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ay

<Photay Live in Seoul>

by juyeoneee

2024.12.08.SUN 8PM @channel 1969

Photay <Photay Live In Seoul> (Support act 김도언)


2018년 연남동 골목에 위치한 '채널1969'를 처음 찾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공연에 재미를 붙였을 즈음, 페이스북이 광고로 도배되어 인스타그램으로 SNS의 흐름이 거의 넘어오고 있었고, 연트럴파크 중심으로 인스타를 통해 유명세를 얻는 '연남동 카페'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연트럴을 지나 골목 안쪽 동진 시장에는 수공예 주얼리나 소품들을 파는 몇몇 가판대가 아직 남아있었다. 동진 시장에서 다시 큰길로 나가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의 절반 지점, 눈에 띄는 간판 하나가 붙어있다. 흰 바탕에 검정 글씨(보단 그림에 가까운)로 '채널 1969'. 그 옆으로 사람이 한 명 지나갈 수 있을만한 폭의 긴 통로가 나있고 그 끝에서는 보라색 불빛이 세어 나온다. '홍대병' 초기쯤이었던 미대생 이주연은 이런 곳을 찾는 스스로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고, 혼자 어색해 하면서도 기분 낼 겸 맥주 한 병 주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즐겨듣던 음원을 라이브로 처음 접한 공연들 중 그 베뉴가 채널 1969였던 경우가 많다. 그중 기획 공연인 경우엔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다른 팀들을, 오프닝 게스트가 있는 경우 그들의 새로운 무대를 보며 디깅을 했다. 자연스럽게 채널 1969 공연 소식이 오픈되면 낯선 이름들에도 왠지 기대감이 생겼고 망설임 없이 예매를 결심하는 경우가 더러 생겼다. 물론 부담 없는 티켓 가격 덕분이기도. 오프라인 이벤트에서의 필수 요소인 베뉴는 그날의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공연이라고 정의되는 이벤트는 물리적인 영역 안에서 공연의 주체와 객체, 사람과 공간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와중에 베뉴가 그 자체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면 기획자에게는 오히려 더욱 치밀한 준비ㅡ사람과 공간, 공간과 콘텐츠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져 어느 한쪽이 잡아먹히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ㅡ가 요구될 것이다.


이날 <Photay Live In Seoul> 공연이 채널 1969에서 열린 덕분에 이런 장황한 서두로 글을 열었다. 이번에도 아티스트를 알기에 앞서 공연 소식을 먼저 접했고, 사실 예매를 결심한 건 서포트 액트로 함께한다고 공지된 김도언의 무대를 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지난 9월, 프로젝트 앨범 [Wood Wide Web] 발매를 기념하는 쇼케이스 <Piano Shoegazer X 장명선 with khc>의 오프닝으로 30분가량의 라이브 셋을 선보였던 김도언의 무대를 꼭 다시 보고 싶었다. 입장 팔찌를 차고 들어가니 Photay의 무대인 것으로 보이는 스테이지 옆에 별도로 준비된 그의 장비들을 향해 의자가 깔려있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들을 들으며 앉아 있는 동안에는 매번 나와 내 주변의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는 듯한 정중동 또는 그 반대의 무언가를 경험한다.


작업 중에 있다는 미발매곡을 마지막으로 그의 무대가 끝났고, 관객들이 앉아있던 의자들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뮤지션의 의도일지 기획적인 의도일지, 혹은 단지 기술적인 편의를 위한 세팅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과 자세에 변화를 줌으로써 시간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각각의 무대에 새롭게 몰입할 수 있는 변곡점이 생겼다. 세팅을 마치고 Photay가 무대에 올랐다. 드러머/DJ/프로듀서/작곡가로 활동하는 그의 앞에는 맥북부터 다양한 형태의 신서사이저, 드럼 스틱과 마이크까지 그의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퍼커션을 공부한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에는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소리가 녹아 있는데 그런 그의 등 뒤로 펼쳐져 있는 병풍은 거기에 동양적인 향기까지 더해 그의 음악이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지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무대와 병풍 사이에 준비된 작은 술상에는 '새로' 한 병과 소주잔이 올라가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아티스트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됨과 동시에 무대에서 소주를 따라 마시는 그를 지켜볼 관객들로 하여금 아티스트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채널 1969에서 만난 Photay의 무대는 서로 다른 리듬이지만 결국 같은 박자로 연주되는 수많은 폴리리듬(polyrhythm)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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