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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27. 2020

이쪽 길로 다니면 안 돼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모두가 민주화로 뜨거웠던 1987년 나의 중학교 시절에 겪었던 작은 이야기이다.
그해 1월 뉴스에서 어떤 대학생 오빠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 도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어른들을 통해서 들었다.

나는 중학생이었고 정치에는 더욱이 관심이 없었다.
다만 어른들이 대학 가서 공부도 안 하고 왜 그렇게 운동을 하고 다니냐고 하는 말씀을 들은 기억만 난다.
그때 운동이 학생운동이라는 것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해 봄 나는 명동에 있는 남산 아래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군인은 아니고 군인과 비슷한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길가에 일렬로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리고 구호를 맞추고 내가 올라가는 학교의 길을 따라서 서있곤 했다.
그 아저씨들을 어른들이 (전투경찰)이라고 불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도 일렬로 서있는 그 경 아저씨들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해서 한참 사춘기 시절인 나와 내 친구들은 신경이 쓰이고 싫었다.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다시 부활한 교복을 처음 입었다. 전국의 중학교가 다 입은 건 아니고 선택이라고 했다. 교복은 스커트가 기본이었기에 우리는 경들이 앉아있을 때 시선이 우리 다리로 향하는 것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들은 너무 힘들어서 중학생인 우리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눈에 안 들어왔을 텐데도 그때는 괜히 나와 친구들이 예민하게 신경이 쓰였다.

더욱이 길가에 앉아서 식판에 밥을 받아서 먹고 있는 경들이 중학생들의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도 길에서 그렇게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 중학생인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길에 있는 경들을 구경하면서 학교를 오고 갔다.

어느 날부터는 등하굣길에 엄청 매운 느낌의 냄새가 나고 눈이 따가운 것이 공기 중에 있었다.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는 명동으로 진입하기 전에 충무로 쪽에서 한 대학을 지나간다.

등굣길에 차는 많이 막히고 사람들이 도로에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도로를 점령해서 버스는 앞으로 갈 수 없었고 멈추어진 버스를 힘이 센 대학생들이 옆으로 돌렸다.

그들 손에 신문지 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고 내가 타고 있는 버스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서 그 종이들을 안으로 던지고 도망을 갔다.

그러면 다시 버스 안으로 경들이 들어와서 그 신문지들을 일일이 회수해 갔고 매캐한 그 냄새는 버스 안으로 늘 들어왔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로에서는 경들과 학생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깨진 병과 작은 불들이 여기저기서 타고 있는 것이 보이곤 했지만 나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학교 다니기 정말 힘들다고만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살짝 더워지는 봄에서 여름 사이쯤 되는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명동에 위치한 나의 중학교의 하굣길에는 마치 전쟁터처럼 대학생들과 전경들이 종종 뒤섞여 있곤 했고 나와 친구들은 그쪽 길로 가기 위험해서 돌아서 다녔는데 그러면 버스 시간을 놓칠 것 같아서 그날은 그 전쟁통 같은 곳을 가로질러 가기로 하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는 데 갑자기 나의 시야가 뿌연 연기로 가려지고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고 넘어졌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사람의 품속에 꼼짝없이 갇혀있었고 하얀 연기가 자욱하고 눈과 코를 찌르는 냄새가 진동을 해서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힘으로는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너무 공포스러워서 몸부림을 치는데 다급하면서도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다치지 않게 해 주려고 그래, 잠시만 그대로 있어"

그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나쁜 목소리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힘에 가만히 있었고
대학생들과 전경들이 다른 쪽으로 몰려가서인지 조금 주변이 비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람 품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 친구들과 너무 싫어했던, 지저분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녔던 경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대모 현장 속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대학생들이 표적 없이 아무렇게나 던진 화염병이 나에게 날아왔다.

그걸 내가 맞으면 다칠 것을 염려한 한 경이 달려와서 화염병을 대신 맞으며 나를 품에 안고 쓰러진 것이었다.

대학생들과 정경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뒤섞여서 있던 그 공간에서 내가 다칠까 봐 나를 조금 더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상황들이 내 눈을 통해서 확인이 되었고 그동안 정경들에게 대한 나쁜 이미지가 있었던 나는 그 경에게 미안해졌다.

경은 나에게

"이쪽 길로 다니면 안 돼! 먼 골목길로 돌아가야 해"라고 말을 했고

나를 걱정했던 친구들이 내 옆으로 와서 나를 챙겨서 데리고 가는 바람에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수학선생님이 스물일곱 살이었고
그 선생님께서 내가 궁금했던 1987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어서 그때 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비로소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고 군대를 대모 학생을 막는 경으로 배치받았다.
선생님이 대모 현장으로 나갔을 때 학생들은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고, 선생님은 쇠창살이 달려있는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가려졌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함께 학생운동을 같이한 친구며 동지라는 걸 서로 알아보고 슬펐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염병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그 경이 생각났다.

그도 제복을 입고 무리에 가려져 있었지만


본인이 다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중학생을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날렸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지금 중학생의 엄마가 된 나는 가끔 이 일을 떠올리면서 그때 화염병을 내가 맞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화상을 입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에 이름 모를 의인을 만나는 행운이 있다면 행복한 삶은 지속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의 의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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