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과 외곽을 가르는 거대한 황무지. 그 지하를 관통하는 좁고 긴 터널 안, 스포츠카 엔진음이 메아리쳤다. 속도계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라 있었지만, 마음이 급한 나는 가속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그새 또 얼마나 일을 벌였을까? 설마, 벌써 경찰에게 잡힌 건 아니겠지.
쉘터로 향하던 날, E 구역을 벗어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울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때, 그녀와 함께 갔어야 했는데... 그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몇 달 만에 밟는 E 구역은 칙칙하고, 한산했다. 거리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 아래에 넘어진 쓰레기봉투만이 안부를 건넸다.
'여전히 볼품없고 추하다. 아니, 어쩌면 전보다 더...'
숨을 쉬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거칠고 두꺼운 입자가 목을 찔러댔다. 가슴팍을 부여잡고 기침을 했다. E 구역에만 있었을 때는 몰랐지만, 이곳의 공기는 중앙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탁했다. 대낮임에도 하늘은 우중충했고, 대기는 마치 불투명한 막이 겹겹이 드리워진 듯했다. 이 세계는, 이런 근원적인 것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발치에 에너지바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며 날아왔다. 시선만 살짝 내려 그것을 바라봤다. 짜증이 밀려왔다. 정말이지 더럽고 불쾌한 곳이다... 구두에 이물질이 묻지 않게 쓰레기를 발끝으로 툭 쳐냈다.
똑같이 생긴 회색 건물들 가운데 서니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느낌이었다. 단서는 하나, 그녀와 늘 함께하던 장미 향. 하지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감각을 집중하려 해도 모든 것이 뿌옇기만 했다. 리얼 월드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이런 상태였다. 결국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그녀를 찾아 정처 없이 눈밭을 헤매던 그날처럼.
한 시간쯤 지났을까, 흐릿한 정신으로 거주 구역을 거닐던 중 시야에 희미하게 초록빛이 스쳤다. 중앙 농원인가? 새콤달콤한 딸기가 있던...
아니, 여긴 쉘터가 아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E 구역의 초록이라면, 도시공원일 것이다. 나는 그쪽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은 방치된 지 오래였다. 억센 잡초가 길을 덮었고, 산책로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손으로 헤치며 나아갔다. 날벌레들이 윙윙대며 얼굴을 스치고, 바람에 흔들린 잡초는 서로 부딪혀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찌르르, 찌르르.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생기가 느껴졌다. 거주 구역의 황폐한 침묵과 대조되는 인상. 인간의 손을 벗어나,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활력. 오히려 그 생생한 초록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을수록 더 왕성하고 만연하는 듯했다.
비거주 구역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비거주 구역, 즉, 바다와 가까운 곳. 오염도가 심하고, 돌연변이 생물이 출몰해 출입을 제한한 곳. 그건 인간 문명이 자연에게 벌인 대죄의 말로였다. 바다는 모든 혐오와 분노, 오염을 말없이 집어삼켰다. 그 아래 무엇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을지 이젠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시커먼 파도만이, 그 속을 감추려는 듯 해안선을 타고 불투명하게 부서질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멀어지는 걸 택했다. 그래서 쉘터는 내륙에 세워졌고, 그 결과 풍족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날 내가 본 진실도, 감추고 외면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애초에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 이 떠나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
... 누가 떠났었지?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 거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그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붙잡을 수가 없었다. 별채에서 작업에 몰두하던 때는 이보다 정신이 맑고 선명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리얼 월드에 간 이후로는 생각이 흐리고 어지럽기만 했다. 귓가에 여전히 베이스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끝이 저리고, 귓가엔 환청이 맴돌았다.
'죽지 않는 주사는 완벽히 역할을...'
'혹시... 칩 좀 갖고 계신가요? 저, 아직 멀쩡해요...'
'욕망, 생존, 폭력, 본능. 그게 이 세계의 본질...'
'강자에겐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가만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이 변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강한 조명, 그리고 환호성. 여긴 케이지 안이었고, 난 그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소리쳤다.
"겁쟁이 새끼! 도망만 치지 말고 발길질이라도 하란 말이야!"
당황하며 고개를 들자, 내 앞으로 뜨거운 눈빛의 상대가 돌진해 왔다.
"지금! 가드가 열렸잖아, 끝내버려!"
뒤늦게 그가 날린 주먹을 피하려 했지만, 늦었다. 주먹이 턱에 정확히 꽂혔고, 별이 번쩍거리더니 시야가 천천히 기울었다. 느릿하게 늘어지는 장면 속에, 사람들의 함성소리는 물속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먹먹해졌고, 나는 계속해서 바닥과 가까워졌다.
풀썩.
예상보다 부드러운 감각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여전히 도시공원 안이었다. 내가 쓰러진 건 잡초 더미 위였다. 날벌레들이 우수수 날아올랐다. 피로감이 몰려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시야에, 익숙한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 딸기?"
시선이 닿는 곳에, 딸기 무늬 옷을 입은 작은 살인자가 벌레의 날개를 뜯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듯했지만,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벌레에게 시선을 돌렸다. 날개를 조금씩, 천천히 뜯어냈다. 그럴 때마다 벌레는 그녀의 손 안에서 거세게 발버둥 쳤다. 이미 날개를 잃은 벌레들이 그녀의 주위에 잔뜩 흩어져 있었다. 미동이 없는 것도 있었고, 비틀거리거나 움찔대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는 날개를 모두 떼어낸 벌레를, 마치 날아보라는 듯 위로 툭 던졌다. 그러나 벌레는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다른 것들처럼 땅 위에서 몸을 뒤틀며 꿈틀거렸다.
