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Jan 30. 2021

야간 자율학습 도망

학창 시절을 그리워 하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젊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해서 바로 우리 학교로 부임을 해서 온 선생님들이었고 남자 선생님들은 27~28살, 여자 선생님들은 25살이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분위기가 활기차고 선생님들은 대학에서 배운 교육학의 이상을 첫 제자인 우리들에게 실행하고 싶어 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선생님들과 우리들은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그 당시에도 강했고 우리는 공부할 양이 많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로 실시하던 시대였다. 한참 청춘이고 궁금함이 많은 우리들은 날이 좋으면 나가서 놀고 싶었지만 야간 자율학습이 우리들의 계획을 항상 가로막았다.



나는 공상이 많았고 조금은 엉뚱한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나를 항상 챙겨서 데리고 다녔다. 나는 가방 안에 실내화를 넣는 것이 책과 섞인다고 생각해서 정말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초등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신발주머니를 사달라고 해서 그 신발주머니에 실내화를 넣고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전교생 중에 단 한 명, 바로 '나' 였다. 나는 가끔 딴생각을 하느라 신발주머니를 학교 안에서 잘 잃어버렸는데, 사실은 잠깐 신발주머니를 두고 그 자리에 놓아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내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년, 반, 번호와 이름을 적어두지 않은 신발주머니는 항상 나의 반으로 반드시 돌아왔다. 그것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변함없이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신발주머니가 항상 내 손안에 되돌아온 것이 너무 신기하다.



나는 편리함을 추구했지만 친구들은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토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낮시간이었고 우리는 종로로 가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너무 흥분을 하였다. 친구들은 교복 스커트를 접어 올리고 머리를 매만지고 살짝 화장을 하고 난 후 나를 돌아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신발주머니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각이 있어서 잘 접어지지도 않는 나의 신발주머니를 친구들은 힘주어서 접고 내 가방 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나의 옷을 매만져 주고 내 손을 붙잡고 신나게 인사동과 종로에서 마음껏 구경을 하면서 놀았다.



따뜻한 봄바람이 라일락 꽃향기와 어우러지고 살랑거리면서 불어오던 날이었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우리들은 고개를 들어 창밖 하늘을 보았는데 너무 예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꽃향기가 기분 좋게 나서 도저히 공부할 마음이 안 드는 날이었다. 밖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던 우리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도망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기에는 엄격한 수위 아저씨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방법은 학교 후문 쪽이었는데 큰 문이 단단하게 잠겨 있어서 도저히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쪽은 학교 뒤뜰 쪽이라서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담을 넘어서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친구들은 운동신경이 좋았지만 나는 운동신경이 좋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나를 버리고 너희들만 나가서 놀라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의리" 를 강조하면서 나를 꼭 데리고 갈려고 하였다.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반별로 이동하는 시간에 우리들은 재빠르게 가방을 들고 움직였다. 나의 신발주머니는 친구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구겨져서 내 가방 안에 있었다. 우리들은 조용히 교실을 나와 뛰지 않고 걸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복도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뒤쪽 현관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우리는 뛰어서 담벼락 쪽으로 갔다. 친구들이 내 책가방을 포함해서 담벼락 너머로 일단 책가방을 모조리 다 던져 버렸다. 그리고 운동 신경이 좋은 친구 한 명이 먼저 담벼락 위로 뛰어올라 그곳에 앉아서 우리들을 한 명씩 손을 잡고 위로 올려주었다. 친구들은 담벼락 위에 앉았다가 반대쪽 담벼락으로 뛰어 내려서 학교를 한 명씩 탈출하였다. 나와 다른 친구 한 명만 남았을 때 나는 담벼락에 있는 친구 손을 잡고 내 뒤에 있는 친구가 나를 밀어 올려 아주 힘들게 겨우겨우 담벼락 위에 앉아있게 되었다. 그다음에 나는 뛰어내리면 되었다. 나는 뛰어내리려고 반대쪽을 보니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우리 학교 담벼락이 학교 안쪽은 2미터라면 반대쪽은 2.5미터가 넘었던 것이다. 지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고 친구들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무사히 뛰어내렸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내 뒤로 한 명 남은 친구도 담벼락에 올라앉았고 결국 나보다 먼저 뛰어내렸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친구들이 전부 뛰어내렸고 나 혼자 담벼락에 오도 가도 못하고 앉아있게 되었다.



친구들은 애가 타서 얼른 뛰어내리라고 작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기들이 힘을 합쳐서 나를 받아줄 터이니 믿고 뛰어내리라고 했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발견한 나는 매우 놀랐다.


"애들아, 나를 버리고 너희들이라도 얼른 도망가! 선생님이 지금 오고 있어!"

"프라하의 별!  뭐해?  뛰어내려! 괜찮다니까!"

"무서워, 난 안돼, 너희들이라도 얼른 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가까이 걸어와서 웃고 서 있었다.

"프라하의 별, 거기서 뭐하니?"

"햇살과 하늘이 너무 예뻐서 하늘 구경하고 있어요!"

"그래? 하늘이 이쁘긴 하네, 이제 그만 내려와라"

"못 내려 가요, 선생님! 무서워서 못 뛰어요!"


선생님이 나에게 가까이 와서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나에게 괜찮으니 선생님 쪽으로 뛰어내리라고 말을 했고 나는 나에게 가까이 서서 두팔을 벌리고 있는 선생님 쪽으로 몸을 뛰어내렸다. 그는 나를 안아서 안전하게 받아주었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는 까치발을 한채 담벼락으로 머리를 내어 친구들을 확인하면서 한 명씩 호명을 하였다.


"선생님이 다 봤다! 책가방 들고 어서 학교 안으로 들어와라!"


결국 친구들은 내 책가방까지 챙겨서 들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앞에 여섯 명이 쪼르르 서 있고 선생님은 우리들을 보면서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들 야간 자율학습 안 하고 도망가려고 한 것 선생님한테 현장에서 잡혔으니 현행범이다!"


"선생님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우리들은 목소리를 모아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왜 프라하의 별을 버리지 않고 너희들은 그 자리에 있었니? 도망가서 놀지!"


"선생님, 그래도 우리가 친구인데 어떻게 친구를 버려요? 의리가 있죠!"


"의리? 그래? 하하하!"


선생님은 친구들이 "의리"라고 말하는 소리에 웃음이 나는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교무실에서 반성문을 한 장 쓰게 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러 다시 교실로 보내주었다.


우리들은 그날 학교 탈출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서로를 위하는 우정이 더 깊어졌다. 서로를 챙기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우리들의 마음은 "의리" 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대표 사진 출처

©  Broesisphotography,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광안리 밤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