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내 여친은 여자도 하고 남자도 해"

대책없이 영국행

by 투영한

카페에서 일할 당시 나는 직원 전체를 통틀어 매니저 다음 다음으로 고령자층에 해당했다.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은 대부분이 20대 초반에서 중반에 해당했고 스스로를 노인취급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꼰대짓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친구가 되는 마당에 나이를 언급하는 건 한국인 나밖에 없었다. 그중 2명은 레즈비언이거나 바이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점점 그들과 지내는 일이 벅차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꼰대였단 말인가! 나는 거의 매일같이 내가 규정지었던 것이 하나같이 무너지는 공황상태를 맞았다. '나는 누구냐' 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쉐프로 일하던 이탈리아 친구 이름은 아레나였다. (아레나 그란데는 아니다) 그녀는 아침마다 명상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어 하는 아이였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전까지 내 아는 그녀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꽤 대단한 친구였다. 겉보기에도 멀쩡했다. 그런 고충이 있는 그녀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대의 '초예민' 감수성이라고 내심 그녀를 타박하기도 했다. 나도 네 나이때는 그랬다며. 그러곤 그렇게 단정짓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래곤 했다. 이게 꼰대구나. 같은 20대라도 초반대와 중반대와 후반대는 다르다고 구분을 짓는 무언가가 내안에 있었던 거다. '라떼란 말이야'가 결코 멀지않은 내 이야기였던 거다.


대마초(weed 혹은 marijuana)는 워낙 유럽의 흔한 담배와 같았다. 나빼고 다 피는 주변환경 덕에(?) 꽤 익숙해질만할 쯤이었다. 어느날, 카페안에선 토론의 장이 벌어졌다. 콜롬비아 친구 크리스는 담배와 대마초를 비교하자면 임상학적으론 담배가 더 나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마약이 담배보다 낫다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뜯어먹는 소리인가.


중독으로 치면 둘다 매한가지이고 담배도 심신을 일시적으로 안정을 시켜주며 약에 취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것이었다. 대마초는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독극물질이 몇십만개가 있는 담배보단 순한 기호식품이라는 논리였다. 진정제로 쓰이는 약물로 기능이 비슷한데도 불과하고 대마초에 대한 인식은 담배에 비해 매우 박하다는 것이다. 커피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중추신경을 건드려 사람을 깨우는 카페인은 중독성도 있었다. 카페인 섭취 역시 수면장애를 유발하고 카페인에 의지해 사는 세상의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치자면 커피도 담배도 그 항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말은 아니었다.


나와 스페인친구 데니스의 반박이 시작됐다. 마약으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행등의 범죄 및 사고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는 마치 예상했다는 받아쳤다. 담배로 사망하는 사례는 있어도 여태껏 대마초로 사망하는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확인할 수 없으므로 건너 뛴다하더라도) 대마초가 마약류에 포함되지만 흥분작용이 아니라 안정제에 속한다고 했다. 필로폰이나 코카인 등이 사회 문란을 일으키는 마약들이라는 것이다. 치사율로 치면 사실 금지해야 할 것은 오히려 담배여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담배를 공급하는 산업의 규모가 대단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커피사업도 이와 비슷했다.


물론 그가 애정하는 대마초 사랑을 동조할 생각은 1도 없었다. 대마초은 어째든 몸을 마비시키고 심신을 몽롱하게 한다. 하지만 그와중 동의하는 것은 담배와 대마초를 금하는 기준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이었다.왜 사망률이 높고 중독성 높은 그 담배는 대마초처럼 금기화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담배, 커피도 공적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향정신성의약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허용되는 영역으로 구분을 짓고 있었다. 카페인과 니코틴 중독은 그 경각심이 덜하다. 특히나 니코틴은 그 중독성과 치사률이 어마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번은 아레나와 이야기를 하다 또한번 머리를 두드려 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와중이었는데 나는 또 꼰대를 자처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여자친구는 남자도 여자로도 불리고 싶어하지 않아"


이게 뭔소린가. 그럼 그녀가 누구란 말인가. 그녀의 말에 나는 최대한 꽉 막힌 사람이 아닌 척 애를 쓰며 질문을 했지만 놀란 나의 눈은 그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당황하는 나에게 그녀는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여자친구는 본인 자신이 여성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게는 남자로 느낀다고 했다. 그녀의 모습은 여자였다. 그럼에도 대게는 남자라는 생각을 지니고 사는데 그렇다고 남자라고 자신을 명확히 구분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를 거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내 영어능력이 문제인건지 이해력 자체가 문제인건지 혼란스러웠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생각했던 남여의 구분이 한국사회에서 내가 학습 받아온 답안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답안이 틀렸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만이 답이라고 맹신을 해온 우둔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여를 명확히 구분짓는 행위자체가 그 가능성을 제지하는 일이었다. 되는 것과 안되는 것으로 규정을 짓는 그 틀이 사실은 대마초와 담배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다. 성을 구별하는 모습도 크게 달라봬지 않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규정으로 프레임을 씌우고 우리는 평가를 했던 것 뿐이다. 어떤 정답의 잣대를 갖고 이리저리 제단을 하는 것을 나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배워왔는지도 몰랐다. 남여가 사랑하는 것만이 답이 아닌 것을 우리가 조금씩 깨달아가듯이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는 일도 다시 생각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것은 그러고보면 굉장히 평범한 일인데 말이다.


영국에서 구직을 할 당시, 지원서에 포함된 성별 선택항목엔 남자, 여자 그리고 묻길 바라지 않음이라는 선택사항이 있었다. 그 밑으론 종교와 성지향성에 대해 선택하는 사항도 있었다. 인종에 대한 구분도 포함됐다. 그 당시엔 굳이 이런 것까지 물어봐야하나 싶지만 그사람을 단편적으로 규정짓지 않겠다는 나름의 노력였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구직활동을 하며 여성과 남성말고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지원서를 마주하면서 말이다. 만약 그사이 성정체성이 바뀌어 돌아왔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상상도 해봤다. 아레나의 여자친구는 과연 한국사회에 와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바로 '꼰대'다. 우리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인종과 성별을 규정짓고, 선과 악을 구분짓고, 세대를 구분짓고, 예쁜 얼굴형과 그렇지 않은 '충'들을 구분짓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사회. 틀이 갖춰진 50cm 남짓의 닭장을 연상케하는 직사각형에서 고개를 숙이고 규정된 답을 찾아야하는 한국의 학생들. 하나 혹은 두개까지만 정답을 허용하는 또 한명의 '한국인'이 되기 위한 판단의 척도를 완성하는 클라이막스, 수학능력평가. 혈통주의에 빠져 혼열인과 얼굴색이 다른이들이 한국말을 쓰는 것이 아직도 신기한 티비세계. 배다른 자식의 호구조사를 쫒는 드라마, 연민의 존재인 솔로는 '행복한 가정' 영상 앞에서 박탈감을 느끼며 연애를 자극받길 강요하는 예능.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가 꼰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꼰대를 꼰대라고 부정하기엔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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