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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26. 2021

광안리 밤바다

타인의 호의를 거절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대학에서 전공하는 학부에 대한 고민이 컸던 시절이었다.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차선으로 대학을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항상 마음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 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현실도피나 아니면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독일로 유학 가는 것을 고민하였다. 생각할 것이 많았던 나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고 서울에 있는 집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이모네가 있는 부산이 생각났다. 나는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부산행 기차를 탔다.




워낙 혼자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기차에 올라서 창가 쪽 내 자리에 앉았다. 혼자만의 여행은 동행자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 혼자 생각할 일이 많을 때 떠난다. 기차는 규칙적인 기계음 소리를 내면서 부산으로 향했고 나는 계속 창문으로 밖의 풍경을 보면서 내 미래의 고민을 생각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부산역에 도착을 하였다. 처음 가는 부산이 아니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날따라 왠지 어색하게 기차에서 내려 부산 시내로 향했다.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어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타나면 그곳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간단한 긁적거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날도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참 동안 긁적거림을 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길래 다시 카페를 나와서 깜깜한 하늘 아래에 간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구경하면서 길을 걸어가다가 모래사장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광안리였다.




파도 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섞여서 내 귀에 들려왔다.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몰아내듯이 힘차게 들렸다. 그 소리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퍼져 나갔고 나는 어떤 거에 끌리는 듯이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 들어가 바다 가까운 곳으로 걸어갔다. 비가 살짝 내려서 가방 안에 들어있던 노란 우산을 꺼내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모래사장에 다리를 펴고 앉았다. 바다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고 나에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내 마음의 어수선한 고민거리도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하염없이 파도를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내가 앉은자리 뒤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소리는 들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 시간이 지나갔다.



모래사장 위에 앉아있는 내 옆으로 누군가가 힘겹게 걸어왔다. 한 여인이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또 한 손에는 컵이 있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혼자 왔어요?"


"네"


"이거 커피예요! 카페 사장님이 아가씨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커피를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져온 거니까 마셔요!, 여기에 둘게요, 다 마시면 여기에 두어요, 내가 찾으러 이따가 올게요!"



 ©  acekreationsphotography, 출처 pixabay




내가 그녀에게 거절의 말을 하였으나 그녀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커피잔이 들어있는 쟁반을 내 옆에 내려놓고 황급히 사라져 갔다. 나는 당황을 하였지만 내 옆에 그냥 커피잔을 두고 마시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음료수에 수면제가 있는 줄 모르고 마셨다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커피가 그것도 카페 안이 아니라 밤바다 앞까지 배달해 준 그 커피가 마냥 의심스러웠고 차마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커피를 무시하고 그냥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생각을 마저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바다를 계속 보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아까 커피를 나에게 가져왔던 그녀가 다시 내 옆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하였다.




"아니 아가씨, 내가 여기까지 가져다준 성의도 있고 카페 사장의 마음도 있는데 이걸 한 모금도 안 마시고 그냥 두면 너무 하지 않나요?"



"제가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 두었어요!"


"그래도 한 모금이라도 마셔요! 그냥 가져가면 서운할 것 같아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내미는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에게 예의상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고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가 사라진 후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것이 너무 불안했다. '어쩌면 시간이 조금 흘러서 잠들듯이 쓰러질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걸어 나와 공중전화박스를 찾아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하였다. 우선 이모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전화를 받은 사촌동생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그곳 카페에서 다시 삐삐를 치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동생이 시키는 데로 하였고 내가 카페 안에 있을 때 동생이 나에게 왔다. 나를 발견한 그는 내가 다친 곳은 없는지 그리고 안전한지 확인한 후 많이 화를 내었다. 밤바다에 위험하게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를 그렇게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그날 이후로 계속 들었다. 하지만 커피 한 모금을 마셨던 나는 졸리지도 않았고 무사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계속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카페 사장과 그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 오는 날 노란 우산을 쓰고 어두운 바닷가 백사장에 혼자 하염없이 앉아 있는 내가 눈에 너무 잘 보였을 것 같았다. 날씨가 쌀쌀하니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고 싶어서 아마도 나에게 커피를 보내었고 그 직원은 나에게 가져온 것일 텐데 나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들은 수면제가 들어간 음료에 관한 뉴스가 생각이 나서 경계를 했던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그날 이후 나는 한국에서든 유럽에서든 여행을 할 때 낯선 이가 나에게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잘 살펴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운이 좋아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별 탈 없이 나는 유럽에서 50일 넘게 혼자 여행할 때도 낯선 이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아무 사고도 없이 독일로 무사 귀환했었다.



광안리 밤바다에서의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낯선 이가 나에게 베푸는 선의의 호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낯선 곳에서는 어느 정도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의 안전은 나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 인해 선의의 호의를 베푸는 이를 몰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대표 사진 출처

©  kordi_vahle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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