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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21. 2021

이문세의 배신

나의 사춘기 시절을 그리워 하며

내가 다니던 중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딱 한 개만 있었다. 명동시내여서 인지 어른들의 쇼핑을 위한 가게들은 많았지만 학생들을 위한 가게는 학교 앞에 화방 한 곳과 그 옆에 문방구 하나만 있어서 나는 하교 후 친구들과 다이어리를 꾸미는 용도로 스티커를 사기 위해 문방구를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이 꼭 들렸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인지 문방구 주인과 우리들은 서로 얼굴이 익숙했고 문방구 주인은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때 유행하던 가요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은 유행하는 노래의 가수의 사진이나 책받침을 주로 사곤 했지만 5살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던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가요에는 관심이 없어서 가수들의 이름과 얼굴을 한 명도 몰랐다. 그리고 친구들은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나는 친구들과 조금 다르게 고전문학에 빠져 있었고 친구들에게 파우스트를 쓴 괴테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철학자인 칸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또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한다며 친구들은 내 입을 틀어막곤 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알기 힘든데 왜 우리들이 독일 사람을 알아야 하냐며 나의 말문을 종종 막곤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로 공상을 하고 친구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 안으로 관광버스가 들어왔다. 나는 멀미가 심한 편이라서 미리 멀미약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반 아이들은 음악을 크게 틀고, 마이크를 잡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멀미약의 효능으로 인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렸고 나는 반쯤은 자고 또 반쯤은 깨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한참 춤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놀던 아이들도 지쳤는지 각자 자리에 앉았고 버스에서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에 나는 깜짝 놀랐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남자 목소리였는데 마음을 담아서 부르는 것 같았고 내 심장을 두드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사도 너무 예뻐서 반쯤 졸던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워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러운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나는 너무 놀라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어떤 가수가 부르는 건지 물었다.
그 친구는 이 노래가 얼마나 유명한데 여태 그것도 모르냐며 나를 타박하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이문세의 목소리에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가사에 빠져들었다.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였고 그때까지 가요는 하나도 모르던 나에게 정말 느닷없이 다가온 아름다운 한국 가요였다. 나는 이문세의 사진이 너무 가지고 싶어 졌다. 소풍을 다녀온 후 다음날 학교에 등교를 하게 되었을 때 학교 앞의 문방구에 잠깐 들렸다. 원래는 하교할 때 문방구에 들르지만 그날은 너무 마음이 급해서 학교 등교할 때 잠깐 시간을 내어서 문방구에 갔다.




문방구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이문세 사진 있어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당연히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럼!" 이라고 대답을 하고 사진 여러 장을 꺼내 보였다.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다시 그녀에게 말을 하였다. "이 사람 사진 말고요! 이문세 사진으로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이문세야!" 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나와 친한 그녀가 나에게 장난으로 다른사람 사진을 이문세 사진이라고 제시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도저히 내가 상상하던 이문세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고 호소력이 짙어서 나는 아마도 순정만화 속에 있는 남자 주인공처럼 생긴 이문세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문세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니 나는 정말 당황을 하였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던 이문세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이문세 사진 출처  KMOONfind




결국 나는 문방구에서 이문세 사진을 한 장 사서 나왔다. 그의 노래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안 살 수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산 연예인 사진이 "이문세 사진" 이였다.
그 후로도 나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그의 노래가 매우 좋아서 테이프도 구입하고 이문세가 별밤지기로 있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고 또 그의 음악이 나오면 기다렸다가 녹음도 하고 다른 중학생들이 사춘기를 보내는 방법과 비슷하게 나도 그렇게 보냈다.




지금도 가끔 이문세 님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왠지 반갑고 내가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서 나 혼자 웃곤 한다.



처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생긴 그였지만 나는 그의 음악세계에 빠져들면서 진심으로 그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그 기억은 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을 채워주어서 불안정했던 나의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내게 되었다.




음악, 글, 미술, 이 세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주는 영혼의 선물이 아닐까.







대표 사진 출처

©  pepperminting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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