네 말이 맞았던 걸지도 모르겠어. 주사는 정말 저주였을지도."
나는 말없이 형을 바라보았다. 답지 않게 기운이 빠진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던 형은 큰 숨을 내쉰 후, 에너지바를 한 입 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쉘터에 간 이유가 뭐야? 역시 공모전에 지원한 거지?"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내 앞에는 여전히 포장도 뜯지 않은 딸기맛 에너지바가 놓여 있었다.
"쉘터는 어땠어? TV에서 본 그대로야? 정말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이던가?"
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말을 듣자 차가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그렇지. 아름다움의 잣대가 완전히 전도된 세상이니까."
앞에 놓인 딸기맛 에너지바를 내려다보았다. 포장지에 그려진 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와 보니 그 그림마저 조악했다. '가짜'인 티를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 그래도, 여기보단 나아..."
"응? 뭐라고?" 다 먹은 에너지바 포장지를 접으며 형이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내가 얼버무렸다.
"근데 여긴 왜 다시 온 거야? 여긴 지금 위험해. 뉴스 봤지?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어." 형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윗선에서는 피해자들끼리 벌인 불행한 사고로 정리하려고 하지만, 난 알아. 그건 반드시 범인이 따로 있는 사건이야. 도주 중인 진짜 범인이 아직 이 거리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죽을 만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손끝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형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 죽을 만한 사람? 그런 게 어딨어.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살인은 살인이야. 범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러야만 해."
형이 뜨거운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보고 있으려니 짜증이 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대단한 정의의 심판자 납셨군. 이미 사건은 종료됐다던데, 형이 뭘 어쩌겠다는 건데?"
"어떻게든 내가 그놈을 직접 찾아낼 거야. 그리고 끌고 가서 눈앞에 들이밀 거다. 진범이 누군지 명확히 보여주면, 중앙 경찰이 다른 결정을 내려주겠지."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쉘터에서 막대한 계약을 따내고,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을 하고, 이 세상의 뒷면을 보고 올 동안 T는 무얼 했을까? 고작 두 명이 전부인 순찰대에 소속감을 갖고, 아무 의미 없는 역할극을 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의 같잖은 정의감을 위해.
형의 세상은 그게 전부였다. 스스로의 신념과 정의를 따르는 것. 그것이 무척이나 원대하고 숭고하다 믿겠지만, 그건 E 구역 변두리라는 조그만 세계 안에 갇힌 한 인간의 착각일 뿐이었다. 형의 믿음과는 달리 그건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 없고, 어떤 운명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게 언제나 나를 화나게 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을 거야." 조금은 연민이 담긴 눈으로 말했다. 형은 미소 지었다.
"그래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 말이지. 그게 결국 변화를, 내가 바라는 미래를 가져올 거라고 믿으니까."
"형이 바라는 미래가 대체 뭔데?"
답답해하는 내게 형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 나는 움찔했다.
"... 정확히 말하면, 그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지." 형은 자신이 한 말에 멋쩍은 듯 뒤늦게 시선을 피했다.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그건 한 번도 바뀐 적 없어. 법과 정의가 제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 규칙은, 강자가 정하는 거야."
그 말은,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쉘터의 사람이나 할 법한, 선민의식이 녹아든 문장.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나는 이미 쉘터의 사람이었다. 형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N 때문이지?" 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녀는 떠나버렸잖아. 그게 너한텐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겠지. 그래도, 난 그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평생 거짓에 속아 쳇바퀴를 굴러야 했을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렸고, 그들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쥐여줬으니까."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유? 이대로 쓰레기 같은 삶을 살다가 말라죽을지, 아니면 섬으로 가서 주사 맞고 편안하게 죽을지 정하는 거? 그게 형의 문제야. 언제나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잖아. '살다 보면 다 잘 되겠지, 그렇게 믿는다'같은 낙천적인 말만 반복하면서, 언제나 본질을 무시한다고."
형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고, 나를 따라 언성을 높였다. "그 본질이라는 게 뭔데? 그 잘난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네 인생이 얼마나 나아졌는데?"
나는 여전히 형을 노려보았다. 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장담하는데, 네가 그렇게 헛소리 늘어놓을 시간에 따스한 말 몇 마디만 해줬더라면 N은 지금 네 옆에 있었을 거다."
"이 X발!" 나는 테이블에 놓인 딸기맛 에너지바를 들고 벽 쪽으로 집어던졌다. "N? 도대체 N이 누군데! 누군진 몰라도 형처럼 한심하게 살았으니 섬으로 꽁무니 뺐겠지. 그게 왜 내 탓이야? 멍청한 연놈들 몇이 자살하든 말든, 난 관심 없어.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형의 눈이 커졌다. "... N이 누구냐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
"그만! 쓸데없는 논쟁은 집어치워. 난 전시 준비하러 가야 해. X발, 이런 X같은 곳에 다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바닥에 놓인 가방을 낚아채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모든 것과 단절하고 싶었다. 단호하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T는 홀로 거실에 남겨졌다.
.
.
.
T는 잠시 자리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원래도 세상을 혐오하고,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던 아이였지만, 지금의 J는 무언가 달랐다. 쉘터에 소속감을 갖고 오만에 빠진 것?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두터운 오만과 혐오의 이면, 그 너머에 꿈틀대는 무언가. 폭력으로 문제를 덮어온 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그 기묘한 도덕적 공백. 수많은 범죄자들이 풍기던 그 악취를, 그는 어째서인지 J에게서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같았다. 미스터 나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것. E 구역에 몇 명이 남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정의를 쫓고, 이곳을 다시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과업이었다. 언젠가, 떠난 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곳이 과거의 온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에너지바를 주워 보관함에 넣었다.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현관 쪽으로 몸을 돌리던 찰나, 묘한 이질감이 그의 등을 타고 스쳤다.
직감이 반드시 그것을 다시 확인하라고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방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대충 벗어놓은 검은색 후드티가 있었다.
"J가 아끼던 후드잖아..."
외출할 때 입은 옷은 반드시 바로 세탁기에 넣으며 깔끔을 떨던 J. 그가 저런 식으로 바닥에 더러운 옷을 그대로 두는 일은 없었다. 원인이 이것이었나 싶어 T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이질감이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후드티를 주워 올렸다. 검은색의 품이 여유로운 후드. 등 뒤엔 손 자수로 수놓인, 피처럼 검붉은 장미....
"... 원래 노란색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