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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01. 2020

한번 해 보지 뭐 어때?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새벽에 스산하게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오는 듯 마는 듯 가만히 그리고 자세히 창밖으로 내다봐야 알 수 있는 빗방울이 나뭇잎을 적시며 흔들고 있었고,
창문을 열어보니 잠이 확 달아날듯한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딱 오늘 아침 같은 날씨가 내가 20대 초반에 유학을 떠났던 독일의 날씨랑 너무 닮아서 이런 날은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는다.
가장 오래 머물렀고 공부했던 곳이 독일이고 가장 그리움을 담아 다시 가고 싶은 곳도 독일이지만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도 난 단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고 일부러 그 주변 국가들만 다녔다.
그립지만 아픈 곳으로 남은듯하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꼭 이루어지진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던 나는 그림에도 관심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 미술 선생님이 내가 그렸던 그림을 보고
전공할 것을 권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친 나는 피아노도 그림도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을 갔다.

그리고 독일로 유학을 간 나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것과 다른 토론 수업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수업 준비를 하며 공부의 즐거움을 알아갔지만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IMF는 나를 한국으로 귀국시켰다.

나는 잠시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아서 다시 독일로 돌아갈 생각에 일시 귀국이었지만, 회사에 정직원으로 취업이 되고 지금의 신랑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영구 귀국으로 바뀌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큰돈이 되지 않아서

회사에 취업하기로 마음을 먹고 고용보험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웹디자인을 신청해 고용보험과 연계된 학교에서 6개월 동안 수업을 받았다.

웹디자인을 배워보니 웹 프로그램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다시 프로그래머 과정을 신청했고 합해서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취업 준비를 했다.
그곳에서 나와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IMF 실업자나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분위기가 암울했었다.
그때 사람들은 웹디자인&웹 프로그램을 공부해도 그것과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취업 못한다고 회의적이면서도 다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서류전형 나이에도 걸리지만 원서들을 보냈다.
그중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회사 부근의 커피숍에서 핫초코를 주문해 마시면서 꽁꽁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였다.

면접 봤을 때가 가을이었으니까 이쯤 되었나 보다.
많이 떨렸고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라 어느 정도 기가 죽어 있었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면서 내게


괜찮아, 내 포트폴리오가 맘에 들어서
서류전형을 합격시킨 거잖아,
한번 해보지 뭐 어때?



라고 마음으로 말하며 면접 시간에 맞춰서 회사로 갔다.


면접관들이 5명 정도 앉아 있었고 나와 다른 세명이 함께 들어가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고 대답이 오고 갔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불쾌했던 질문이 있었다.
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냐면 웹디자인에 관한 포트폴리오나 직무에 전혀 상관이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미혼이시군요? 결혼 후 아이가 생겼다고 가정합시다. 어느 날 아침 아이가 갑자기 아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를 제외한 세명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요청하고 반드시 회사에 출근한다고 말했다.

대답의 순서가 내가 됐을 때,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마음을 다해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히 일할 것입니다.
내가 회사에 마음을 주고 열심히 일을 한다면 내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회사도 나를 배려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전화를 해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그다음 날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면접을 마치고 떨어질 것을 예감한 나는
그 회사를 잊고 있었다.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의아했고 입사해서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 회사 사람들과 익숙해졌을 때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내 성격 때문에 그때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물어보았다.

"왜 저를 합격시켰나요? 저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으셨을 텐데요?"

"프라하의 별님이 너무 당당해서 안 뽑으면 회사에 손해가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면접관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그런 대답을 한 사람은 프라하의 별님 단 한 명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저런 자신감을 보이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합격시킨 겁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내 삶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전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심하게 아팠을 때도
"괜찮아 그까짓 병 따위 이길 수 있어 한번 해 보지 뭐 어때?"

다시 방과 후 교사 면접 보러 학교에 갔을 때도
"괜찮아 한번 해 보지 뭐 어때?"​

브런치 작가 응모할 때도 나 자신에게 해준 말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에 빠졌지만 다시 내게 용기 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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