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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연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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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r 20. 2021

이사의 역사 2

분당으로 일자리를 옮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오피스텔의 계약이 만기 되어 나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었다. 계속 분당에서 일을 하려면 월세방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작고 저렴한 방은 없었고 고개가 절로 꺾이는 높이의 오피스텔들만 즐비했다. 게다가 이사를 고민하던 즈음에 기숙사에 사는 동안 모은 돈의 절반 이상이 다시 종태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6개월 간 월급의 90%를 저금한 돈이었다. 당시의 나는 아직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연민과 미련이 남아있었고, 그래서 종태에게 돈을 보냈다. 차순의 병원비와 막냇동생의 학비라는 미명으로 나는 가족을 챙기는 소녀가장이 된 듯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며 돈을 송금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다시 가족이 될 수는 없었다. 그냥 돈도 없고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 과정을 값 비싸게 겪을 뿐이었다.


이제 남은 돈은 250만 원 남짓, 다시 고시원으로 들어갈지 저렴한 월세방을 구할지 고민하며 피터팬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중 청파동의 여대 근처에 낡은 방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2백에 30만 원. 2층짜리 양옥을 불법으로 고쳐 세를 주는 곳이었다. 1층에는 주인 부부가 살고 2층에는 나처럼 돈 없고 집 없는 애들이 고시원보다 조금 더 크고 대신에 9시가 넘으면 세탁기를 돌릴 수 없는 곳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정글처럼 우거지고 정돈되지 않은 마당을 따라 철계단을 올라가면 24시간 개방된 현관이 나왔다. 한 사람이 지나다닐 너비의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무문 6개가 마주 보는 구조였다.


그중에서 나는 202호에 들어가 살았다. 나무 문을 열면 문이 열리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빼곡히 가구들이 들어찬 방이었다. 침대 위에 행거가 설치되어 있었고, 침대 발치의 계단 두 개를 올라가면 약간 일인용 관 짝 같은 크기의 화장실이 있었다. 거기에 관물대로 쓰는 책장도 있고 싱크대와 냉장고도 있었다. 상을 펼 곳이 없어 밥은 침대 위에서 먹었다. 일 년을 계약했지만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는 그 집에서 다시 나와야 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성인 남자의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운 바퀴벌레가 날아드는 방에서는 여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치와 방아깨비를 잡으며 놀았어도 바퀴벌레는 끅끅 소리를 눌러 뱉으며 잡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약을 뿌려대도 벌레의 집에 내가 세든 것 마냥 자꾸만 벌레들이 나왔다.


나는 이전 세입자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피터팬에 집을 내고 나만큼이나 가난한 여자에게 집을 넘겨야 했다. 내가 일을 하러 간 사이 집주인이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녀가 방문했을 때, 집주인은 202호가 아니라 새로 공사를 끝낸 월세가 5만 원 더 비싼 1층 별관의 방의 보여주고 계약을 성사시켰다. 나는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기에 빈방의 월세를 내며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중이었고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서울 사람들 야박하다더니 이건 코 베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길거리로 나앉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서울역 뒤편의 청파동과 갈마동에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나는 여자 노숙자들을 보면, 혹 10년 20년 뒤의 내 모습은 아닐까 몸서리치면서도 차라리 저렇게 다 놓아버리면 어떤 기분일까를 감히 상상해보곤 했었다.


