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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Jul 01. 2021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순간


금동이의 탄생일과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동해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 휴가철은 멀었고, 한적할 줄만 알았던 어달해변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름대로 거리두기를 지켜 돗자리를 깔고 텐트를 피고 광합성을 하거나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니 금동이도 몸이 근질거리나 보다.


"엄마! 나도 들어갈래!"


래시가드를 챙기려다 아직 6월이라 물속이 차가울 거라며 물놀이는 시키지 말자길래 가방에 넣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단다. 당황도 잠시, 우리에게는 다른 무기가 있다. 


"금동아, 모래놀이하는 건 어때?"


놀러 가기 며칠 전 새로 산 모래놀이 장난감을 꺼내 금동이에게 협상을 시도했다.


"응, 할래!"




휴, 다행이다. 모래 정도야 툭툭 털면 되니 안심이 됐다. 요즘 푹 빠진 포켓몬스터와 곤충 피규어들을 모래 속에 숨겨 놓고는 엄마, 아빠 보고 찾아보란다. 그래, 다 찾아주겠어! 한참을 신나게 논다. 이 녀석, 모래놀이에 진심이구나.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바닷물을 퍼 달라는 금동이의 시중까지 열심히 해가며 모래놀이에 꽤나 협조적이었는데 결국 스스로 물을 뜨러 간다. 




몇 번 발을 담그더니 이젠 아예 물속으로 들어간다. 6월의 물은 정말 차가웠다. 집에서 이 정도 온도의 물이라면 손 씻는 것도 싫어하는 금동이가 해맑은 미소를 띠며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래, 네 생일인데 마음대로 해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온몸이 다 젖고 모래는 옷 사이사이에 달라붙어있는데도 마냥 재미있나 보다. 바닷가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놀았는데 갈 생각을 안 한다. 기어코 더 놀겠다고 물에 들어가더니 돌에 쓸려 다리에 상처가 나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제야 우린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튿날, 사천진 해변으로 이동하는 중 경포해변 끝자락 사람이 발길이 닫지 않는 곳.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와!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카페에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금동이가 가만있지를 않는다. 여행 전부터 찾아놓은 핫플레이스지만 우린 30분도 채 되지 않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천진 해변은 어달 해변과 다르게 깊어 서핑 장소로 유명하다. 카페에서 서핑 강습도 같이하다 보니 서퍼들도 많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배우고 싶은데 그전에 수영부터 어떻게 안 되겠니? 


금동이는 또 모래놀이 타령이다. 다리에 세균이 들어가니 안된다고 설득을 해봐도 통하지 않고, 결국 엄마, 아빠는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깊은 사천진 바다에서 잠시 눈이라도 뗐다가 큰일이라도 날까 조금 얕은 사근진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차를 타고 옮겼지만.




제발 물에는 들어가지 말아 줘. 또다시 아빠는 물 시중. 

사천진 해변보다는 얕았지만 어달해변보다는 깊은 편이라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한참 물 시중들던 아빠가 화장실을 간다고 하니 금동이가 아빠를 부르며 따라나선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푹푹 빠지는 발로 열심히도 아빠를 쫓아간다. 아빠, 어디가!

  하지만 사랑스러웠던 건 여기서 끝. 엄마 손을 잡고 다시 모래놀이 현장으로 돌아와 잘만 놀던 금동이가 옆으로 걸어간다. 당연히 모래를 가지러 가는 거라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모래를 한 움큼 쥐더니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금동아, 거기 아니야!"


거대한 엉덩이를 바닥에서 들어 올려 전속력으로 뛰었지만 모래 속으로 쑥쑥 빠지는 발은 금동이에게 닿기에 무리였다. 


"금동아!" 


정말 찰나였다. 모래 위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눈을 감은 채 바닷바람을 느끼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커플을 향해 쥐고 있던 모래를 확 뿌렸다. 결국 가까이 있던 남자는 모래 범벅이 되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금동이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 허리를 눌러 숙이게 했다. 


"얼른 죄송하다고 해."


금동이는 죄송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몰라 엄마가 하라는 대로 허리만 숙였다. 나는 차마 남자의 옷에 붙은 모래를 털어줄 수 없어 쳐다만 보며 연신 죄송하다고 했는데, 고맙게도 괜찮다고 하셨다. 어제부로 48개월을 맞은 방해꾼만 아니었다면 더욱 괜찮은 데이트였을텐데. 


자리에 돌아온 후에도 난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동안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이 물건을 던지거나 모래를 던지면 안 된다고 알려줬는데 결국 사고를 친 것이 아닌가. 그것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온 여행에서. 


"너,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다른 사람들한테 모래를 왜 뿌려? 왜 그랬어? 말 좀 해봐."


혼나면 두 팔을 벌려 안으려고 하거나 애교를 피기도 하고 변명도 하던 금동이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한참을 내 말만 듣고 있다. 한참이 지나 나타난 남편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남편도 조금 당황스러워했지만 엄마한테 혼나는 금동이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왜 말을 안 해? 왜 그런 거야? 미안해, 안 미안해?"

"미안해..."

"엄마 말고, 저기 아저씨한테 미안해야지. 왜 그런 건지 얘기해봐. 왜 그랬어? 엄마 좀 보고 얘기해봐 봐. 고개 좀 들어봐."


그제야 고개를 든 금동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가끔 혼나는 일이 있긴 해도 기가 죽기는커녕 10분도 채 되지 않아 하하호호 웃어대며 장난치던 아이였다. 그런 금동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러지 마. 절대 그러면 안 돼."


금동이가 말없이 안겼다. 더 놀까, 하고 물어봤지만 이제 놀기 싫다며 안아달라고 한다. 남편에게 정리를 부탁한 후 먼저 금동이를 안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내 어깨에 고개를 폭 기댄 채 안겨있었다. 그런 금동이가 신경 쓰여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아?"

"응."

"왜?"

"몰라."


혼나서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안 좋다고 하던 금동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모래놀이는 하기 싫다고 했다. 바다도 싫고 텐트 치고 노는 것도 다 싫다고 했다. 며칠을 되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싫어,였다. 아이에게 상처가 된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묘한 감정이 가장 많이 들긴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냥 아기 같았는데 48개월 1일 차에 사고를 친 후 갑자기 어린이가 된 느낌이랄까. 생각도 하고, 상처도 받고,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도 가는구나. 최근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이 많이 늘었다고는 생각했는데 말만 늘은 게 아니었나 보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어버린 금동이에게 나 또한 조심스러워진다. 내 말과 행동 하나가 이 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생각할지 한 번 더 고민하고 항상 의견을 묻는다. 




어제는 새로운 텐트가 배송이 왔다. 다행히 텐트를 보고는 펴달라고 한다. 이제 잊은 거지? 바다 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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