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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엘리 Sep 15. 2021

종적을 감췄던 이유

도망가지 말고 맞서기로.


나이가 먹어가면서 웬만한 일에는 의연하게 대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 그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니 가끔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둥글게 살려는 노력 덕에 화가 난다고 예전처럼 포효하지는 않지만 내 안의 끓어오르는 분노는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우리 집 밀키의 가출 사건에 대한 글을 쓰고 생각지도 못하게 5일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 이미 두 달 사이 두 번의 다음 메인의 노출로 세 번째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여느 때처럼 내 할 일을 하던 중 댓글이 남겨졌다는 알람이 울렸다. 당연히 다행이라거나, 응원한다거나 하는 선플이 달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자만을 걷어차듯 '읽다 보니 화가 나네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댓글은 평온했던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댓글을 읽고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건지, 그동안 물고 빨고 예뻐 죽을 것처럼 사랑하진 않았어도 우리 가족은 우리의 방식대로 보살피고 사랑을 주었는데 그것이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자 몇 번이나 댓글을 읽어보고 나의 글이 많이 부족해서 이 사람을 이해시키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 글을 읽었다. 하지만 부족한 나의 글쓰기 실력만 깨달을 뿐, 화가 날 정도의 내용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더 컸다. 결국 일을 하고 있던 남편에게까지 얘기를 전했고, 그는 나보다 더 화가 나서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밀키가 기운이 없을 때도, 집 나갔다 돌아왔을 때도 가장 가슴 아파했던 건 남편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밀키를 바라보던 남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그 댓글은 한낱 몇 문장이 아니라 비방과 비판을 넘어선 악플이자 상처가 되었다.


물론 그 댓글의 내용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무지했던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고 반성도 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 행동들이 모두 틀렸다며 그동안의 함께 했던 시간과 사랑마저 학대인 양 비판하는 글은 차마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마저 그렇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글을 삭제를 할까, 수정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떳떳하지 않은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부족한 글 또한 나의 얘기였기에 그렇게 두고 싶었다.


그렇다고 댓글을 바로 남길 수는 없었다.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감정적인 글로 더 큰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마음에 다시 안정이 찾아왔을 때 댓글을 남겼는데 충분히 설명이 되고 이해를 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댓글을 보지 않은 채 오해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고, 밀키에게 더 신경 쓰고 사랑해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후로도 이틀을 메인에 노출된 글은 기쁨보다 초조함이 더 컸다. 내 글이 또 누군가에게 불편한 글이 될까 봐 빨리 메인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사실 삭제 해버 리거나 비공개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나 또한 메인의 글을 클릭했을 때 비공개 글이라거나 삭제된 글이라고 나오면 씁쓸했기도 했고, 열심히 찾아보시고 어렵사리 올려주신 담당자님께(누군지도 모르지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차마 그러질 못했다.


이 일로 인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들을 기록해두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가 나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글을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글을 쓰지 않은지도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연하게 본 집사의 고양이 털 깎이는 영상과 함께 남겨져 있는 글을 보니 얼마 전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길고양이들의 집사가 되어 함께 생활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글들.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그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불쾌하고, 학대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딜 가나 뾰족한 사람은 있고, 프로 불편러로 인해 변명 아닌 변명을 남기게 되는 사람이 상처 받고 피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불편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나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프로 불편러로 몰아가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이전에 스스로 더 돌아볼 것이고, 그 순간 감정에 치우쳐 느끼지 못하더라도 후에 반성하고 나아진 사람이 되려고 한다. 물론 고작 하나의 댓글로 글 쓰는 것도 그만둘 만큼의 유리 멘털도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잘 쉬다 오니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어떠한 계기로 글쓰기를 멈출 수도, 다시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나이고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상처 받지 않기를 스스로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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