"뭐야!" 그녀는 심통 난 표정으로 투정을 부리며 잔디 더미를 마구 헤집었다. 날벌레들이 우수수 튀어나왔고, 그중 하나를 덥석 잡았다. 그리곤 다시 앉아 그것의 날개를 뜯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잔디에서 몸을 일으킨 후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벌레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날개를 전부 떼어낸 뒤 또다시 위로 던졌고,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발버둥 쳤다. 곧 그녀의 그림자가 그것을 덮었다.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벌레를 밟아 뭉갰다.
"재미없어. 지루해!" 그녀는 땅에 널린 벌레들을 연신 밟아대며 짜증을 냈다. 그러다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주머니에 한 손을 넣으며 내게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쓱 꺼낸 손에는, 주사기가 쥐어져 있었다.
"어? 나한테 쓰려는 거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재밌는 게 없는 걸 어떡해." 그리고 활짝 웃었다. 그 미소에 등줄기가 저릿해졌다.
"잠깐, 잠깐만! 날 죽이면 앞으로 평생 재미없을걸. 내가 재밌는 곳으로 데려가 줄게. 쉘터라고 알아?"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재밌는 곳?"
"그래, 재밌는 곳. 내가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그녀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조심스레 숨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커다랗고 까만 접시처럼 생긴 곳. 가지각색 건물들이 있고, 멍청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우스꽝스러운 장신구로 치장한 채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지. 덩치 큰 짐승 같은 인간들이 공을 가지고 놀면, 다른 이들은 그걸 보며 소리를 질러 대. 노래하고, 춤추고, 묘기를 부리는 게 직업인 사람들도 있지. 거기선 에너지바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리고 겉으론 고상한 척 가식을 떨어대지만, 그 아래로는 더러운 욕망을 채우는 거대한 우리가 숨어 있어. 나랑 같이 가자. 가서, 다 망가뜨리자.
그녀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그녀를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알아듣긴 한 걸까?...'맛있는 음식'이란 말에 꽂힌 건가?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닥에서 비틀거리는 벌레를 하나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고민도 없이 그것을 입에 넣었다.
"앗, 그걸 왜 먹어!" 내가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녀의 입안에서 바삭하고 물컹한 것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고급스럽고 맛있는 디저트를 베어 문 듯한 소리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웁, 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입에 있는 걸 뱉어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그건 맛있는 음식이 아니잖아! 내 말 제대로 듣긴 한 거야?"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고 나니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녀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게는, 도무지 존중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혀를 연신 쓸어내리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멍청한 사람들이 맛있는 걸 갖고 있다는 거지?"
그녀는 입맛을 다시더니, 눈을 감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번뜩 눈을 떴고, 갑자기 이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린 내 옆으로, 빨간 딸기가 그려진 옷자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대로 산책로를 향해 달려갔다.
황급히 그녀를 쫓았다. 도무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작은 변덕쟁이는 저 멀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 밑에는 누군가 바둥거리고 있었다. 당혹감과 억울함을 어디 호소할 새도 없이, 밑에 깔린 사냥감은 금세 움직임을 멈췄다. 허벅지에는 작은 주사기가 꽂혀 있었다. 그녀는 무고한 피해자의 옷을 풀어헤치고 샅샅이 뒤졌다. 뒤늦게 현장에 가까이 선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눈앞에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그건 아득할 정도로 붉었다. 너무나 선명해서, 어떤 색이든, 그것을 얼마나 많이 섞든 조금도 변치 않을 것만 같은 붉은색.
저건 신이 내린 심판자가 아니다. 그저 무언가 결여되어,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일 뿐이다. 마치 짐승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잖아!" 날카로운 작은 짐승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아니, 아니야. 여길 말한 게 아니야. 여기에는 그런 게 없어. 여긴 이제 아무것도 없어..."
바닥에 늘어진 시체를 천천히 끌어 잔디밭 안쪽으로 옮겼다. 그것은 그저 시체일 뿐이었다. 예술의 오브제도, 피조물도 아니었다. 단지 짙은 붉은색 욕망이 대충 씹어 먹고 뱉어낸 찌꺼기일 뿐이었다. 그것은 일말의 미적 욕구도 고취하지 못했다. 독창적 재해석이나, 신의 한 수가 될 터치도 필요 없었다. 의미가 없었다. 그 어떤 것을 덧칠하더라도, 그건 여전히 붉은색일 테니까.
또 내가 착각한 건가. 현실을 왜곡하고, 환상에 빠지고... 또 이렇게 허무하게 꿈에서 깨어나는 건가? 퍼즐을 맞추고, 뒤엎어버리고, 다시 맞추고, 다시...
"그래? 여기에는 없단 말이지?" 그녀는 금세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되어 어딘가로 또 뛰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를 더는 쫓지 않았다. 잔디밭 깊은 곳으로 가 대충 바닥을 파고 시체를 묻었다. 흙과 잔디로 범벅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피로와 함께 짜증이 몰려왔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그녀에 관한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가장 혐오했던 존재였다.
그녀는 '변수', 그 자체였다.
변수는, 언제나 상황을 통제 밖으로 이끈다. 규칙을 비웃고, 정돈된 환경을 어지럽히고... 끝내 내가 이룬 것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지금 내 눈에 그녀의 순수함은 아름다운가?
내가 그녀에게 본 것은 순수한 욕망인가,
아니면
세상에 대한 나의 혐오와 폭력의 투영인가?
나의 욕망은, 진정 순수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