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평범한 위스키 바였다. 어둡지만 아늑한 조명 아래, 손님들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담담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C는 바 테이블을 지나쳐 가게 안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 끝에는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양옆에는 몸집이 큰 경호원 둘이 서 있었다. C는 디바이스를 내밀었고, 경호원 중 한 명이 그것을 자신의 기계에 태그 했다. 경호원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J, 죄송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동행할 수 없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요."
C의 말에 집사는 잠시 눈을 껌뻑이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저에겐 J 님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하, 겁낼 것 없어요. 저 엘리베이터가 괴물의 아가리처럼 무섭게 보여도, 생긴 것과는 달리 초식동물이랍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C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안에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괜찮아. 저기 가서 술이나 한잔하고 있어."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경호원이 닫힘 버튼을 누르자 문이 천천히 닫혔다. 문틈 너머로 안드로이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저는 음료를 섭취할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생각보다 오래 내려갔다. C는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는 엘리베이터가 흔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벽에는 지우다 만 얼룩과, 무언가 부딪혀 움푹 파인 자국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덜컹─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리며 진동했다.
문이 열리자, 붉고 어두운 조명이 깔린 공간에서 낮은 베이스 음이 밀려들었다. 뜨겁고 습한 열기와 함께 축축한 철, 땀, 기름, 향수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코를 찔렀다. 높은 천장 아래, 고리형 구조의 공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서자, 중심에 자리한 투명한 돔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선 두 남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었다. 케이지 주변엔 흥분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있었다.
“리얼 월드에 온 걸 환영합니다.” C가 말했다.
커다란 환호성이 바닥을 울렸다. 오른팔이 덜렁거리는 남자가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고, 상대가 따라붙어 그대로 그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겁쟁이 새끼! 도망만 치지 말고 발길질이라도 하란 말이야!"
"지금! 가드가 열렸잖아, 끝내버려!"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고함 속에서, 밑에 깔린 남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그 위에 올라탄 상대는 망설임 없이, 힘껏 주먹을 내리꽂았다. 살점이 튀고, 유리 벽 너머까지 핏물이 선명하게 튀었다.
관객들은 미친 듯이 승자의 이름을 연호했다. 천장에 걸린 모니터에는 배팅된 수익률이 실시간으로 떠올랐다. 1.2배. 처음부터 결과가 뻔한 승부였던 모양. 하지만 그들에게 승부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케이지 안에서 포효하는 승자의 등 뒤로, 피범벅이 된 패배자가 질질 끌려 나갔다. 축 늘어진 팔다리, 초점 없는 눈. 죽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숨을 삼켰다. 손끝이 저릿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 저 사람도, 당신들이 말하는 '불량품'인 건가요?" 손을 주무르며 내가 물었다. C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죽지 않는 주사를 맞았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을 '불량품'이라 부르죠. 그들은 자신을 실패작이라 여기며 좌절해요. 하지만, 저 같은 사업가의 눈엔... 숨어 있는 희소성이 보입니다. 변화, 유한함, 불안, 공포... 이 세계에선 대부분이 그런 감각을 잃었거든요. 그들은 실패작이 아니라, 아주 희귀한 광물 같은 존재예요."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음이라는 거, 여기선 아주 귀한 상품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살 권리'를 가진 자들이죠."
케이지가 정비를 마쳤고, 다음 대결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관중의 함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C가 말했다. "이제 메인 카드입니다. 흰 바지를 입은 쪽이 제 선수. 13연승을 달리고 있죠. 맞은편의 남색 바지를 입은 상대는, 10연승 중이고요."
"둘 다 연승을 이어가고 있네요." 내가 말하자 C가 웃음을 지었다. "연승이란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 그럼,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건가요?" 내가 되물었다.
"당연하죠. 이건 '죽음'을 파는 겁니다. 저기 시뻘게진 얼굴로 환호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이 싸움은 진짜예요. 생존을 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전부 쏟아내야 하죠. 이긴 자는 한 게임 더 살고, 진 자는... 아쉽지만, 다른 방식으로 싸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케이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 위에 선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몸 이곳저곳이 누더기처럼 기워져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부위도 있었는데, 누군가의 신체를 이어 붙인 듯 보였다.
"승자는 상대의 신체를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상을 고치거나, 약점을 보완하기도 하죠. 결국, 패배자는 승자의 일부가 되어 싸움을 이어가는 겁니다."
종이 울리고, 싸움이 시작됐다. 두 전사의 눈동자에, 생존을 향한 맹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살아남기 위해, 죽여야만 한다.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우리의 삶과 닮아 있었다.
'리얼 월드'. 생존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몸부림에 양보나 배려 같은 건 없다. 상대에 대한 예의도, 동정도 필요 없다. 등 뒤는 낭떠러지. 떨어지는 사람이 나여서는 안 되고,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내가 살아남는다. 주저 없이 내지르는 주먹과 발길질, 낮게 파고드는 태클. 삶에 대한 뜨겁고도 밀도 높은 욕망이 케이지 안에서 폭발했다.
주먹이 꽂힐 때마다, 코 끝에 미세한 장미 향이 스쳤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단전에서 짜릿한 희열이 피어올랐다. 휘두르는 주먹을 따라 팔이 움찔거렸다.
시야에 붉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감각을 뒤덮었다. 천천히 그것에 빠져드려는 찰나, 미묘한 이질감을 느낀 나는 그 감각에서 재빨리 헤엄쳐 나왔다. 이건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공포와 절망으로 강제된 폭력성. 그것은 탁했고, 아름답지 않았다.
"아, 이런. 그 카운터를 조심했어야 했는데."
흰 바지의 남자가 쓰러졌다. 얼굴은 반쯤 뭉개졌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11연승을 이어간 남색 바지의 남자가 휘청이며 웃고 있었다. 온몸은 피로 얼룩졌고, 왼쪽 무릎은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기이할 만큼 밝게 웃고 있었다.
"이건, 옳지 않아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을 고통에 몰아넣고, 그걸 구경하며 열광하는 거. 이건... 비인간적이에요."
C는 웃음을 흘렸다. “비인간적이라... 하지만 잘 보세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기 방금 이긴 사람. 그는 이 싸움으로 돈을 벌고, 몸을 고치고, 삶을 이어갑니다. 공장에선 평생 만질 수 없는 금액을 벌고, 원하는 음식을 먹죠. 지금 저 행복한 얼굴을 보세요. 어쩌면, 이게 그가 지옥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여전히 납득을 할 수 없었다. C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취향에 잘 맞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이쪽으로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