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GHAIN 베억하인

@BERGHAIN, BERLIN

by juyeoneee

2025.12.6.SUN 8AM @BERGHAIN, BERLIN

BERGHAIN


지난해 3월 14일, 유네스코 독일은 베를린의 테크노 음악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했다. 테크노를 단순히 음악의 한 장르로 표현하기보단 상태로 표현을 하곤 한다. 테크노가 선사하는 몰입과 최면, 장르의 탄생 배경, 그리고 독일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테크노를 상태로 정의하는 데 다양한 이유가 있다. 특히 테크노 레이브와 케미컬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만큼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 그런 상태에서 즐기는 이 음악이 갖는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의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근거가 무엇일지 그 공간에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베를린으로 테크노를 들여온 Tresor, 그리고 세계 1등 클럽으로 알려진 Berghain에 다녀왔다.


서울에서도 종종 클럽에 간다. 아직까지도 여기에서는 테크노를 좋아한다고 하면 이정현의 테크노가 아님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클럽은 음악보다도 ‘클럽’이라는 공간의 피상적인 이미지 때문에 저마다 클럽을 찾는 목적이 사뭇 다르기도 하고 온전히 음악과 춤을 즐기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클럽에 갈 때 꼭 선글라스를 챙긴다. 3살배기가 자기 눈만 가리고 다 숨었다고 말하는 것 마냥 남들의 눈에도 내가 안 보이려니 하는 바람으로 시야를 차단하곤 한다. 그렇기에 음악은 물론이고 존재로서의 해방을 경험할 수 있다는 베를린의 그곳들이 더욱 궁금했다.


두 번의 시도만에 일요일 오전 8시경 베억하인에 입장했다. 코트체크를 하고 내부로 들어감과 동시에 온몸을 감싸는 베이스의 진동에 한 번 압도되고 어둠에 적응이 될수록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이 공간의 구조에 한 번 더 압도된다. 목요일에만 열리는 1층의 Säule 스테이지(여기는 대기 줄도 입장 제한도 딱히 없다.), 그리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늦은 오후 또는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2층 Berghain과 3층 Panorama Bar가 마치 펜로즈의 계단이 떠오르는 기하학적인 미로처럼 연결된다. 무대와 무대 사이에는 바ㅡ대체로 술을 팔지만 커피와 스무디,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초코바, 머핀 등 식사를 대체할 메뉴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체력이 되는 한 얼마든지 레이빙을 즐길 수 있다ㅡ와 휴식 공간, 흡연 공간 등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이런 각진 구획으로 인해 막힌 곳이 없음에도 스테이지와 스테이지 간 간섭이 없고 내가 이동하는 것 자체로 자연스러운 fade in이 이루어진다. (뻥 좀 보태서 비트 매칭까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4박의 베이스 위에 소리들의 레이어가 쌓여 플로어부터 높은 천장까지 가득 채운다. 그 가운데 있으면 소리의 입자들에 짓눌려 숨이 막힌다기 보다 수백 개의 링이 몸을 둘러싸고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나만의 공간이 생겨 오히려 숨통이 트인다. 이곳의 공기가 마치 소리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강하고 묵직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공간감이 있는 사운드. 가장자리가 날카롭지 않은 색색깔의 조명들은 마치 숲속의 햇빛을 형상화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내리꽂는 햇살처럼 발전소 공장 건물을 따듯하게 밝혀준다. 여기 있는 모두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지만 느슨하게 연결된 채로 한 방향을 바라본다. 베억하인에 들어오기 위해 뭘 입을지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이 공간에서는 어떤 옷을 입든 심지어는 아무것도 입지 않든 모두가 오로지 음악을 즐기는 데에만 몰입한다. 혼자 춤을 추고 있지만 왠지 모두와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명도 비교적 밝고 베억하인보다는 하우스의 비중이 높은 파노라마 바에서 그 유대감이 극대화되는데, 춤을 추다가도 문득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다. 함께 춤을 추고 같은 비트를 느끼며 환호한다. 바깥은 햇빛 없이 흐린 날이었지만 오전의 3층은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다. 그러다 비트에 맞춰 모든 조명이 꺼짐과 동시에 블라인드가 걷힌다. 베억하인 한가운데 자연광을 받으며 음악을 듣고 있는 이 순간 황홀경에 빠진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베억하인에서도 트레조어에서도 휠체어가 종종 보인 게 가장 인상 깊었다. 물론 이 클럽들 자체가 접근성이 좋은 구조는 절대 아니다. 내가 본 공간들의 모든 층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클럽 플로어의 특성상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편히 즐기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동등하게 테크노를 즐길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인 만큼 이곳에서는 내가 어떤 상태이든 음악을 즐기고 춤을 출 수 있다. 이곳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음악과 문화, 테크노를 문화유산으로 만든 생태계임과 동시에 현대의 예술 문화적 차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서브) 컬처가 그들의 본질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 문화적으로 보호∙지원받을 가치가 있음을 문화 자체로 증명하고 신(scene)을 구성하는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움직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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