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Aug 12. 2021

고민하지 않고 갈 곳이 있다는 건

© Free-Photosphotography, 출처 pixabay

몇 년 전부터 나에게 여름휴가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생겼다.

내 동생 가족과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는 "동해"이다.



조카는 본인보다 5살이 많은 사촌 언니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내 아이도 사촌동생에게 선물로 줄 것을 한참 챙겨서 간다. 친자매 지간은 아니지만 서로 아끼고 챙겨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나도 외동아이를 키우고 있고 내 동생도 외동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이 두 아이들이 나와 내 동생처럼 평생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서로 바라고 기도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거의 열흘 가까이 동해에 있는 내 동생의 집에 머물다 왔다. 내 동생은 성격이 매우 깔끔해서 집을 호텔처럼 청결하게 해 놓는다. 언니네 가족을 위해서 화장실이 있는 안방을 내어준다. 침대와 이불세트도 너무나 뽀송하고 깨끗해서 호텔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맞벌이를 하는 동생은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해서 오후 6시쯤 퇴근을 한다. 나와 내 가족은 낮에 주인도 없는 동생네 집을 마음 편안하게 사용하고 조카는 학원을 모조리 결석하고 사촌 언니와 하루 종일 논다. 나와 신랑은 마치 딸이 두 명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카를 둘째 아이 삼아서 여기저기를 활보하고 다닌다. 낮에는 단란한 4인 가족이 되어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동네 살고 계시는 부모님 댁에는 낮에 놀러 갔다가 잠은 동생네 집에서 잔다. 깔끔하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크다. 내 동생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동생네 집에서 마음껏 어지를 수 있는 것이 더 좋다. 나도 깔끔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엄마와 동생에 비하면 따라갈 수가 없다.


내 엄마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평생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그러면서도 정갈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의 성격은 항상 집안이 잘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아빠가 더 바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집안과 정원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정리하고 가꾸어 놓는 일은 대부분 아빠의 몫이다. 항상 엄마에게 친절한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는 늘 다정다감하다.


동생의 이야기로는 아빠가 원두커피를 내려 아이스커피로 만들어 보온병에 한가득 담아서 동생이 일하는 회사로 매일 아침에 가져다주신다고 한다. 동생과 동료들이 함께 먹을 만큼 넉넉한 양의 커피를 매일 가져다주는 아빠의 정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냉커피 그리고 봄, 가을 그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아빠는 막내딸을 위해 매일 아침 정성껏 준비한다.


우리가 가는 것을 미리 이야기를 하면 손꼽아 기다릴 가족에게 "어느 하루 멋진 선물"처럼 등장하고 싶어서 "깜짝쇼"를 계획했다.



휴가 때이든 바다가 보고 싶은 연휴 때이든 동해에 있는 동생네 집으로 가면 바다도 보고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잠깐 머물다가 오고 있다.


© pixel2013photography, 출처 pixabay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에 대하여
여행 마지막 날,
꼭 가보고 싶은 식당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일정상 단 한 곳밖에 갈 수 없었다.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거듭하다가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 간 식당에
'휴가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잰 걸음으로 발길을 돌려
다른 한 곳으로 향했다.

두 번째 식당에 먼저 왔었다면
가보지 못한 나머지 식당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워했을 텐데.
사라진 선택권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출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글 이애경 지음


조카가 해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사촌 언니를 기다리기에 나에게는 다른 곳으로의 선택권이 없다.

나에게 사라진 선택권이 마음을 왠지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해 준다.


여행지에서 일상의 삶을 살 수 있는 곳


언제든 마음이 움직일 때 달려가도 반겨주는 곳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


동해.


매거진의 이전글 절약 생활에도 소비 이벤트가 필요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