나는 이미 친구 B가 낸 보증금으로 상수동에 두 칸짜리 빌라로 이사를 한 상태였기에 이중으로 월세를 내고 있었다. 실수령액 120만 원 언저리를 받으며 그중 월세로 60만 원을 썼다. 세입자를 도둑질당하고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지 두 달째가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경희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길거리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엉엉 울면서. 왕년의 경희는 싸움이라면 지지 않는 아줌마였다. 목소리가 크고 욕도 제법 찰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서울 사람이라도 경희의 깐깐한 태도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사정사정해도 흔들림 없이 꼰질꼰질한 태도로 일관하던 집주인은 경희의 전화 한 통에 내게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얼마나 심한 욕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사투리 팍팍 쓰며 촌사람 티를 더 많이 내며 살살 달랬다고 한다. 경희는 그냥 사장님예~ 아 돈 좀 돌려주이소예~ 했다고 한다. 내가 종태에게 돈을 부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경희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즈음 경희는 목욕탕에서 우유 아줌마를 하며 살고 있었다. 달 목욕을 끊어놓고 매일 출석도장을 찍던 그 목욕탕에서 말이다. 종일 꿉꿉한 목욕탕에 앉아 뭘 하냐고 물으면 '내 바쁘데이~ 냉커피도 타고 단술도 안 만드나, 요 아지매들이 내가 직접 만든기 맛있다해가~ 니 내리오마 목욕도 꽁짜다이~' 했다. 다 괜찮다고 하니 그런 줄로만 알면서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친구 B와 살던 상수동의 빌라는 반지하부터 시작하는 전형적인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구옥이었다. 하지만 주인세대가 함께 거주하며 건물을 잘 관리한 덕에 집이 깨끗하고 고장 난 곳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공연을 보러 부지런히 클럽에 다니던 친구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았고 그 덕에 나도 많은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번화가에서의 자취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 친구나 남자 셋 여자 셋 같이 즐겁기만 한 생활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친구가 부담한 보증금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도 눈치를 안 주는데 혼자서 주눅이 들어있었다. 쉬는 날이면 천 원짜리 어묵이나 두부를 사서 반찬을 만들어두고 화장실과 거실 청소를 했다. B의 남자 친구가 오는 날은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방문을 꼭 닫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척을 했다. 친구를 따라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고서 별로 취미도 없는 다 때려 부수는 음악을 들으러 다녔다. 술자리에서 친구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조금 지겨워지기도 했었다. 연습이 끝난 B의 남자 친구가 새벽에 문을 두드리면 잠든 친구를 대신해 문을 열어주는 것도 조금 신물이 났다.


그러던 중 일을 다니던 곳의 주방장과 직원이 함께 잠수를 타는 바람에 나도 홧김에 일을 그만둬 버렸다. 작은 주방이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사이는 좋았지만 일을 그만둘 때는 내게 언급이 없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제법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혼자서 음식을 다 만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일을 그만뒀다는 말을 듣고 B의 남자 친구는 사각팬티 바람으로 거실 바닥에 앉아 내가 차려준 밥상에서 함께 아침밥을 먹다가 '너는 끈기가 좀 없나 봐' 했다. 그 일로 B는 남자 친구와 크게 다투고 나는 그와 아주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였으면 뭘 안다고 떠드냐고 조용히 밥이나 먹으라고 눈으로 심한 욕을 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쪼그라들어 그냥 된장국에 얼굴을 콱 박고만 싶었다. 된장국을 먹는 건지, 한심해하는 눈빛을 먹는 건지 모르는 날들이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해 청담동의 대형 레스토랑에 입사했다. 그곳은 이상하게 잘 적응이 되지 않는 주방 분위기였다. 30대 초반의 주방장이 조금 쉬자고 하면 갑자기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스무 명 남짓의 남자 직원들이 비상구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초반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사수를 따라 나갔는데, 내가 있건 없건 담배를 태우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매번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담패설들을 늘어놓았다. 주방장은 아주 매너 있고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면 입을 우그러뜨리며 조금 괴상한 소리로 웃었다.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분위기에 나는 이제 담배 타임에 빠지겠다는 선언을 했다. 주방장은 평소의 얌전한 말투로 '그래, 우리 담배 피우러 나가면 너는 의자에 앉아서 쉬어.' 했다.


