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마지막 날

엄마가 놀러왔다. 그녀와 함께한 14일간 유럽일기

by 투영한

엄마가 집에 갔다. 그녀를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날의 마신 와인 취기가 채 가시지 않아 짜증스러운 상태에서 눈을 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부름에 깬 것인데 자간에 주름을 만들며 못들은 척 했다. 눈을 무겁게 껌뻑이며 그녀를 봤다. 14일의 유럽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그녀는 꽤 들떠 있었다. 이것저것을 싸고 머리를 매만지고 짐을 싸며 나에게 이것 저것들을 가져가라 건네주었다. 타지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나로썬 사실 감지덕지할 것들이었다. 자질구레 살려면 아깝지만 없으면 불편한 그런 것들, 한국에선 싸나 여기선 비싼 그런 물품들. 그럼에도 짐이 늘어난다고 굳이 굳이 그녀에게 불평을 했다. 마지막날까지 나는 피곤하다며 그렇게 그녀에게 짜증을 냈다. 이러려고 엄마를 이 머나먼 영국에 초대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런던에서 묶은 B&B엔 아침을 차려주는 메이드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다. 억양으로 봐서 동유럽계 여자인 것 같았다.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 내내도 나는 잠이 덜 깨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메뉴를 고르라는 메이드 말에 포리지와 팬케익을 시켰다. 엄마는 어리둥절하며 나를 쳐다봤지만 엄마에겐 따로 묻지 않았다. 엄마 어제 안먹어본거 먹기로 했잖아, 그래서 그거 그냥 시켰어. 나눠먹자, 괜찮지? 언제 체크아웃할거냐는 물음에 역시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9시라 일러주곤 블루베리를 입에 집어넣었다. 9시에 나가면 딱 맞겠지? / 좀더 일찍 나가기로 하지 않았었어..? / 나갔다가 훅 산책하고 짐 챙겨서 가면 되지. 짐들고 다니기 힘들어, 괜찮지?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 오곡 밀을 우유에 불려 끓인 뜨거운 포리지가 엄마의 앞에 놓였고, 살짝 탄 듯 가장자리가 검붉은 팬케익이 내 앞에 놓였다. 정신이 없던 나는 팬케익의 달콤한 냄새에 정신이 돌았다. 팬케익은 맛이 좋았다. 그사이 의견과 상관없이 놓인 그 희멀건 포리지를 앞에 둔 그녀가 그제야 보였다. 엄마는 별 말이 없었다. 팬케익 두 장 중 하나의 반을 잘라 건네며 말했다. 엄마 이거 메이플 시럽있잖아 뿌려봐봐. 예전에 내가 캐나다에서 사온거 있지 왜. 뒤늦게 독단으로 결정해버린 것이 아차 싶었던 것이었고, 그 나눔은 미안함을 애써 퉁치려는 심보였다. 그녀는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얼마든지 먹는 그 밥을 그리워한다며 나는 속으로 그녀를 나무랐다. 답답했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대신 엄마는 시리얼을 달라고 했다. 시리얼은 세 종류였는데 일반 콘프러스트, 그레놀라 그리고 건포도와 견과류가 섞인 것이었다. 나는 몸을 생각해 견과류가 든 시리얼을 골라 담았고 엄마는 일반 콘푸러스트를 건네 달라했다. 기왕이면 몸 생각해서 나와 같은 것을 제안했으나 엄마는 구태여 콘푸러스트를 택했다. 못마땅했다. 여기까지와서 한국에 그 흔한 콘푸러스트를 택하는 그녀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씨리얼에 우유을 씹으며 멍을 때리는데 엄마가 말했다. 하늘이 어쩜 저리 맑냐며. 유럽에 있는 내내 하늘을 보던 그녀였다. 아무리 세계적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성당을 들러도 그녀는 유럽의 청명한 하늘을 보며 감탄사를 내곤 했다. 하늘을 보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유럽여행을 오는 게 아니었다. 역시 그녀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무심히 말했다. 그러네.


아침을 먹고 들어와서도 피곤이 가시질 않았다. 엄마는 모든 채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를 기다리를 눈치였다. 그제서야 분주하게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엄마가 건네준 생필품들로 인해 전날 밤 싸놓은 짐을 다시 싸야하는 것이 내심 짜증이 났다. 체크아웃 전에 빨리 나갔다 오라 나는 엄마에게 보챘다. 준비하는 나를 기다리며 같이 산책을 하고 싶어하는 그녀를 알았음에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같이 나갈까? / 아니야 너 피곤하잖아. 나는 냉큼 말했다. 그래, 엄마. 시간이 없다. 얼른 후딱 다녀와 그럼.


