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내나는 피클의 빛나는 결말

코로나가 내게 알려준 것들

by 투영한

4월 1일 런던 자가격리째 20일. 팔이 빠지게 장을 봐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록다운(lockdown)이 된 런던은 어느덧 몇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외출은 하루에 한번만 허락됐다. 나가더라도 돌아오는 즉시 손을 씻고 입고 나간 옷들을 소독했다. 집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집밖을 나가면 양 손의 거대한 장을 봐 낑낑대며 걸어가는 이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체할 수없이 늘어난 시간을 이용해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요리라곤 담을 쌓아 살아왔으나 하면 잘하는 요리인재(?)였다. (훗) 사실은 비자가 얼마 남지않아 귀국을 한달 남짓 앞둔 상황이었다. 런던을 뜨기 전, 유일하게 관광이 허락되는 곳은 마트뿐이었다. 그 전에라도 좀더 적극적으로 이용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돌아갈 날들을 계산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곧 비.워.내.야.할. '냉장고와 공간들'. 요리란 내게 엄두가 안 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으나 조금씩 비워내지 않으면 나의 캐리어를 초토화시킬 짐의 공포가 나를 더 압도시켰다. (이건 뭐 코로나보다 무섭다. 끽 끽)


거대한 장을 봐오니 문제가 생겼다. 냉장고에 집어 넣는 게 일이 된 거다. 쓰다만 파스타 소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고를 재배열했다. 그러던 중 저멀리 구석에 박혀있는 피클로 된 올리브가 보였다.

"Oh..my.. Hello...? "

냉장고에서 버틴 연배로 치면 말년병장 정도급의 장기수 어른이었다. 세월을 거슬러 영 쩐내가 나 구석에 집어 넣어둔 녀석이었다. 세상에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같이 플랏메이트들과 공유하는 비치대에 놓여있어 내것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딱 오래되어 봰 것이 Excuse you. 딱 내꺼가 맞았다. 신선하게 유지되어야 할 오렌지 주스를 그것 대신 채우니 절병은 냉장고 바깥 신세가 됐다. 이것 저것을 넣고, 빼고, 신선도의 우선순위를 정하다보니 이 오래된 절병은 결국 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러곤 버릴 생각을 하며 냉장고 옆에 놓아두었다.


아침이니 가볍게 먹자. 다음날 냉장고를 열었다. 찬장에서 어제 산 식빵을 꺼내 토스터에 집어 넣었다. 아보카도를 꺼내 토스트를 만들 생각을 했으나 곧 귀차니즘이 삐져 나왔다. 아보카도를 분해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파충류같은 껍질을 한 이놈은 맛이 있는데 손이 많이 갔다. 심지어 손질을 위해선 은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


먼저, 이 파충류의 표면의 정 중앙을 따라 칼로 갈라 내면 과육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왕 씨앗을 마주하는데 그것의 표면을 따라 360도로 칼을 돌려 내야 한다. 그러고도 육질의 절반을 차지하는 씨앗 덕에 두 동강이 날 생각없이 없어보는 이 쪼개진 과육 중 한 쪽면을 중심 축으로 세워잡고 다른 한쪽을 병마개를 따듯 돌려내면 한 면이 대왕 씨앗으로 부터 분리가 된다. 그럼 볼록한 씨앗이 박힌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마주하는데 또 그 씨앗이 박힌 표면을 씨앗과 분리를 해야한다. 다시 칼을 중심 축으로 씨앗에 꽂아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그리고도 씨앗과 분리된 그 속살을 또다시 껍질과 분리를 시켜야 하는데 그작업이 어지간이 귀찮은 것이 아니다. 슈렉같은 매끈한 몸 둥아리를 만나고 나서도 그러고 나면 칼과 도마, 손 여기저기에 묻어나는 그 초록색의 잔여물을 헹구는 일이 남는다.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대체재를 찾았다. 냉장고 옆에서 햇살 속 일광욕을 하던 피클 올리브가 레이더 망에 잡혔다. 어차피 폐기처분을 해야했으므로 대충의 식사에 보태기 딱이었다. 아보카도를 도로 집어넣곤, 살짝 탄 토스트에 스프레드 치즈를 펴발랐다. 절병에서 꺼낸 올리브를 다져 그 위에 올렸다. 그 옆에 딸기 쨈과 요거트, 오렌지 주스를 꺼내니 뭐 이정도면 충분히 가벼운 아침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올리브를 곁들인 토스트가 이렇게 맛이 좋을 일인가. 재미없는 토스트와 치즈에 올라온 올리브는 톡소면서도 짭쪼름한 감미료로 적절하게 그 심심함을 깨웠다. 그 오래된 피클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구석에 박혀있다 버려졌을 올리브였다. 그 쩐내난다 박대하던 그 피클이 센세이션 한 아침식사로 탈바꿈할지 누가 알았을까.


버리고자 마음을 먹는 순간 그건 내것이 아닌 객관적인 사물이 된다. 익숙해져 그 가치가 퇴색되어버린 것들을 편견없이 볼 줄 아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내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냉장고를 비우기 위해 안하는 요리를 하기로 했고 그래서 생전 안 사는 생고기를 굳이 샀다. 안 사본 청경채를 샀고 그래서 새로운 재료들이 공간의 재배열을 이뤘다. 매주 비워지는 그 창고의 재배열이 없었다면 아마 그 구석에 박혀살던 올리브는 끝내 귀국 전 쓰레기와 같이 버려져 있었을거다. 그저 그런 쩐내나는 피클의 뻔한 레퍼토리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말이다.


쌓인 선반처럼 난생 처음본다는 사람들로 채워진 카카오톡의 친구목록을 보면 당최 내가 뭘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 관습들, 습관들. 당연해보이지만 사실 굳이 함께해 불편함을 주거나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들. 그들을 내 삶에서 정리할 줄 아는 대담함이 내 인생을 설레는 어떤 것들로 다시 채워낼 기회를 제공해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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