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거리는 바람이 나의 뺨을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갔다. 수업 시간이었지만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봄의 풍경은 마치 요정들이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듯이 보였다. 나는 잠깐 공상을 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교실 안에만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고 나와 친구들은 아까운 청춘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전에 잠깐 운동장에 화단 쪽을 거닐었다. 바람이 불어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우리들은 언제나처럼 화단 맨 끝 쪽에 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의 자리는 창문 쪽에 있었고 우리가 살금살금 가서 "워!"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는 항상 같은 표정으로 놀라곤 했다. 그는 피부가 하얗고 목선이 길었다. 얼굴이 작고 키가 커서 여고생인 우리들에게 인기가 많은 문학 선생님이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우리들은 좋아했다. 웃음이 많은 여고생인 우리에게 그는 항상 함께 웃어주었다. 그날도 우리는 살금살금 화단 밑으로 가서 그의 자리가 있는 창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매번 똑같이 "워!"이러면서 앉은 자세에서 위로 서면서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이 녀석들! 개구쟁이들!"이라고 말했다. 나와 다섯 명의 친구들은 항상 붙어 다녔고 그에게 개구쟁이들이라고 불리었다. 친구들이 그에게 "선생님, 프라하의 별이 몽실 통통과 빵이 먹고 싶다고 해요!"라고 말하자 그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슨! 내가 보기에는 프라하의 별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먹고 싶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웃어 보였다. "선생님은 돈이 없다, 맨날 너희들이 와서 사달라고 해서 돈이 하나도 안 남았다!" "에이, 오늘이 선생님 월급날인 거 다 아는데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오늘이 선생님 월급날인 것을 알고 있다며 맛있는 것 사달라고 졸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했고 먹는 거에 관심이 없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항상 나를 끌고 가서 함께 조르곤 하였다. 그러면 선생님은 못 이기는 척 매점으로 함께 가서 간식을 사주었고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먹은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하러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문학수업을 좋아했다. 문법이나 일반적인 국어 수업보다 문학작품을 가지고 감상을 하고 이야기하는 수업이 좋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선생님께 야외수업을 하자고 말을 하면 선생님은 안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우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학교 뒤뜰에 잔디밭으로 나가서 야외수업을 하곤 했다. 바람이 산들거리면서 불어올 때 함께 불어오는 라일락꽃향기가 나의 마음을 기분 좋게 했고 또 다른 꽃향기들도 친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는 조금은 엉뚱한 면이 있었는지 역사 수업에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서로 힘을 합쳐서 고구려로부터 다시 지켜내고 승리하였을 때 원래 각자의 나라의 소유했던 것만큼 한강유역을 나누어 가지려고 미리 조약을 했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결국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죽게 되었을 때 너무 슬퍼서 수업 시간에 나는 크게 울어버렸다. 백제의 부흥을 꽤 하려고 했던 성왕은 사비로 수도를 천도하면서까지 큰 꿈을 꾸었다. 나는 그의 꿈의 크기와 기대가 느껴졌고 그가 진흥왕에게 배신을 당할 때의 아픔이 나에게 날 선 칼날이 마음을 찌르는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역사 선생님은 내가 아픈 줄 알고 나에게 다급히 왔다가 내가 위에 설명을 울먹이면서 하니 그녀는 어처구니없어하였고 결국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오라고 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불려 간 나는 역사 선생님께 혼나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상황 이야기를 듣던 나의 담임 선생님과 문학 선생님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프라하의 별은 감수성이 뛰어나서 이다음에 커서 뭐가 돼도 꼭 될 거예요!"라는... 결국 나이 지긋한 역사 선생님께 두 분 선생님은 핀잔을 듣고 말았다. 변함없는 일상이 반복되던 날의 오후 나와 다섯 명의 친구는 또 문학 선생님이 계시는 창가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 쪽으로 문학 선생님이 안 보여서 우리는 창턱을 손으로 짚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쑥 내밀었는데 갑자기 창턱 아래에서 위로 쑥 올라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나와 친구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문학 선생님께 우리가 놀란 것이다! 이런! 함께 토라진 우리를 달래주려고 문학 선생님은 매점에서 과자를 사서 학교 뒤뜰 잔디밭에 앉아서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들이 주변에 꽃들이 많으니까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선생님 나는 어떤 꽃을 닮았어요?"라고 차례로 질문을 하였고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씩 잠깐 생각하면서 주변에 꽃들 중에서 한 가지씩 닮았다고 이야기를 하였고 그 꽃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이야기를 함께해 주어서 나와 친구들은 재미있게 들었다. 마지막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이 " 프라하의 별은 하얀 목련 꽃을 닮았지"라고 말했다. 나는 목련 꽃이라는 말에 토라졌다. 꽃의 크기도 크고 내가 보기엔 별로 안 예뻐 보였다. 학교 안에 노란 수선화도 있었고 개나리꽃도 있었고 벚꽃과 라일락꽃 등 작고 예쁜 꽃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정말 크게 보이는 하얀 목련 꽃이라니 그것도 학교 안에 큰 나무에서 피는 목련 꽃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의 표정을 살피면서 물었다. "프라하의 별, 표정이 삐진 것 같은데 왜 그러니?" "목련 꽃이 마음에 안 들어요, 꽃도 꽃잎도 크고 더욱이 큰 나무에서 피는 꽃이잖아요, 다른 작고 예쁜 꽃들도 많은데 왜 내가 목련 꽃을 닮았어요? 다른 것으로 바꿔 주세요!" "프라하의 별, 선생님은 프라하의 별을 보았을 때 가냘프고 하얗고 늘 골골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프라하의 별은 강한 모습이 있더라 그 모습이 하얀 목련 꽃처럼 고귀하게 보였단다. 하얀 목련 꽃의 꽃말은 고귀함이야." 갑자기 내 친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뭐예요? 선생님! 내가 하얀 목련꽃 할래요!"라고 친구들이 서로 다투어서 말을 하였고 나는 언제 삐졌는지도 모르게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이 계절이 되면 하얀 목련 꽃이 피고 그러면 나는 문학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생각이 난다. 공부하기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은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문학 선생님은 공부하기 힘든 우리들의 퍽퍽한 삶에 "낭만"을 선물하였다. 그 낭만은 살아가면서 가끔씩 꺼내어 보고 미소를 짓게 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