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를 따라 향한 곳은 도박장이었다. 어두운 조명이 담배 연기 사이로 새어 흐르고, 칩이 서로 부딪히며 찰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공장 동료들이 에너지바를 걸고 카드 게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땐 흥미가 없던 나머지 구경조차 오래 하지 않았다.
C는 내게 자신의 칩을 조금 빌려주었다. 자리에 앉아 룰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AI 딜러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어 플레이어에게 나눠주었다. 공유 카드가 절반 공개되고, 플레이어들은 '다이'를 외치거나, 자신의 칩을 내밀어 베팅했다. 앞선 몇 라운드 동안, 나는 게임의 룰을 완벽히 숙지하기 전까지 계속 다이를 외쳤다. C는 베팅에 성공할 때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고, 패배하면 혀를 찼다.
게임을 지켜보면서, 처음 룰을 들었을 때 생각과는 달리 반드시 좋은 패여야만 베팅에 승리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블러핑이라는 겁니다. 상대는 내 패를 알 수 없으니까, 연기를 하는 거죠." C가 말해주었다.
그때부터 난 블러핑을 했다. 칩이 얼마 남지 않은 초보자가 하는 묘한 블러핑에 플레이어들은 소극적으로 대처했고, 거의 사라졌던 칩을 전부 복구했다. C는 조용히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패를 확인하고, 공유 카드가 절반 공개되었다. 미묘한 공기의 흐름 속에 나는 모든 칩을 내밀어 '올 인'했다. 테이블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움찔했다. C는 다이를 외쳤다.
"어이, 이건 그냥 죽어줄 순 없겠는데. 속임수가 다 티가 나잖아." 제일 왼쪽의 남자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 베팅에 응했다. 내 오른쪽의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도 자신의 패를 들춰보더니 칩을 세어 앞으로 내밀었다. 셋은 숨을 죽여, 딜러가 열어주는 남은 공유 카드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왼쪽의 남자는 미간을 구기며 패를 공개했다. "8 하이. 빌어먹을."
이어서 내가 패를 내밀었다. "7 트리플."
오른쪽의 여자가 내 패를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패를 던졌다. "1, 7 투 페어. 운이 좋았네, 당신."
내 승리였다. 딜러가 칩을 정리하여 내게 쌓아주었다. 순식간에 크게 불어난 칩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재능이 있는데요, J. 어디서 배운 건 아니죠?" C가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며 말했다. 나는 힘차게 손뼉을 맞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C에게 받았던 칩을 돌려주고, 남은 걸로 바에서 칵테일을 사서 테이블에 돌렸다. 그래도 수중에는 꽤 많은 칩이 남아있었다.
조금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바로 섬을 쌓을 수 있을 정도의 판돈이 오고 가는 게임에서 돈을 따내는 희열도 좋았지만, 상대를 속이고 이기는 승부 자체가 너무나도 짜릿하고 흥미진진했다. 진짜 딸기를 처음 먹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장이 크게 뛰었다. 독한 듯 상쾌하고 달콤한 칵테일을 한 모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시야가 일렁이고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낮게 울리던 리드미컬한 베이스 음이 이제는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 진동음을 따라 몸의 혈류가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피가 들끓자, 아까 봤던 투기장의 기억도 다시금 떠올랐다. 주먹이 턱에 꽂히고 피와 살점이 튈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뛴 건 왜였을까?
결국 몇 판만 더 해보기로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칩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고, 사이사이 마시는 칵테일에 취하고, 피를 말리는 승부의 희열에 취했다.
맹렬하게 터지는 도파민의 끝에 피로감이 몰려오면, 아래층의 호텔에서 잠을 잤다. 눈을 뜨면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카드 게임이 질리면, 쉘터의 여러 프로 스포츠 리그 경기를 보며 승패를 베팅했다. 싸움이 시작되면 투기장에 갔다. C의 분석을 들으며 마음에 드는 선수에게 판돈을 걸었고, 상대를 찢어 죽이라며 소리쳤다.
모든 매치가 종료되면 다시 도박장에 갔다. 카드 게임을 하고, 스포츠 경기를 보고, 투기장에서 소리 지르고, 칵테일을 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부드러운 침대에서 잠을 자고...
3주가 지났다.
