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2025 Radiohead Europe tour - Berlin>

by juyeoneee

2025.12.08.MON 8PM @Uber Arena

Radiohead <2025 Radiohead tour - Berlin>


그저 여행이 필요했다. 몇 가지 이유로 긴 고민 없이 베를린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우연히 라디오헤드의 2025년 유럽 투어 소식을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어 리스트를 살펴보는데 마지막 도시인 베를린 일정이 겹치는 게 아닌가. 환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티켓 결제까지 마쳤다. 결제된 금액을 보고 나서야 유로가 1,700원이라는 걸 알았지만 여기서 가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2018년을 마지막으로 공연을 멈췄던 그들이다. 입모양으로 연신 ‘라디오헤드’를 되뇌었다. 현실감이 없는 단어였다. 예매 확정 메일과 함께 나는 2025년 12월에 베를린으로 향해야 하는 당위성까지 부여받은 셈이었다.


예매 페이지에는 직사각형의 무대 뒤편으로도 선택할 수 있는 좌석들이 있었다. 무대 위의 퍼포머를 기준으로 방향이 존재하는 일반적인 공연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몇 안 남은 선택지 중 그나마 정면에 가까운 사이드 좌석을 선택했다. 무대 위의 톰 요크를 전광판으로만 봐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게 어디야’ 싶었다. 베를린 공연이 열리는 우버 아레나는 라이브 공연 외에 MMA 경기가 주로 열린다더니, 아레나에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건 무대라기보단 옥타곤인가 싶은 원형의 구조물 뿐이었다. 무대가 어떻게 생긴 건지 감도 잡지 못한 채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공연 시작이 가까워지면서 아레나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중앙의 구조물은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처럼 그를 둘러싼 구역을 무작위로 하나씩 비추기를 반복했다. 객석을 밝히는 따듯한 빛과 달리 사운드는 어딘가 음산했는데,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 음정을 맞춰가듯 미묘하게 다른 여러 소리가 중첩된 이 레이어가 주는 불안정함은 곧 펼쳐질 순간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자신의 구역이 빛과 소리로 물들면 관객들은 크게 환호한다. 이 공간에서 라디오헤드를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소리치듯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이 게임은 밀려오는 썰물처럼 순식간에 우리를 몰입의 바다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는다. 관객들은 무대(장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연의 일부가 되어 라디오헤드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멤버들은 무대 아래에서 연결된 계단을 통해 중앙에서 솟아오르듯 등장했다. 옥타곤 케이지 안에서 심판의 사인과 함께 시작될 경기를 기다리듯 관객들은 환호하며 무대만을 바라본다. 아레나를 초록으로 물들이며 시작된 ‘Planet Telex’의 왜곡된 기타 사운드를 형상화하는 듯한 파형이 LED 위에 그려지며 스크린 너머의 멤버들의 모습이 중계된다. 뒤이어 시작된 ‘2 + 2 = 5’의 연주가 고조되면서 그들을 둘러싼 12개의 LED 스크린은 각각 다른 높이로 올라간다. 사방이 뚫린 원형의 스테이지에 스크린으로 벽을 세워 시야를 의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고정된 하나의 무대를 다양한 각도로 보여준다. 그들의 라이브에는 풀 세트의 듀얼 드럼ㅡ심지어는 트리플까지도ㅡ에 각각 장착된 드럼 머신과 샘플링 패드, 어쿠스틱 퍼커션부터 수십 개의 이펙터 페달이 세팅된 기타와 베이스, 특정 곡 또는 멤버만을 위해 필요한 악기ㅡ예를 들면 조니의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ㅡ, 실시간 노이즈와 시퀀싱을 위한 모듈러 신스, 그리고 이름을 댈 수도 없을 만큼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테크 라이더가 요구된다. 심지어는 곡 진행 중에도 달라지는 악기 구성에 따라 멤버들의 위치부터 스텝의 동선까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이 모든 움직임과 함께 반응하는 스크린과 조명의 쓰임은 공연 감상의 깊이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는데, ㅡ

*앞선 곡이 마무리되자마자 톰은 기타를 내려놓고 무언가에 쫓기듯 무대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향한다. 아레나가 붉게 물들고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아 숨돌릴 틈도 없이 ‘Sit Down. Stand Up.’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피아노 위에 놓인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한 톰의 표정에 모두가 압도된다.

