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딜 가도 엄마만큼 강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중에도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더 세다. 엄마는 6명 자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싸움으론 최고다. 누구도 엄마만큼 외할아버지와 싸움을 많이 한 적이 없다 했다. 아들을 낳으려 딸만 6명을 낳은 가문의 고분고분한 다른 딸들과 그녀는 달랐다. 자신의 신념이 강할 뿐 아니라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다. 주류에 휩쓸리기보단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장남에게 시집을 간 것도 그녀의 신념이 해낸 일일 터. 결정이 좋고 나쁘든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줄 아는 게 우리 엄마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좋았다. 멋있었다.
은행원으로 일하며 나와 동생을 키웠고 도시와 도시로 통근하며 저녁엔 찬 우유를 물리다 잠이 드는 게 엄마였다. 금융위기가 닥쳐 당시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나온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한 번도 ‘집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자식과 남편에게 건강한 요리를 먹이기 위해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엄두도 못 냈던 자동차 학원에 다녔고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그 본인이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했고 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 기계적인 한국 교육을 비판하며 더 건강한 삶을 위해 동생을 대한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교양을 쌓는데도 열심히 였다. 부족하면 책부터 샀다. 1-2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한번 책 쇼핑을 할 때마다 10권 가까이 되니 그녀의 학구열은 늘 불타올랐다. 하지만 수북이 쌓인 책들은 늘 뒷전이었다. 책 한 장 읽을 시간에 양파와 파를 다듬고 유기농을 먹이겠다며 친구 따라 이모따라 산과 들로 갔다. 그래도 그녀는 책을 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기술도 늘 나보다 빨랐다. 다른 이들이 삐삐를 사용할 적에도 당시 최초 휴대전화인 ’010’으로 시작하는 연락처를 장만했고 팟캐스트가 막 품을 일으키기 이전에 그녀는 이미 그것에 빠져있었다. 유튜브를 듣기 시작한 것도 유튜브 시대가 도래하기 몇 년 전이었다. 정체하지 않았고 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와 싸우면서 아등바등 사는 그 모습이 억척스럽기까지 했다. 저렇게까지 해야 싶을까 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 싸움을 거부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과는 애당초 상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유튜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사람이라면 내가 믿을 수 있겠다.’ 싶었나 보다. 밤낮으로 ‘그`가 토론하는 목소리가 집안을 채운다. 그 덕에 집에 있기 시작한 지 2달째인 나는 엄마와 매일 같이 싸웠다. 그를 비판하는 건 마치 그녀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골고루 들어보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말했다. 더는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가 꼰대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불쑥불쑥 화가 났다. 여성인권을 부르짖던 그녀는 존경하던 한 정치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신이 맞았다고 믿었던 것에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지 엄마는 피해자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건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래서 화가 났고 그건 엄마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늘 대화를 하자고 했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지 대화를 거부하는 게 나를 자꾸 목매게 했다. 그렇게 거부하는 그녀가 너무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삶 앞에서 그녀는 더는 지쳐버린 지도 모른다. 늘 자신의 행동과 말이 맞는지 짚고 가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 싸움을 더 할 힘이 없었다.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의 건강보험료는 그녀의 앞으로 갔다. 그것은 곧 그녀가 우리 집의 가장임을 뜻했다. 6일 내내 매장에서 일했고 그러고도 매장에 문제가 있을 땐 7일까지 일을 했다. 매장에 물건 발주하다 앉아서 잠드는 그녀를 이불에 눕히는 게 일상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우리가 어설프게 만든 저녁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손을 얹어 요리를 완성했다. 일을 나가지 않을 때면 집 안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청소했고, 틈이 날 때마다 홀로 계신 외할아버지를 보살피러 도시와 도시를 뛰어다녔다. 1분 1초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고 24시간이 모자라 보였다. 이런 그녀의 삶에서 하나하나 따지고 갈 수 있는 여유를 나는 요구하고 있었다.
토론, 사유, 대화. 이런 것들은 삶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했다. 티비에 나와 탁상공론하는 것 자체가 업인 이들을 비교하며 그녀에게 잘못됐다고 나는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삶과는 너무 먼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그들을 꾸준히 듣는 일이 자체가 그녀에겐 건강한 신념을 놓지 않으려는 그나마 끈인지도 몰랐다. 삶 이전에 과연 철학이 있고 정의가 있을까. 그런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고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다 따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나는 없었다. 꼰대는 `여유가 있음에도 들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나 해야 할 말이 아닐까. 하루하루를 사는 것 자체가 힘든 당신에게 `당신들 인생 잘못 살았어.` `당신 틀렸어`라고 말할 자격이 나에겐 있을까. 그녀가 무쳐준 나물 무침을 먹고 직접 담근 된장을 먹으며 나는 엄마에게 꼰대가 되지 말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