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노을

by 꿀꾀배기

(챕터)는 과거의 이야기.


건물 여러 개를 중앙에 둔 넓은 부지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엔 일정 거리마다 안드로이드가 순찰을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들은 어두운 초록색 빛을 반짝거리며 다가왔다가, 칩을 확인한 듯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 칩 덕분에 정문부터 건물 안까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본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우린 가장 앞에 보이는 건물부터 들어갔다. 방마다 열몇 개의 침대가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잠에 든 상태였다. 문 옆에는 해당 호실에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 침대 순으로 쓰여 있었다. 모든 층을 둘러보았고 특별한 건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 교육 목적의 넓은 빈 강당, 불이 꺼진 오락실, 화장실... 가끔 복도를 거니는 순찰 안드로이드가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동료로 생각하는지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건물을 몇 개 더 들어가 봤지만 전부 이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뒤척이거나,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다만, 어느 곳에서도 엄마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N의 할머니의 이름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 뭐든 발견해야 했다. 아침이 오면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 경비가 활동을 시작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칩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 건물은 왜 혼자 떨어져 있지?"


형이 가리킨 방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홀로 동떨어진 건물이 하나 있었다. 외벽에 '특수동'이라고 적혀 있었고, 입구에는 보안 장치가 달려 있었다. 그건 암호 키가 필요한 잠금장치였다. 칩을 사용할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안드로이드를 하나 잡아와야 하나." 형이 말했다.

"... 잠깐만." 나는 주머니에서 디바이스를 꺼냈다. "있잖아, AI 챗봇."


나는 메신저를 열어 엄마에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 특수동의 보안 장치의 비밀번호를 알려줘



엄마

- 특수동 보안 장치의 현재 비밀번호는 990601입니다.




엄마의 흉내를 내는 AI가 말해준 번호를 입력하자 보안 장치가 해제되었다. 기막힌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 기뻐 형과 하이파이브를 했다가, 이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에 있을까? 이 건물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배지를 터치해 카메라를 켰다.


건물 내부는 다른 것들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이곳은 침대가 있는 방밖에 없었다. 그곳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고, 그 옆에 의료기기 같은 외형의 모니터가 달린 기계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다.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은 모양이었다.


우린 계속해서 방의 명단을 확인했다. 익숙한 이름은 나오지 않았고, 다음 방의 명단을 확인하고, 방 안을 힐끗 둘러보고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3층까지 전부 둘러봤지만 별 수확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는 이 불쾌한 감각...


이 미묘한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감각을 불러일으킨 걸까? 기억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사각형 형태의 내부 구조, 길게 이어진 복도, 비좁게 이어진 방, 그 앞에 이름이 적힌 명단, 의료기기,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사람들...




... 죽은 듯이...




"야, 찾았다! 여기 엄마 이름 있어."


형이 앞 방의 명단을 보고 말했다. 난 바로 그 방으로 달려가 창을 통해 안을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미동도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야, 천천히 가!" 다급하게 따라오는 형을 뒤로하고, 난 명단표 상 엄마의 침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워있는 사람의 이불을 잡아끌었다. 이불은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침대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아닌, 작고 시커먼 무언가가 있었다.


뒤따라온 형이 불을 켰다. 그러자 침대 위에 있는 물체가 빛을 받고 그 자세한 형태를 드러냈다. 마치 나무껍질처럼 쪼그라든 피부, 그 위로 이어진 머리가 일그러진 흔적이, 간신히 이것이 사람이었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 이거 뭐야? 설마 사람이야?" 형이 굳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 엄마 같은데, 이거." 내가 말했다.


우린 말없이 다른 침대의 이불을 하나씩 걷었다. 그곳엔 전부 나무껍질처럼 쪼그라든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그제야 나는 옆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건 의료기기가 아니었다. 화면에는 메신저가 열려 있었다.




우리 아들 J

- 특수동의 보안 장치의 비밀번호를 알려줘



- 특수동 보안 장치의 현재 비밀번호는 990601입니다.




방 안의 다른 모든 기계가 마찬가지였다. 화면에는 메신저가 켜져 있었으며, 전부 AI가 대신해서 채팅을 입력하고 있었다. 이 방뿐만 아니었다. 이 층의 모든 방이, 이 건물의 모든 방이 마찬가지였다. 짙은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사람들, 그들을 대체하는 AI 챗봇.


N의 할머니도, 아니, N의 할머니였던 것도 찾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복지 시설의 무언가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패닉에 휩싸인 형과 나는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주위를 멍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사건의 내막을 밝혀내지 못한 우리는 충격적인 현장만을 목격한 채 해가 뜨기 전에 복지 시설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다크 웹의 운영자라던 그가 내게 주었던 초소형 카메라. 배지에 달린 카메라는, 내가 전원을 킨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다크 웹에 실시간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종군기자라도 된 듯이 복지 시설의 현장을 샅샅이 담아냈고, 진실을 마주한 다크 웹의 이용자들은 격분했다.


그들은 통일 지구의 다양한 커뮤니티에 이 영상을 퍼뜨렸고, 이는 검열을 뚫고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통일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사람들은 S기업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머지않아 S기업의 관계자가 공식 단상에 등장했다. 그는 순순히 진실을 밝혔다.


