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쿨러

<커다란 환호를 보내>

by juyeoneee

2025.01.04.SAT 7PM @무신사 개러지

보수동쿨러 <보수동쿨러 마지막 공연: 커다란 환호를 보내>


지난 12월. 혼란해진 세상 속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공지 하나. 보수동쿨러의 해산 결정과 함께 마지막 공연을 알리는 글이었다.


2025년의 처음을 여는 이날의 공연이 그들의 마지막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며칠 전, 올해로 한국 인디가 30주년을 맞이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홍대 클럽 '드럭(Drug)'에서 열린 커트 코베인(Kurt Cobain) 1주기 추모 공연이 열렸던 1995년을 '한국 인디 음악의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Independent(독립된, 독립적인)'의 준말로 통용되는 '인디'가 음악의 수식어가 된 지 30년, 한국에서의 인디는 다양하게 해석되어오고 있다. 단순히 유통의 형태로 이해되기보단 말 그대로 거대 자본에서 자유로운 독립된 음악이기도,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표현의 수단이기도, 인디라는 단어와 함께 자연스럽게 몇몇 팀들(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 ...)의 이름이 떠오르기도,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한국의 인디는 자연스럽게 근원지인 홍대를 기반으로 시작되어 한 세대를 구분할 만큼 긴 세월인 30년 동안 정체성을 구축하며 성장해왔다. 이런 와중에 홍대가 아닌 지역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로컬 신(Scene)'에서부터 단단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밴드들이 있다. 80년대 헤비메탈의 메카였던 부산이 특히 그렇다. 메탈이라는 장르의 흐름과 함께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90년대 중후반, 인디의 메카가 된 홍대에 '갈매기 공화국'을 형성해 그들의 세력을 펼쳤던 1세대 부산 밴드(레이니썬, 앤, 머드레인, 에브리싱글데이, ...)들을 시작으로 피아, 김태춘, 김일두를 거쳐 세이수미, 보수동쿨러와 헤서웨이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부산에서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고 있는지 궁금할 만큼 눈에 띄는 음악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단지 서울의 홍대를 침공하기보단 자신만의 색깔을 공고히 하며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한다. 내가 세이수미의 라이브를 처음 접한 것도 2018년 네덜란드의 한 공연장에서였다. 암스테르담의 라이브 베뉴 Paradiso에 울려 퍼진 '부산의 서프-록'은 유럽의 리스너들도 선뜻 춤추게 만들었다. 부산 뮤지션들의 음악에는 로컬만이 낼 수 있는 손맛이 담겨 있다. 단지 파도 소리가 들려서 바다의 짠맛이 전해지는 게 아니라 바다에서 연상되는 모든 것들이 그들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감히 그 맛의 비법을 짐작해 본다. 그리고 이 손맛이 주는 오리지널리티는 그들이 로컬 신을 형성하고 성장시킬 수 있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


나는 부산의 음악이 주는 여유와 낭만을 사랑한다. 이런 나에게 '보수동'쿨러-부산이라는 지역이 주는 프라이드를 이름에서부터 광고하는-의 해산 공지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활동 과정에서 밴드의 보컬이 바뀌는 작지 않은 이슈도 무탈히 거쳐온 그들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보수동쿨러의 대표곡들을 함께한 정주리의 보컬도, 정규 1집부터 활동의 마무리까지 새로운 보수동쿨러를 가꿔온 김민지의 보컬도 자신의 몫을 다해 보수동쿨러를 빛냈다. 이런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구슬한의 기타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부산을 노래했다.


그들의 해산과 함께 공지된 '마지막 공연'이라는 타이틀에는 어쩔 수 없이 슬픔이라는 감정이 동반되었다. 추가 회차로 진행된 전날의 서울 공연을 한차례 경험한 멤버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이 처음이었을 이날의 관객들은 한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공연장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밴드의 마지막 무대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럽다. 공지가 뜬 후 관객으로 함께하기 이전에 마지막이 된 정규 앨범을 발매하게 된 유통사 담당 직원으로 그들의 마지막을 기록으로 남겨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그런 마음을 알아준 멤버들을 담기 위해 당일 조금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보수동쿨러와 당신들의 음악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고 짧은 고민 뒤에 '딱히 그런 게 없는 것 같다'는 구슬한의 대답이 퍽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겐 기쁜 순간을 함께하는 음악이, 누군가에겐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음악이, 누군가에겐 위로를 전하는 음악이 되어왔듯이 그저 음악을 듣는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는 대답이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주변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간간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사람, 못 참겠다는 듯 좋아하는 곡이 나올 때마다 영상으로 담기 바쁜 사람,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사람, .... 그가 바랐듯 오늘의 공연을 본 모든 이들 또한 각자가 포착하고 싶은 순간들과 함께 이 공연을, 보수동쿨러의 음악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 한 아티스트와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하는 사람이 오래 하는 것보다도 오래 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는 거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상대적인 말이지만 '오래'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더욱 체감하는 요즘이다. 보수동쿨러의 발걸음은 멈추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은 앞으로도 널리 뻗어나갈 것이다. 그들이 무대에서 농담 섞인 말투로 감사를 표했던 '네트워크 마케팅(이른바 입소문)'처럼 더 멀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음악으로 남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날 멤버들은 예정된 마지막 곡을 마치고는 관객들에게 앵콜을 외칠 새도 주지 않고 무대 가운데로 모였다. 기타와 베이스의 잔잔한 반주로 정규 1집 [모래]의 마지막 트랙 '오랑대'를 부르며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렸다. 여전히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염없는 기다림보다는 확실한 안녕과 함께 서로가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보수동쿨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오 나는 걸어가네 어느 새
뒤돌아 본 길은 조용히 반짝이네
햇살이 비추는 곳엔
문을 두드리는 크고 작은 행복들

-보수동쿨러 '오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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