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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Oct 05. 2021

연휴의 마지막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거실로 나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도 이어진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느라 연휴에 늦잠 한번 제대로 못 잔 아이의 알람시계를 아이가 맞추어놓은 것보다 어제 신랑이 한참 뒤로 설정해 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잠을 자고 있어서 인지 거실이 조용하였다.

고요한 거실에는 원두커피 향과 고소한 빵 구운 냄새가 거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실 중앙에 있는 식탁 위에 바게트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신랑이 어제 늦은 시간에 반죽을 해두고 오늘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오븐에 구워낸 바게트이다.


신랑이 구워놓은 바게트

나와 아이가 갓 구운 바게트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신랑은 잠을 자기 전에 반죽을 해놓고 밤새 발효를 시킨 후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오븐에 반죽을 넣어 바게트를 구워낸다. 바게트가 구워지는 동안 신랑은 내가 마실 커피 원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로 내려 연두색 텀블러에 담아 놓은 후 출근 준비를 하고 조용히 출근을 한다. 나와 아이 둘만 보내게 되는 그 시간에 자신의 부재를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써주는 신랑의 따뜻한 마음이다.

금요일에 독감 백신 접종을 한 나는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서 신랑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쉬었다. 연휴 3일 중 이틀을 쉬게 된 신랑은 이틀 내내 집에서 나와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였다. 집안 일과 요리에 바쁜 신랑에게 미안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주방에 가면 신랑은 정색을 하고 나를 말렸다.


연휴 이틀 동안 신랑이 요리한 감자전과 감자수프
연휴 이틀 동안 신랑이 요리한 안동찜닭과 매운 닭볶음탕

내 신랑의 유일한 휴식시간은 골프연습장에 운동하러 가는 3~4시간의 외출이 전부이다. 그것 말고는 쉬는 날에 집안 일과 아이의 수학과 물리 공부를 도와주느라 마음도 몸도 바쁜 신랑이다.

나는 항상 가족을 생각하는 신랑이 퇴직하는 그 시점에 행복하게 퇴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 내가 간소한 삶과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위해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오늘은 신랑이 출근을 하였고 나와 아이 둘만 연휴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신랑이 구워놓은 바게트와 아이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준비하였다. 한참 "단백질"을 외치는 중학생 아이를 위해 달걀 프라이도 함께 준비하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많이 먹지 않았던 내 아이는 요즘 들어 메뉴에 "동물성 단백질"이 없으면 너무 서운해한다. 결국 아이는 본인 달걀 프라이 3개를 먹고도 모자라서 내 달걀 프라이 한 개를 더 먹었다. 왠지 아이가 달걀 프라이 3개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내 달걀 프라이를 일부러 2개 준비했다.


나와 아이 둘이서 브런치

베란다에서 아이가 바질을 잘라왔다. 바질이 들어간 샐러드는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오랜 기간 납입한 여행 적금이 만기가 되었을 때 나와 내 가족은 아이가 열세 살 오월에 런던과 프라하로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다.


런던에서 바질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를 자주 사 먹었고 히드로 공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바질 샌드위치여서 바질을 먹을 때마다 나와 아이는 런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Yelena Odintsovaphotography, 출처 pexels

오늘도 변함없이 런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행복하게 브런치를 하였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은 신기하게도 후일 다시 먹었을 때 그 여행지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 시점으로 가게 한다.

신랑이 구워놓은 바게트와 함께 바질의 맛과 향이 매개체가 되어 나와 아이를 런던으로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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