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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Feb 21. 2021

내가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유

내가 신랑을 처음부터 친구로 만나서 일까.

친구에서 연인이 되어서도 나는 데이트를 할 때 비용을 합리적으로 부담하기 위해서 그날의 일정에 따라서 각자 만원 또는 이만 원을  내고 그것을 합친 돈 안에서 데이트를 하였다. 남은 돈은 데이트 통장에 저금을 하였고 그렇게 푼돈이 모여서 목돈이 되었을 때 커플링을 맞췄다.



그와 내가 동갑내기여서 그렇기도 하였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녀평등" 사상이 강해서 어떤 것에서든 평등을 요구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신랑에게 가장의 무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하면 가정경제는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도 그리고 가정 살림도 부부가 서로 역할을 잘 분배해서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성인남녀는 평등하고 가정에서도 평등함을 유지하려면 책임도 똑같이 나누어져야 한다. 맞벌이만이 가장의 무게를 나누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전업 주부인 나는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적정선의 기준에 맞추어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있다. 나는 간소한 삶을 지향한다. 나는 최대한 돈을 모으고 경제에 관한 책들과 신문을 읽으면서 모은 돈으로 어떻게 투자를 해야만 하는지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가장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혼집을 서울에 마련할 수 없어서 신랑의 회사가 있는  기흥에 마련했을 때도 나는 광화문에 있는 내 회사로 왕복 5시간 넘는 통근 시간을 감수하고 재택근무로 바뀌기 전까지 3년을 꼬박 다녔다. 버스 안은 앉을자리도 없었고 늘 좁은 통로에 서 있어야만 했다. 삶이 고단했지만 그렇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나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룸을 전세로 마련하면서도 대출을 해야 했고 그 대출금을 나는 빨리 갚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맞벌이를 하니까 신랑에게 가사분담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서 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신랑은 내가 긴 통근 시간을 감수하고 회사를 다녀서 힘드니까 본인이 가사를 전담하겠다고 말을 했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우리 신혼집이 자가용으로 5분 거리였기에 그는 살림을 전적으로 맡아서 했다. 그는 일찍 출근하는 나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렸다. 그는 나보다 먼저 퇴근해 집에 오면 집안 청소를 말끔히 해 놓고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내가 출퇴근을 할 때 긴 시간을 소요하고 버스 안에서 힘들게 서 있는 것을 그는 마음 아파했다. 부부는 힘들 때 전우애가 생기는 것 같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견디면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나는 회사의 배려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을 고용하지 않고 내가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하였다. 그때 내가 많이 피곤했는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서 병원으로 불려 갔다. 그리고 3년간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건강보험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검진받고 치료할 때 의료 비용 지출이 컸다. 그때 돈이 없으면 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치료를 잘 받고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받으러 가고 있다.



치료를 받을 때 의사와 신랑의 강력한 권유로 나는 퇴직을 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맞벌이를 열심히 해서 분양받은 아파트의 대출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었다.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그때부터 미니멀 라이프와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학책만 좋아했던 나는 의도적으로 경제신문을 읽었고 경제뉴스를 듣고 경제 관련 책을 읽었다. 혼자 돈을 버는 신랑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생활비도 아끼고 최대한 적금과 예금을 했다. 지금 그 종잣돈을 가지고 주식과 다른 곳에 투자를 하고 있다.



신랑이 언제 퇴직을 할지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 노후에 삶에서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이 부족하다면 병이 들었을 때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의 우아함과 행복감을 유지하려면 내가 생각하는 적정선의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후의 삶에서 기본적인 생활만 하고 살 수도 있다. 그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각자가 원하는 취미 활동을 하고 가끔 여행도 다니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생활비 이외에 추가의 비용이 더 필요하다. 나는 취미가 글쓰기이고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이라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여행을 좋아해서 그건 포기가 잘 안된다. 그리고 신랑의 취미는 어느 정도 비용이 지출되는 것이라서 나는 신랑의 취미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비용을 마련하고 싶다.



내가  크게 아팠을 때 고정적인 수입을 벌어오는 신랑이 있어서 마음 놓고 퇴직을 했고 치료도 마음 편안하게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퇴직할 때도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퇴직하도록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유이다.






대표 사진 출처

© nattanan23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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