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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24. 2021

그대는 관상을 믿는가

그대가 믿는 대로 그대 운명도 바뀔 수 있다

2013년에 영화 "관상" 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는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천재 관상가 김내경(송강호 분)이 나온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독일에 있을 때 만났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와 있었다. 나와는 한 대학의 어학원에서 만났고 그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다. 그리고 그는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는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좋았지만 막상 독일인 앞에서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서 내가 몇 번 통역을 도와주었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조금은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나는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친해서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그는 약간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떠드는 우리의 이야기를 한쪽 자리에 앉아서 주로 듣고만 있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 중에 러시아에서 온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17살이었고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려고 유학을 와 있었다. 항상 명랑했고 우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아빠와 많이 친하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무심히 지나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변함없이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한국말로 "이상하다, 얼굴에 아빠가 없는데 자꾸 아빠 이야기를 하고..." 라고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서 나는 깜짝 놀라 그가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그녀가 아빠가 없는데 자꾸 아빠 이야기를 해서 이상하다고 말을 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네가 한번 독일어로 물어봐!,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

"오빠, 그런 질문은 실례가 되어서 안돼요!"



나는 그에게 그런 개인적인 질문은 실례가 되어서 물을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그리고 수업 후에 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수도권 국립대학의 철학과 교수님이었고 관상을 공부해서 볼 줄 안다고 하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 손주라서 너무 기뻤지만 얼굴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게 살아갈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사주와 관상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관상을 더 가르친 이유는 사주는 상대에게 생년월일을 물어봐야 하지만 관상은 얼굴만 보고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나쁜 일을 피해 가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사주와 관상을 배우면서 자랐고 사람의 얼굴을 보면 본인에게 해를 끼칠지를 구분할 수 있고 또한 그 사람의 지나온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고 말을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종교가 기독교라서 그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고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쉬는 시간에 러시아에서 온 친구가 아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가 서툰 독일어로 그녀에게 아빠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실은 아빠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보고 싶어서 실제로 지금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한 거야, 그런데 어떻게 내가 아빠가 없는 줄 알았어?"



"보통 사춘기 때 여자들은 아빠랑 안 친한데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하는 모습에서 그리움이 보였어, 그래서 추측을 한 거야" 라고 그가 둘러대면서 말을 하였다.



다행히 서로 불편한 감정 없이 무사히 잘 넘어가서 나는 안도하였다. 하지만 나는 관상을 볼 줄 아는 그가 너무 신기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교 후에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외국인도 한국인처럼 관상을 읽을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을 하니 그는 사람의 얼굴은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관상이 그대로 통한다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에게 나의 관상을 봐달라고 나의 미래가 너무 궁금하다고 말을 했지만 그는 원래 가까운 사람 것은 봐주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피하고 말을 안 해 주어서 내가 삐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난하게 넘어가는 모든 일들이 전부 어렵게 다가왔다. 기숙사 신청을 해도 일반적인 것보다 대기가 너무 길었고 종교재단 기숙사도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실이 거부되었다. 또한 일반 월세를 알아보고 들어갔는데 독일에서는 열쇠를 잃어버리면 많이 복잡하고 변상할 일이 커지는데 열쇠를 잃어버려서 한동안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열쇠를 다시 찾아서 해결이 잘 되었다. 비자 연장은 대학생이면 무난하게 통과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 반려되어서 고생을 하였다. 항상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난하게 가는 삶이 그에겐 늘 복잡하게 얽히고 힘들게 다가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에게 힘들겠다고 위로도 해주고 독일어로 통역할 일이 있으면 도와주었다. 또한 그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그런 힘든 일들을 잘 해결하면서 지나가라고 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관상을 가르쳤다고 그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다른 사람의 관상도 몇 번 봐주고 맞추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관상"에 대해 믿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미래가 너무 궁금해서 그에게 몇 번 말해달라고 졸랐지만 한 번도 나에 대해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반드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대로 내 운명도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


나는 그가 어려울 때마다 그렇게 함께 다니면서 독일어 통역을 해주었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관상은 쉽게 봐주면서 내 것을 안 봐주는 그가 너무 미워서 나는 결국 토라졌다. 하지만 삐지는 것이 오래가지 않는 나는 다음날 이면 내가 어떤 것으로 삐졌는지도 잊은 채 학교에서 반갑게 그와 인사를 하곤 하였다.



남자 친구가 없었던 나는 내가 몇 살 때 남자 친구를 만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것 하나만 열심히 물었는데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았던 그는 각자 전공 공부로 대학이 정해져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 후에 한 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의 말이 맞아서 놀란 적이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관상으로 풀어서 본 것들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한


"반드시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대로 내 운명도 바뀔 수 있어" 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서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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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관상 네이버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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