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왜 우리는 죽음은 준비하지 않을까

by 투영한




삶은 황망하다. 나로 하여금 이름을 불렀던 이가 어느 날 사라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세상은 미동도 없이 흘러갔다. 마치 그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무엇인지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생각했다. 그 허무함을 떠올리며 왜 세상은 나처럼 멈추지 않은가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함께 기사를 기획하던 친구 아버지의 부고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생각하니 코끝이 자꾸만 아파왔다. 내동생 뻘인 그 아이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생각하며 나는 아직 한번도 이별을 준비하는 법을 배워온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장례식장은 어떻게 구하고, 장례식장에 누구를 불러야 하며, 내가 속한 집단에는 공공연히 알려야 하나 말아야하나 등등. 죽음을 봤을 때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경거망동할 내가 선했다. 두 번의 죽음을 목격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별을 어떻게 맞을지 지을 표정도, 준비할 방법도, 아무것도 몰랐다.


겨울의 고요한 아침이었다. 모든 동식물이 매서운 추위에 얼어 비틀어진 듯했다. 선잠으로 눈을 뜬 아침, 드라마처럼 뿌연 실루엣이 선명해지며 내앞에 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리곤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가셨어. 부스스 누워 몇 마디로 할아버지의 부음을 듣는 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차분한 그녀의 말에 격렬히 반응할 수 없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허탈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왜 미리 깨우지 않았느냐 원망을 하고 싶었지만 그 차분함의 무게에 짓눌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화장터를 나와 치켜다 본 하늘은 고요했다. 고요한 그 하얀 하늘이 시려울 정도였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다시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방 문을 열었다. 늘 방 안에선 여전히 찌든 담배냄새가 났다. 하루에도 담배 몇개비를 피우던 할아버지는 늘 쭈구려 앉아 뉴스를 봤다. 기억자나 마찬가지이 그의 허리를 보며 나는늘 죄책감을 느꼈다.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어린 나는 죽음을 준비할 자격조차 없을까. 왜 할아버지를 보낼 시간조차 주지 않은 것인가. 왜 어른들은 그렇게 죽음에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죽음은 아무렇지 않게 온다. 예상치 못한 친구를 맞닥뜨리듯 그렇게 와서는 온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우리는 살면서 배우지 않는다. 언급조차를 금기시한다. 죽음은 곧 죄악이다. 죽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과 가까워지는대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군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만큼 죽음은 사람에게 두렵다. 하지만 삶이 있는 한 죽음 역시 함께한다. 누군가 죽는 시간 누군가는 태어나며 어쩌면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는 죽는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 이해한다면 우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갑작스럽게 찾아와 삶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그 잔인함을 제대로 직면해야 진짜 잘사는 법이 무엇인지 비로서 인간은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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