체크아웃을 하고 전철을 타러 나왔다. 햇살이 따듯하고 하늘은 엄마말대로 푸르렀다. 가는 길 전날 들리지 못한 옷가게를 지났다. 마침 가게주인은 쪼리가 달랑 달랑 걸려있는 신발진열대를 밖으로 꺼내며 문을 열고 있었다. 그녀가 가고싶어 했던 옷가게였다. 나는 그녀를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엄만 '캔 아이 해브 어 룩?(Can I have a look?)' 이라는 문장 하나를 나에게 얻고는 문장을 중얼거리며 가게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음에도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곧 참지 못하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의 초조함에 반응한 건 그녀의 등장이 아니라 그녀에게 걸려온 카카오 보이스톡이었다. 카드 결제가 안되는데 잠깐 와볼래? / 아니 뭘 또 사는거야?! 또 신경질을 내며 걷는 내 앞엔 엄마가 가게에서 나와 나를 마중하고 있었다. 점원은 눈치를 보며 값을 계산할 카드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계산한 물건들을 배낭을 풀러 다시 열심히 집어넣었다. 나는 그것이 창피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매장으로 나오는 게 참으로 짜증이 났다. 매장을 도망치듯 나가려는 나에게 내 신발도 사야하지 않느냐는 그녀가 말했다. 결국 신경질을 냈다. 이제와서 그 얘기를 하면 무엇하냐고. 여행내내 딸이 운동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오던 것을 기억해 한 말이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위한 스카프와 미처 다 못산 직장동료들의 장바구니 따위를 샀다고 했다.


엄마는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내내 창문으로 비치는 하늘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곤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깐 잠깐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너무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따라 붉어지려는 눈시울을 애써 유리창으로 핸드폰창으로 숨겼다. 엄마는 본인이 가고 나면 내가 시원하겠다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본인 때문에 피곤해서 어떻게 하냐며 고생했다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시원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라도 생색을 내고 싶었는지 몰랐다.


한국을 가는 게 그렇게 좋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답했다. 한국에 가면 본인이 할 수 있는게 너무 많지 않느냐고. 14일 동안 그녀는 한발짝 물러서 있었다. 언어라는 장벽이 당신 앞에서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생각했다. 아차 싶었다. 엄마는 늘 나보다 정보가 빠르고 학구열이 높은 사람이었다. 젊은이라 불리는 나보다도 뉴스에 빠르고 새로운 기기에도 금방 적응하는 편이었다. 내가 알아온 그녀는 유투브와 팟캐스트를 열심히 구독하며 선지식인적 면모를 뽐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14일동안 자신이 많이 작다고 느꼈을 것이다. 늘 독립적인 그녀가 나에게 의지해야만하는 그 좌절감이 어떠했을지, 14일이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나는 그제서야 어렴풋 생각했다.


히드로 공항. 항공 자동화 체크인을 하곤 짐을 보냈다. 직접 리셉션에 가 사람으로 보내는 게 마음 편하지 않느냐고 했으나 나는 참으로 그녀의 말을 안 들었다. 엄마에게 첨단화된 항공수속 절차를 보여주고 싶었다. 젠체하며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치기였다. 엄마는 그런 나의 의도를 알았던지 엄청나네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서야 알았다. 그 첨단화 항공서비스가 공항에 올 일이 없는 그녀에게 과연 얼마나 중요할지. 그녀에게 중요한건 그 공항에서 그저 사랑하는 딸을 만나는 일이었고 무사히 돌아가 당신의 남편과 아들을 다시 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린 남을 사람과 떠날 사람이 구분되는 게이트가 마주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시간이 좀 남아있던 터였으나 엄마는 얼른 들어가겠다고 했다. 공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엄두가 안난다는 내 말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었다. 엄만 오렌지를 까먹으며 축축해진 내 손을 성가셔 하지도 않고 매만지며 꼭 주물렀다. 그래도 네가 여자인데 손을 잡으면 부드러워야 할 텐데... 손이 이렇게 거칠어서 어떻게…. 근데 손은 어찌 이리 말랑말랑하니? 눈시울이 붉어지려다가 반전의 멘트에 멋쩍게 웃으며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었다. 1년 뒤에나 보겠네? / 무슨 이제 몇개월 있다가 보는거지 뭐..


그러곤 그녀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게이트앞에서 부둥켜앉고 우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역시 그렇지 않았다. 싱거울 정도였다. 출국 게이트를 여는 보딩패스 인식이 너무 빠른 이유에서였다. 어,어? 어! 그래 엄마 가! 가, 가. 가서 전화해! 이렇게 어영부영 인사를 하곤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는 헤어졌다. 너무 '첨단화' 된 탓이었다.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최첨단'이 빚은 부작용이었다. 문 뒤로 사라져버린 그녀를 보내고 나니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시 홀로여서 눈물이 났고, 먼길을 온 그녀에게 잔인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나 눈물이 났다. 미안함과 설움과 또 미안함이, 복잡하게 섞여 모든 것이 하나하나가 뚝뚝 떨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추스렸다. 집에 가려면 한참이었다. 가족 그룹창에 카톡을 남기곤 공항을 나섰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길엔 그녀가 가져다준 책을 읽었다. 읽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책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육성이 삐져나올 정도로 희희덕거렸다. 지하철에서 그렇게 웃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