호텔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샤워를 마친 후 버릇처럼 도박장에 갔다. 레이싱 경기를 시청하는데 유독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쉘터의 프로 스포츠 리그는 승패가 거의 명확했다. 그나마 팀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는 볼만했으나, 개인끼리 맞붙는 경우는 정말 이변이 없었다. 강세가 예상된 선수가 대부분 예측대로 승리했다. 지루함을 느낀 나는 카드 게임을 하러 갔다. 오늘도 큰돈을 땄고, 내 잔고는 이곳에 오기 전보다 세 배 늘어나있었다.
그래서 이 돈으로 무얼 하지? 이 승부의 목적이 뭐지? 승자에 대한 보상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이겨도 져도 달라지는 게 없는 승부라면 어느 부분에서 경쟁심을 느껴야 하지? 이 게임은 더 이상 내게 치열한 전장이 아니었고, 산처럼 쌓인 칩으로 언제든 먹고 마실 수 있는 술과 음식 역시 따분하기만 했다. 주위엔 매일 보이는 똑같은 사람들. 반복되는 베이스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때, 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후줄근한 차림의 남자가 게임 테이블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칩을 전부 잃은 모양이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가드들이 팔다리를 잡고 밖으로 끌고 갔다. 몸은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도박장에는 가끔 인상착의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쉘터의 부자들과는 달리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절뚝거리거나 온몸에 멍이 든 사람,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야 그것이 의아해진 나는 C에게 물었다.
"C, 저들은 쉘터의 사람이 아닌가요?" 내 물음에 C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것 같았다.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는 하던 카드 게임에 다이를 외치고 패를 던졌다. 꽤나 좋은 패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에 데려갔다.
C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셨고, 침묵 사이로 술잔과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청아하게 울렸다.
“... J, 쉘터는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뜬금없는 주제로 조용히 입을 연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쓸쓸함이 섞여 있었다. "애초에, '영원'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까요. 외부에서 온 당신은 모르겠지만, 쉘터에 입주하려면 주사를 하나 더 맞아야 합니다. 어떤 주사일 것 같습니까?"
"... 어떤 주사죠?" 내가 조용히 되물었다.
C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불임 주사입니다. 자연의 순환 섭리를 끊고자 하는 인간의 발악이죠. 완공된 이후 줄곧, 쉘터의 인구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외부인이 입주 자격을 얻어 조금 늘어날 뿐이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요? 그럼, 인구가 줄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죽지 않는 주사'는... 완벽하지 않잖아요."
C는 어두운 웃음을 지었다. "당신도 알 겁니다. 복지시설의 그 사건. 죽지 않는 주사의 치명적인 오류. 그로 인해 '안락사 섬'이 등장하게 된 배경..."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죽지 않는 주사가 완벽하지 않다는 당신의 말은, 틀렸습니다." C는 고개를 돌렸다. "그건 완벽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박장 반대편의 통로로 향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좁은 복도를 따라, 더 어두운 구역으로 내려갔다. 붉은 조명이 눈앞을 가득 채웠고, 벽에는 낙서와 낡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문마다 희미한 초록불이 깜빡였고, 곳곳에서 신음 소리와 쇠 긁히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벽에 기대앉아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홍등가’였다.
문이 반쯤 열린 방에서 깡마른 여자가 한쪽 다리를 끌며 기어 나왔다. 온몸이 푸르게 멍들었고, 얼굴이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안쪽에 있던 사람이 문을 차 닫았다. 여자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흩어졌다. 도박장에서 사용하는 칩이었다. 그 순간,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칩을 줍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을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쓰러진 여자는 그저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축축해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 그녀는, 순간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 칩 좀 갖고 계시나요? 저, 잘하거든요. 아직 멀쩡해요..."
남아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다가왔다.
"저도... 저도 아직 할 수 있어요. 칩 두 개만 주시면..."
"전 한 개만 주시면 돼요! 제발요, 뭐든 다 할게요..."
그중에는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소년도 있었다. 좀처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C가 주머니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자, 사람들은 놀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연인형 안드로이드가 불량품 인간보다 훨씬 비싸다는 거, 아시나요?" C가 말했다. "돈은 벌고 싶고, 싸움에는 자신 없는 불량품들은 이런 일을 합니다. 가학적인 취향의 인간들은 오히려 그런 '불량품'을 선호하거든요. 웬만한 자극엔 무뎌진 인간들. 그들은 여기서 마음껏 놀고, 망가진 장난감들은 저렇게 버립니다. 새 장난감은 널렸거든요."
일렁이는 붉은 조명에 숨이 막힐 듯했다.
