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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Jun 02. 2021

태어날 때부터 효자입니다.

그래도 포켓몬 크레인은 포기 못해!



 "금동아, 6월 14일에 태어나.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날 태어나면 기념일도 줄고 얼마나 좋니."




2017년 6월 13일 자정이 막 지난 시간, 금동이를 뱃속에 품은 지 37주 3일 차였다. 세상에 나올 기미도 없던 금동이가 급하게 탈출을 시도했다. 37주부터 조산은 아니라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이 터진 양수에 덜컥 겁이 났다. 6월 29일이 예정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전부터 금동이에게 줄 곧 6월 14일에 태어나라고 말했는데 그걸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별 반응이 없길래 뱃속에서 들은 채 만 채 하는 줄만 알았는데 날짜를 새고 있을 줄이야. 이미 효자 인증.

 

"엄마, 나 너무 무서워."


구례에 사시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엄마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금동이를 만날 거라는 설렘보다 그때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에도 겁이 나는데 스물한 살이란 나이에 나를 낳았던 엄마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세 번이나 낳았으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당황하기도 잠시, 남편은 병원에 전화를 했고 나는 가방을 챙겼다. 차로 십분 거리의 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여러 준비 과정을 마치고 한참이지나 진통이 시작되었고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짐볼 운동까지 하며 금동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오후 다섯 시가 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얼마 후, 친정엄마가 병원으로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동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으아아아앙"

"오후 5시 55분 남자아이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오늘 제일 먼저 병원에 온 사람이 나였는데 제일 늦게까지 있었단다. 누가 엄마 딸 아니랄까 봐 진통도 엄청 오래 했다. 그 와중에 정신은 멀쩡해서 누굴 닮았는지, 아이의 머리 모양이 정말 뾰족한지 확인했다. 호기심이 아픔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6시간만 좀 더 늦게 태어났으면 결혼기념일이랑 금동이 생일이랑 같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념일은 그저 의무감에 챙기는 것 같아 하루라도 줄이기를 바랐던 엄마와 다르게 자신의 탄생일과 엄빠의 결혼기념일이 같은 날이기는 싫었나 보다. 엄마의 말을 99% 정도만 들어주었다. 하긴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한 날이 하루 줄어드는 건데 금동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싫었을지도.

지금 생각해보니 금동이의 생일과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같은 날이었다면 어디 근사한 데 가서 저녁 먹는 것이 전부였겠지만 금동이의 하루 차 공격 덕분에 연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이맘 때면 우리는 가족여행을 가고 있다. 누구 아들내미인지 머리를 잘 썼다.


2.72kg으로 작게 태어난 금동이는 만 한 살이 되면서 자그마치 12kg로 우량아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는 참 포동포동하니 귀여웠는데 다섯 살이 된 금동이는 15kg에서 좀처럼 늘지를 않는다. 매일같이 늘어나는 건 장난감 욕심과 "왜?"라는 물음뿐이다.  아무리 대답을 해줘도 "왜?"라는 질문은 끝이 나질 않는다. 이게 말로만 들었던 왜 지옥인 건가. 언제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친구 딸내미는 초등학교 4학년인 지금까지도 계속된다고 하니 앞으로도 5년은 각오를 해야겠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후 여느 때처럼 포켓몬스터 친구들과 놀고 있던 금동이가 집을 나서려는 남편 앞을 막아섰다.


"아빠 어디 가?"

"아빠 일 가려고."


주로 집에서 일을 해왔던 아빠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한다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이다.


 "아빠 일 가지 마."

 "금동이 맛있는 거 사주려면 일해야지."

 "집에서 해."

 "집에서 일할 수가 없어서 그래.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금동이 맛있는 거 사줄게."

 "안 먹어."


와... 이런 감동도 감동이 없다. 먹는 것도 다 필요 없으니 일 가지 말고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는 금동이. 남편은 런 금동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운지 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났다. 지켜보던 난, 남편의 행복한 기분을 깨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갈 시간이 촉박했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었다.

 

 "포켓몬 크레인은?"

 "응?"

 "아빠가 일을 해야 포켓몬 크레인 사줄 수 있어. 아빠 일하고 와도 되지?"

 "응. 해."


다시 한번 물었지만 금동이의 대답은 같았다. 열 번을 물어도 포켓몬 크레인이라는 장난감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3분 남짓 느꼈던 행복을 뒤로하고 남편은 에라잇! 하면서 집을 나섰다.






엄마, 아빠 좋아! 사랑해! 매일 안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우리 금동이. 포켓몬은 포기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 효자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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