**무대 의상이라고 하기엔 꽤나 캐주얼하게 롤업 한 데님에 검정 티. 한 손에는 덜렁 핸드 마이크를 쥔 톰 요크. 다음 곡을 시작하기 전 그의 모습은 매번 100미터 달리기의 출발선 바로 뒤, 신호탄이 울리기 만을 기다리는 주자 같다.

***‘The Gloaming’이 시작되고 톰은 특유의 몸짓으로 온 무대를 누빈다. 그러는 가운데 정확히 계산된 타이밍에 무대 아래로 연결된 계단에 나타난 스텝은 조니의 기타와 겉옷을 받아 들고는 1초의 어긋남 없이 사라진다. 몸이 가벼워진 그는 이펙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온갖 소리들을 뒤집고 비틀고 헤집어 놓는다. 소리가 왜곡될수록 톰의 움직임도 뒤틀린다.

****모든 혼란을 잠재우며 ‘No Surprises’의 시작을 알리는 글로켄슈필.

ㅡ 이 순간이 라디오헤드의 투어라는 걸 머리로는 인지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지금이 실제 상황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탓에 멀미가 났다. 예측할 수 없는 자유로움. 거기서 비롯되는 불안과 기대. 무엇보다 이렇게 느슨한 듯 보이지만 모든 요소가 치밀하게 계산되었을 것까지도.


러닝타임 내내 푸른빛을 내며 타오르는 장작불 같았던 톰의 움직임을 보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떠올렸다. 조커가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갈 때의 예측 불가능하고 경쾌하기까지 한 발걸음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조커가 매일 지친 모습으로 오르던 그 계단에서 한순간 춤을 추며 내려가는 장면은 그가 사회로부터 또는 자신을 억압하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가까워짐을 암시한다. 라디오헤드는 개인 혹은 사회의 우울과 불안, 고민과 현상(現狀) 같은 소재들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포장하는데 이 포장지는 너무나 얇고 투명한 탓에 한 꺼풀 아래에 감춰진 게 무엇인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게끔 만든다. 조커가 Don’t forget to smile!이라는 문장의 일부를 지워 Don’t forget to smile!이라는 도발적인 문장을 만들었음에도 완전히 삭제하지 못한 strikethrough(취소선)는 투명한 포장지처럼 원래의 문장과의 대비를 이끌어낸다. 여기, 숨을 곳 없이 사방에서 관객의 시선이 쏟아지는 무대 위의 톰은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려낼 수 있을까.


고대 원형극장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이 아레나는 실험적이고 구조적인 음악뿐 아니라 그들이 무대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게 한다. 아티스트는 스스로 퍼포먼스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이 개방적인 구조를 통해 공간에 있는 모두와 쌍방향의 소통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중앙에서부터 응축된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과 범위로 더욱 뾰족하고 섬세하게 발산한다. 마지막 앵콜곡과 함께 가장 높은 위치에 멈춘 스크린은 무대 중앙을 중심 축으로 일제히 한 방향으로 회전해 바람개비 같은 구조로 멈춰 선다. 멤버들이 모두 내려가고 무대가 비워지고 나서야 화면에는 공연을 함께 만든 이들의 크레딧이 흐른다. 라디오헤드의 공연은 끝났지만 무대 위에선 여전히 보여줄 것이 남은 모양이다. 엔딩 크레딧까지 끝나고 밝아지는 아레나와 함께 암전된 스크린을 보고 나도 자리를 떴다. 무대를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혹시 오늘 무대에서는 ‘그 곡’을 불러주진 않을까 기대했던 것에 대한 왠지 모를 미안함, 그리고 끝끝내 ‘그 곡’은 불러주지 않은 그들에게 보내는 고마움이 닿길 바라며 힘차게 내리는 비를 시원하게 맞으며 숙소를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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