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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10. 2020

친절한 나의 주치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일주일 전에 기관지 알레르기에 관한 약을 받아왔는데 약이 잘 안 들어서 일주일 내내 기침을 하다가 결국 오늘 아침에 부지런히 챙겨서 병원에 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소아과 병원에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있다. 내가 여기 아파트에 입주해서 산지 십삼 년 정도 되니 아마 그 의사 선생님을 알게 된 지 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날씬하며 키가 180cm 정도 된다.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길어서 텔레비전에 나올만한 잘생긴 선생님이라고 하면 어울릴듯하다.


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아이의 아픈 상황을 매우 자세히 설명하며 친절하게 상담을 해서 인기가 많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대기 시간은 길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고 여유 있게 상담받아 마음 개운하게 나올 수 있어서 그 병원에 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마음이라서 항상 그 병원은 사람이 많다.


내가 20대 초반에 독일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 의료체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동네에서 구역별로 한 의사 선생님이 담당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내가 사는 구역에는 그 병원에 1차적으로 가서 상담을 받고 그곳에서 해결이 안 되면 소견서를 받아서 2차 병원으로 가는 형태였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독일이 어떤 의료체계인지 잘 모르지만 내가 있던 그 시기엔 그래서 동네 의사선생님을 "나의 주치의"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날씨가 매우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낭만을 찾아서 라인강 위에 있는 다리를 그 거센 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통과를 했다. 매우 긴 다리였고 바람은 차가웠다.


나 혼자 걷기는 심심할 것 같아서 친구를 한 명 설득해서 함께 걸었다. 그 친구는 스페인에서 독일로 유학 온 친구였는데 아시아인 친구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빈번하게 친구와 함께 하는것을 좋아했던 나를 그녀는 이해하기 힘들어 했지만 내가 늘 그녀에게 "아시아의 문화"라고 말을 해서 그녀는 다른 문화로 받아들였다.


로맨틱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녀는 나와 함께 그 다리를 함께 건넜고 결국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병원도 같이 갔다.


독일에서는 감기에 걸렸다고 웬만해서는 약을 주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나는 따뜻한 카밀레테(케모마일 차)를 마시고 푹 쉬라고 말하면서 돌려보내는 그 의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일인 의사는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친절한 상담을 하고 약을 한 알도 주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절망을 했고 결국 나와 나의 친구는 일주일 정도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그 독일인 의사 선생님처럼 그는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약을 세게 지어주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던 나는 항생제 내성이 생길 만큼 많이 먹고 자랐을 텐데 이제 와서 항생제를 조심해서 쓰면 무슨 소용 인가 싶지만 나의 주치의는 포기하지 않고 약을 약하게 처방한다.


지난주에 나는 분명히 3주 정도 기침이 심했고 코로나 때문에 중간에 병원에 올 수 없었다고 그에게 나의 의사를 표명했다.

늘 먹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은 의사 선생님이 잘 안 주려고 하는 약이다. 정말 기침이 심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질 때만 처방을 해주는 약인데 나는 그것이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갔는데 세상에나 그 약이 없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이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나에게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일주일 정도 약을 드셔 보시고 그래도 기침이 안 가라앉는다고 생각이 되면 다시 나오세요"라는 말이었다.


결국 일주일 내내 고생을 하고 오늘 나는 비장한 각오로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나 내가 원하는 약을 기필코 받아오리라는 다짐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병원에 도착을 한 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고 무사히 내가 원하는 약을 받아왔다!



십삼 년 전에 처음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는  기관지 알레르기가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편이었다.


그는 나에게 기존에 다녔던 병원에 전화를 해서 내가 복용했던 약의 이름을  문의할 것을 권했다. 그 이유는 기존에 잘 듣는 약을 알아야 환자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약을 다양하게 처방해서 나에게 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가 힘들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 연락을 해서 약 이름을 알아내 그에게 말해 줬지만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내가 먹던 약을 다 주지 않고 그가 약을 조절했다. 약의 성분이 세거나 또는 너무 자주 복용해서 내성이 생겼을 때는 내가 위급 시 그 약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는 내가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하면 그 결과표를 가져오라고 해서 내 기관지와 관련된 결과를 함께 봐주었다. 꼭 기관지 관련이 아니어도 의학용어를 잘 모르는 내가 결과지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물어보면 그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중학생인 아이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다. 독감에 걸린 건 아이인데 그는 기관지 알레르기가 있는 내가 독감에 걸려서 폐렴으로 진행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을 아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고 집에서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아이에게 독감을 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를 했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일주일 내내 집에서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에게 독감을 옮지 않았다.


본인에게 오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그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도 "친절한 주치의" 이다.


신에게 건강함을 선물 받지 못한 나는 늘 골골해 하면서 지내지만 어쩌면 신은 나에게 좋은 주치의를 보내 주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보라고 격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한번 크게 잃어봤던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가 더없이 소중하다.



거실에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보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가족과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음에 큰 행복감을 가진다.


나에게는 순간 순간이 찬란한 일상인 것이다.


그냥 주어지는 선물은 기쁠 수 있지만 소중함이 덜 할 수 있다.

나에게 조금 어렵게 얻어지는 "건강함" 은 일상을 살아갈 때 더 많이 감사하게 되고 또 나에게 오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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