담배 타임에서 빠지고 나서 나는 전보다 더 어색해진 공기에서 일을 했다. 그들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제의 잡담들을 하며 일을 하다가, 우르르 비상구로 빠져나가면 나는 내가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주방에서 유일하게 디저트를 만들고 설거지 이모와 소통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를 아주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압구정에서 일할 때 홀에서 일했던 남자 직원도 그곳에서 먼저 일을 하고 있어서 가끔 시원한 커피나 콜라가 주방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그곳에서 일 년을 버티면 이력서 한 줄을 채우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끈기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경희가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서울에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지내느라 경희를 보러 간지 일 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우선 휴가를 하루 내고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일 년 사이 경희는 살이 많이 빠져 앙상해져 있었다. 탄력을 잃은 피부가 푸석거렸다. 살갗을 만지면 버적거리며 피부의 껍데기 바로 아래에서 뼈가 만져졌다. 상태가 조금 심각하다고 하니 내가 일을 그만두고 경희를 돌보길 바라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나도 고민했다. 당시의 상황에 (친구와 함께 월세를 살고, 입사 한 달 차에) 누가 경희를 돌보는 것이 맞는 결정인지 알 수 없었다.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었지만 누군가 도시의 생활을 정리하고 경희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왜 인지 그게 나일 것 같았다. 게다가 모두 내가 그래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너는 나중에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으니까.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울의 생활을 정리했다. 집에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주방장은 알겠다고만 했고, 부주방장은 비겁하다고 했다. 왜 내가 비겁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고나라에 PDF 공간박스와 접이식 밥상을 팔고 택배로 짐을 부쳐 고향으로 내려갔다. 경희는 남동생과 함께 포교당 절 인근의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노래방을 정리하고 구한 집이고 목욕탕과도 가까웠다. 입구의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갈이 깔린 너른 마당이 있고 몇 채의 집이 일 자로 주르르 연결되어 있었다. 흡사 타운하우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아주 낡은 구식의 슬레이트 집이었다. 집주인은 없고 모두 오랜 시간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우리는 오른쪽 끝 집에 살았다. 호수가 따로 없이 같은 번지수에 이름이 '오른쪽 끝 집'인 곳이었다. 경희가 세 들어 살았던 집 중 가장 좁고 낡은 그곳에서 경희, 나, 남동생이 함께 살았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었다. 주방 한편에 천장이 낮은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위는 다락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경희의 오래된 살림살이들을 보관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그 다락에서 버릴 물건들을 가려내고 쓸 만한 것들을 꺼내 씻어 말렸다. 경희는 그런 나를 보며 요란도 애지간히 떤다며 핀잔을 줬다.


우려와 달리 경희를 돌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경희는 제법 독립적인 여성이라 몸이 아파도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고 몸을 씻었다. 나는 밥을 하고 청소만 잘하면 됐다. 나는 그동안 서울에서 쌓은 실력으로 경희에게 다른 나라의 음식들을 해 먹였다. 동시에 나물이나 찌개 반찬을 만드는 법을  경희가 말로 알려주면 내가 주방에서 고사리 나물이나 숙주나물, 경상도식 쇠고기 국 같은 것을 끓여냈다. 당시 남동생은 대학에 가지 않고 읍내의 단란주점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팁을 받으면 야식집에서 경희가 좋아하는 순대를 사 왔다. 나한테는 한 번도 누나라고 부른 적이 없었지만 같이 일하는 누나들과는 무척이나 살갑게 전화통화를 하곤 했다. 반면 나는 동생에게 서울에서 도시 물을 먹고 와서 잔소리나 해대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우리 세 사람은 제법 호흡이 맞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아픈 날의 경희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그런 날은 깨진 유리 파편 같은 말들을 내게 퍼부었다. 때때로 술에 취한 채 귀가하는 남동생은 옛날의 종태처럼 술구신짓(주취)을 했다. 나는 시골에서 그렇게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서울에 갔지만 가장 먼저 실패한 사람으로 구전될 것 같았다. 대구에 사는 대학 동기 몇몇이 때때로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러면 바람을 쐬러 계곡의 쌈밥집이나 막국수집에 가서 동동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차 안에서 낮잠을 자다가 왔다. 친구들은 시골에서의 생활이 어떠냐 물었고, 나는 그냥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기만 했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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