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GGER X 추다혜차지스

<오바차지 Overcharge>

by juyeoneee

2024.12.21.SAT 8PM @channel 1969

TENGGER X 추다혜차지스 <오바차지 Overcharge>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잠시 묵은 해로 돌아간다. 지난 12월 21일은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었다. '작은설'이라고도 불리는 동지는 다음 해의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그 해의 마지막 절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지나고 나서 다가오는 신년의 운세를 보는 게 정확하다도 하기도. 사주 등의 학문적 풀이를 즐기지도, 종교를 비롯한 외부에의 믿음을 갖지도 않는 나는 그저 새해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일종의 셀프 의식을 치를 겸 공연을 보러 갈 참이었다.

그저 취미로 즐기던 음악이 업에 관련된 지 햇수로 3년 차. 처한 환경과 실제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편으로는 의무적으로 장르를 불문하고 매일 새로운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접한다. 기본적으로 취향이 형성이 될 무렵부터 편식 없이 얕고 넓게 다양한 요리를 받아들였던 입맛 덕분에 여러 방면으로의 도전에 대한 허들이 높지 않다. 그렇다는 건 반대로 처음 접한 무언가를 새롭다고 느끼는 역치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양(quantity)과 정도는 언제나 상대적이지만 해가 갈수록 많아지는 공연과 이벤트 횟수에 비례해 쌓여가는 감각의 경험들이 그 벽에 높이를 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는 음악을 만나는 순간의 경험은 눈앞에 펼쳐진 형언할 수 없는 대자연의 경관을 만날 때와 비슷하다. 유통 문의를 통해 TENGGER (텐거)의 음악을 처음 만났을 때가 그랬고, 이날 처음으로 접한 추다혜차지스의 라이브 무대가 그랬다.

TENGGER는 한국인 있다 (Itta)와 일본인 마르키도 (Marqido)가 결성한 그룹 10(Ten)에서 시작한다. 둘 사이에 라아이 (RAAI)가 태어나며 찾아온 변화로 자연스럽게 TENGGER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몽골어로는 '하늘', 헝가리어로는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 tenger처럼 이들은 어떠한 경계도 두지 않은 채로 무한하고 유연한 소리들을 만든다. 음악이 아니라 구태여 '소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글로 설명하기보단 이들의 곡을 듣고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뮤직비디오 형태의 영상을 보아도 좋다. 또는 네이버 온스테이지나 KEXP 등에서 선보였던 라이브를 보는 방법도 있다. 나에게 자극이 된 건 몽골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PANAPTU' 뮤직비디오였다. 낯선 지형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지평선 넘어 공명하는 그들의 소리와 움직임은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생각을 결심으로 바꿔주는 트리거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그들의 음악과 함께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 고비사막으로 향했다.

텐거는 공연에서조차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인 구분을 초월한다. 있다와 라아이는 각기 음가가 다른 방울을 들고 채널 1969의 모든 곳을 누비며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갔다. 한 해 동안의 힘듦을 씻어내고 맑은 영혼으로 다시 채워 넣을 준비를 시켜주듯 방울을 어루만지며 관객, 스텝 할 것 없이 모두와 눈을 맞추었다. 그들의 손길로 울림이 된 방울 소리는 그 온기와 함께 손에 잡힐 것 같은 궤적을 그리며 공간에 오래 머물렀다. 텐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섬세하지만 단단하다. 그들이 남긴 여음 속 따듯한 여운이 불씨가 되어 추다혜차지스에게 넘겨줄 횃불에 불을 붙인다.

타징과 함께 추다혜의 소리가 시작된다. 텐거의 방울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추다혜의 손끝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무령(巫鈴)에서는 더욱 뜨겁고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본인을 '가짜 무당'이라고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 공연을 끌고 가는 톤 앤 매너는 그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게 무의미한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만든다. 각 지역 실제 무당들의 방울과 종을 결합해 다채로운 소리가 나게 만든 그의 무령처럼 추다혜차지스의 음악은 지역을 특정할 수도, 장르를 정의할 수도 없다. 그들은 무당들 사이에서 전승될 뿐 공연이나 음원의 형태로 기록되지 않는 무가를 펑크, 레게, 덥 등의 장르와 결합한다. 서로가 대척점에 있을 것 같지만 무가와 흑인음악은 모두 영적(spiritual)이고 즉흥의 요소를 담는다. 추다혜의 소리에 담긴 흥과 얼이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 이시문(기타)의 소울을 만나는 순간 그들 앞에 서 있는 청자들은 그저 영혼을 맡긴 채 믿고 따라갈 수밖에.

까데호, 김오키뻐킹매드니스를 비롯한 여러 무대들을 통해 세 멤버들의 연주를 많이 봐왔지만 추다혜차지스로의 조합은 낯설기로 단연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무가와 특정 장르' 형태의 1차원적인 병치가 아닌 새로운 합을 만들어내는 게 추다혜차지스의 정수다. 우리의 것, 국악이 항상 가장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전통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을 덜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도 나눌 수 있게 만들기까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기 때문이 아닐지 감히 짐작해 본다. 박(拍), 꽹과리, 북 등을 연상케하는 드럼의 사운드지만 저 멀리 바다를 건너온 리듬을 연주한다. 특히 '에허리쑹거야'에서 이펙터를 거쳐 만들어지는 기타 사운드는 시공간 너머 다른 차원의 소리 같기도 하다. 묵직하면서도 어딘가 발랄하기까지 한 입체적인 레게톤의 베이스는 모두가 뛰어놀 수 있는 탄탄한 굿판을 만들어준다. (베이스만큼이나 존재감 있는 그의 추임새가 별미다.) 여기에 프런트 퍼슨의 숨길 수 없는 끼와 연기력이 더해짐으로 서로의 연주와 움직임, 추임새는 각각의 시작이 어디든 그저 적재적소에 필요한 조각이 되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특정 장르로 분류되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영()이 담긴 곡들이 있다. 이런 영적인 음악에는 대체로 '얼터너티브' 라벨이 달리기 마련인데, 전통적인 형태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운드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들을 대체할 수 없는 음악으로 만든다. 텐거와 추다혜차지스 두 팀은 그들 자체로 각각의 장르가 되어 우리 주변 에너지를 높은 밀도로 응축시키기도, 한계 없이 퍼뜨리기도 한다. 과-충전(overcharge)된 이 에너지는 다시 관객들의 '차지'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전한다. 길었던 이날의 어둠만큼, 또는 그보다 더 밝아질 아침을 기대하며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서 액운이 소멸하기를,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체할 깨끗한 영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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