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더라.
두 명의 부모에서, 한 명의 부모가 된 지 벌써 7년 차.
자의적 싱글맘이 아닌, 타의적 싱글맘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그래도 행복한 가정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한순간의 사고도 아닌, 과로사로 우리 곁을 떠난 내 남자.
엊그제부터 앓아서 몸과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과거를 되새겨본다.
7월 말의 급 외가로 떠난 여름휴가,
8개월 된 작은 아기는 할머니들 손에 맡겨두고 나간 시내 나들이.
올케와 큰아이를 동반한 우리 가족.
밥 먹고, 일어나려는 찰나 아이 앞에서 고꾸라진 내 남자..
기사로만 접하고, 매스컴으로만 접하던 그 상황이
내 앞에 닥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놀랬을 아이를 보듬고, 마침 다른 손님이 의학적 지식이 있었는지,
이것저것 도와주시고. 119를 부르고.....
왜 구급차에 내가 타지 않았을까,
왜 나는 아이를 챙긴다고 올케를 보호자로 태웠을까.
내가 옆에 있었으면. 그렇게 가지 않았을까.
매 순간 아직도 후회하는 순간들이다.
뒤따라서 뒤늦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는데.
올케는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봤을까.
검사 중이라는데, 왜 벌써부터 그런 표정이었을까......
잊히지 않는 전남병원 응급실 의사의 말 한마디.
"장례는 그래도 가까운 곳에서 지내셔야 하지 않으시겠어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무기력해지고 믿기지 않았는데.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앰뷸런스를 타고 여수에서 부산대학병원까지.
눈물도 안 나고, 계속 중얼거렸다. '이대로 가면 안돼. 진짜 나빠. 안돼.'
부산대학병원 응급실.
지금 심장이 뛰고 있는 건, 전남병원에서 살리기 위해 투여한
약 때문에 뛰고 있는... 반응이란다.
이렇게 한순간에 가버릴 수가 있구나.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나 너무 힘들지 말라고.. 병 투병도 안 하고.
오래도 안 있고. 그렇게 응급실에서 가버렸다. 내 사람이. 내 남자가.
쓰러진 지 25시간 만에. 그렇게. 허무하게.
그 이후로는... 아무 생각이 없다.
현실감 제로. 상을 치를 때까지도. 아니 치른 후에도.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억도 없다. 드문드문. 나는 순간들 빼고는.
장례식장에서 기어 다니던 내 작은 그녀와.
빨간 망토를 두른 슈퍼맨 상하복을 입고 뛰어다니던 내 작은 남자.
나한테도. 내 인생에도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구나.
누가 인사를 하는지.
누가 왔는지.
누가 그렇게 우는지.
지금도 기억이 없다.
오는 사람들마다 다들 황당스럽겠지.
그중에는 이틀 전에 같이 술 마시고 떠들고 놀았던 지인들도 있는데.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래서..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질문에.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로봇처럼. 그렇게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렇게. 나는. 타의적 싱글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