"출생일을 기준으로 100세가 넘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원인 모를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고령의 인구는 전부 복지 시설에 모이기 때문에 우린 이에 대해 일찍이 알게 되었지만, 통일 지구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 우려되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살아있습니다. 다만 근육과 피부조직이 괴사하여 마치 나무껍질처럼 변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뿐입니다. 그들의 뇌파를 분석해 본 결과, 뇌는 여전히 사고를 이어가고 있었고, 심장 역시 온몸으로 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간에서 주장하는 죽지 않는 주사가 원인이라는 의견은 옳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 주사는 죽지 않고, 늙지 않는다는 그 역할을 다했고, 주사와 이상 증세의 연결고리 역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L 회장님은 도의적 차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미리 지시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태평양 인공섬에 병원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병원에서, 안락사 캡슐을 공급하겠습니다. 이 방법으로 실행되는 안락사는 합법으로 취급될 것이며, 전액 무료로 제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처럼, 저희의 주사를 통해 젊은 몸으로 일상을 이어가다, 100세가 되기 전에 원하는 때에 인공섬으로 가서 안락사 캡슐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S기업의 입장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다. 연일 시위가 이어졌고, 파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간단한 업무부터 빠르게 자동화 공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파업이 실업으로 이어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보급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쫓겨나야 했기 때문이다.



'근데, 어차피 젊고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사는 건 팩트 아님?'

'100년 살았음 슬슬 지루하긴 해. 살 만큼 살다가 원할 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니까. 누가 주사 맞으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다들 공짜로 좋다고 맞아놓고, 잘만 살다가 이제는 보따리도 내놓으라 하네. 애초에 주사 탓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전쟁 끝에 살길이 막막했던 내가, S 기업 덕에 사람 구실하며 살았다. 난 여한도 없고, 내일 안락사 섬으로 간다'

'저 안락사 섬 왔는데 벌써 대기 줄 생김;;'



사람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졌다. S 기업을 옹호하는 여론이 점차 늘어갔고, 실제로 안락사 캡슐을 이용하러 간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인원이 몰려들어 캡슐의 보급이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대기열이 크게 늘어나자, 원하는 때에 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여론이 커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욱 다급히 안락사 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섬에도 주거시설이 생겼고, 이대로면 미래엔 태어나자마자 섬으로 가야 제때에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이젠 안락사 섬에 가지 않은 사람들을 바보처럼 여기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세상이, 사람들을 안락사 섬으로 향하도록 등을 떠미는 듯했다.


나와 형은 여전히 이곳에 남았다. 형은 안락사 섬으로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곳을 본인이 지켜야 한다고 했다. 난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난 여전히 공장으로 출근했고, 공장엔 점점 사람들이 줄어만 갔다.






그리고 N.


N은 그날 이후 공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녀의 방안에만 있었다. 나는 공장에 가는 시간 외에는 그녀의 집에 함께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눈가엔 언제나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가 수분 캡슐이나 에너지바를 챙겨주기 전에는 무언갈 먹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멍한 눈으로 하루 종일 씹어 힘겹게 삼켰다.


전부 나 때문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티던 그녀의 작고 유일한 소원을 짓밟아버린 건 나였다. 그녀의 고독, 그녀의 불안, 그녀의 외로움, 그녀의 우울은 그녀가 사라질까 두렵다는 핑계로 모조리 외면해 놓고, 아무도 원치 않은 복지 시설의 진실을 굳이 용감하게 드러내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꿈에서 깨게 만든 건 바로 나였다.


생기를 완전히 잃은 N의 눈을 볼 때면 나는 뒤에서 가만히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나는 아파할 자격도 없었으니까.




"... J."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그녀가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불렀다. 그녀는 도시공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드디어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 그녀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녀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우린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긴 시간 동안 방에만 있었기 때문인지, 복지 시설의 사건으로 인해 수척해진 탓인지 잘 걷지 못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힘겹게 따라 걸었다. 도시공원에 도착해 벤치에 앉은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눈이 잔뜩 묻은 푸석한 머릿결. 거무죽죽해진 눈가와 쏙 들어간 볼. 힘겹게 숨을 고르는 그녀는 마치 시체 같았다.


떨어지는 해가 세상을 온통 주황색으로 밝히고 있었다. 눈구름을 타고 번진 주황빛은 내리는 눈송이에도 하나하나 물들어 있었다. 우린 노을이 붉게 번지며 세상을 덮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타오르는 노을을 담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역시 노을은 아름다워."


그녀가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말했다. 미소와 함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노을은 곧 저물고 말겠지만, 가장 아름답게 타오르는 모습을 누군가 봐주어서 다행이야."

"그러게." 내가 말했다.



"아마 노을은 기쁜 마음으로 사그라들 거야." 그녀가 말했다.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 노을빛이 번졌다.




그녀는, 마치 노을처럼 환하게 타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말했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노을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노을을 머금고 웃었다. 눈이 찡그려질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붉게 타오르는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J, 네가 있어주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 내가 소리쳤다.


노을은 천천히 저물어가고, 세상도 천천히 어두워졌다.



"난 비로소 소멸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 눈동자가 맑고 청아했다. 그 안에 어떠한 후회도 아쉬움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안, J. 잘 있어."


그녀는 그렇게, 저무는 해와 함께 노을처럼 사라졌다. 붉게 타오르던 하늘은 어느새 시커멓게 가라앉았고, 이제야 피부에 닿는 눈이 무척 찼다. 벤치의 빈자리엔 그녀가 남긴 잔향만이 일렁였다. 나는 그녀가 떠난 곳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끝내 하고 싶던 말을 하지 못했다. 난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대신 이기적인 후회와 원망을 눈보라에 애써 감췄다. 차라리 이 눈이 영원히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부시게 타오르던 N이라는 노을에 대한 꿈은, 첫눈에 빈 소원처럼 허상이 되어 막을 내렸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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