"도박장에 가면 칩을 돈으로 바꿀 수도 있죠. 물론, 저들 중 누구도 그걸 돈으로 바꾸지 않아요. 벼랑 끝의 인간들이 늘 그렇듯, 일확천금에 목숨을 거니까." 그는 말을 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불량품들은 보안 계약상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평생 이 지하에서 살아야 하죠. 그들이 이곳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방법은 정해져 있어요. 투기장도 마찬가지.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금세 파이트머니를 탕진하고, 다음 대전을 위해 케이지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 충격에 입이 벌어졌다. "저들은 구조적으로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 이게 정당한 일인가요? 당신들의 눈에는 저들이... 정말 인간으로 보이긴 하나요?" 내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C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정당? 책에서나 나오는 말이죠. 인간의 욕망, 생존, 폭력, 본능. 그게 이 세계의 본질입니다. 즐길 만큼 즐기고 나니 이제야 이곳이 더러워 보이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표정 푸시죠.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평범하지 않다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곳의 구조와, 바깥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 그게 무슨 말이죠?"
C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죽지 않는 주사는 왜 오류가 났을까요? 왜 불량품들이 생길까요? 그 불량품들은 누가 찾아서 이곳에 채워 넣을까요? 왜 사람들은 섬으로 떠날 수밖에 없을까요? 만약... 모든 게 치밀하게 설계된 퍼즐 조각이라면?"
"... 절 이곳에 부른 진짜 이유가 뭐죠?" 내가 물었다.
C는 천천히 앞으로 걸으며 말했다.
"쉘터의 프로 격투기 리그가 어떤지 아십니까? 절대강자가 리그 출범 이후 단 1 패도 하지 않고 챔피언 벨트를 쥐고 있어요. 죽지 않고, 무한한 내구도에, 약물은 영원히 신체를 강화해 주겠죠. 그를 이길 상대가 나올 수 있을까요? 쉘터는 이미 고여서 썩어버린 늪인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C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그 반복이 지겨워 미쳐버릴 지경이었어요! 리얼 월드의 자극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갈 것 같은가요? 느끼셨겠지만, 결국 지겨워질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났죠. H의 디너쇼 이후, 다른 파티를 가보신 적 없으신가요? 사람들의 옷에서 보석이 빠지고, 기장이 줄어들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죠? 모두 당신을 따라 하고 있다고요! J, 당신은 제가 찾아낸, 아주 딱 맞는 바윗돌이에요."
그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 당신을 이 고인 늪에 집어던지고 싶습니다. 깨트리고, 뒤흔들고, 갈라지게 만들고 싶어요. 당신은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에요. 저에겐 당신의 거대한 욕망이 보여요. 그걸 부정하지 마세요. 강자에겐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계의 섭리를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손에 거머쥐세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이 세상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파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천장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거대한 화면에 뉴스 속보가 떴다.
'[속보] 4 연구소장 실종 사건, E 구역에서 사망한 채 발견… '
사건 현장은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으로 흘러나왔고, 기자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현장엔 4 연구소장 포함, 총 5명의 시신이 무참히 토막 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사망자 외에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으며, 서로 간의 난투극으로 인한 전원 사망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입니다."
피해자들의 과거 이력이 자막으로 스크롤되었다.
...
- E 구역 노동자 남성, U...
- 전 X 연구소 소속 남성, 미스터 **...
"고 미스터 **은 과거 X 연구소에서 해고된 전력이 있으나, 연구소 측은 해고 사유에 대해 기밀이라며 밝히길 거부했습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서장 K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과거 감정의 응어리에서 비롯된 비극적 난투로 보이며..."
그때, 누군가가 경찰을 밀치고 화면에 난입했다. 마이크를 낚아챈 사람은 T였다.
"아닙니다! 시신 훼손 정도를 보면 절대 이들끼리 한 짓이 아닙니다. 누군가 치밀하게 흔적을 지우고..."
K가 T를 밀쳐 바닥에 쓰러뜨렸다. T는 짓눌린 채로 소리쳤다.
"진짜 범인을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정의는..."
뉴스는 급히 스튜디오로 전환되었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심장이 요동쳤다.
억압과 쾌락, 죽음과 예술, 죄책감과 희열.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서로를 물어뜯으며 무질서하게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쉘터에 온 뒤로 완전히 잊고 있던, 하늘하늘 춤을 추는 나비. 너무나 고고하고 자유롭기에, 너무나 위태로운 새빨간 장미...
지금 당장 그녀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