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나를 닮았다

by 주원


쌍둥이는 초음파 사진부터 코가 남편을 꼭 닮았었다.(다른 데도 똑같다.) 혹시 막내는 날 닮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얘는 손만 나를 닮았다. 딸 셋이 전부 남편만 닮은 게 너무 서운했다.


어느 날, 친정에 가서 한창 말짓하는 딸들 흉을 보는데 아빠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 어렸을 때랑 똑같다.”

“똑같다니 무슨 말이에요. 하나도 안 닮았어요. 내가 얼마나 얌전했다고요.”


아빠는 대꾸도 없이 웃기만 하셨다. 생각해 보니 칭찬받은 기억은 없고 혼난 기억은 넘치게 많았다.


어렸을 때 모내기를 하던 날이었다. 어른들이 열 맞춰 모내기를 하는 동안 코흘리개들은 땅바닥에서 놀았다. 길 아래로 가라앉은 논이어서 우리들이 둑에 앉아 있으면 발이 달랑달랑거렸다. ‘팔을 뻗으면 논에 손이 닿을까?’ 우리끼리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아이는 아니어서 기다란 나뭇가지를 가져왔다.


“내가 이 걸로 높이를 재 줄 테니 기다려봐.” 하고 호기롭게 말했다.


둑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뭇가지를 길게 논바닥으로 뻗었다.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 나뭇가지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순간 균형을 잃은 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머리부터 논바닥에 박혔다. 애들이 소리 질렀고 어른들이 달려왔다. 우리 엄마는 별명이 보살이었는데 그날은 내 등짝을 아주 맵게 때렸다. 가뜩이나 창피한데 엄마는 진흙을 뒤집어쓴 나를 공동수도로 데려갔다. 수도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힘차게 펌프질 하는 엄마의 손길이 이어지자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내 눈에서도 폭포가 쏟아졌다.


그날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산지기에게도 여러 번 혼이 났다. 동네 언니오빠들이랑 같이 밤을 주웠는데 혼나는 건 항상 나였다. 다리가 짧은 게 문제였다. 하지만 어린애는 혼나도 이상할 게 없었고 혼난 다음에는 애기밤을 한 주먹씩 더 쥐어주기도 해서 서럽지는 않았다.


가끔은 동네 언니 오빠네 집 광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가져다 구워 먹기도 했다. 누구네집 성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불을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땅을 파고 불을 피운다음 감자나 고구마를 넣고 한참을 기다렸다. 지나가던 아줌마 아저씨한테 걸리면 호되게 혼나기도 했고 가끔은 다 익기도 전에 저녁밥 먹으러 불려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저녁 내내 불이 꺼지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했고 밤에 오줌 싸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싸움꾼이었다. 입으로 하는 싸움 말이다. 같이 놀던 언니오빠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화가 많이 났다. 나랑 잘 놀아주던 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괜히 심통을 부리고 싸움을 걸었다. 언니가 1학년이라고 자랑을 하기에 “나는 빵학년이다.” 소리치고 그 집을 나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옆집 동생네로 갔다. 그 집은 아이가 하나뿐이라 장난감이 많았고 내가 가면 강아지처럼 좋아했다. 그 아이 똥꼬를 닦아주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 나이 때 혼자 뭐든 다 했다고. 동생을 데리고 한참을 놀다가 집에 오면서 조금 울었다. 나는 사실 언니랑 놀고 싶었다.


아빠의 한마디가 나를 어릴 적으로 던져놓았다. 나는 지는 걸 싫어했고 호기심이 많은 데다 손이 야무져서 혼날 일이 많았다. 동네 아줌마가 쟤는 나중에 뭐가 될라고 저러냐고 했는데, 나를 꼭 닮은 딸 셋을 키우려고 그랬나 보다.


AI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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