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축제,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투영한


산수유가 노랗게 피며 봄 마중을 나가면 곧 오는 게 4월이었다. 벚꽃이 만개하다 못해 거리 곳곳마다 흩날린다. 꽃내음에 이끌려 대학 교정을 걷노라면 눈에 띄는 현수막엔 ‘제 00회 00대학교 축제’가 적혀있었다. 경비원 아저씨가 쓸어 모아 수북히 쌓인 벚꽃 잎만큼 과제는 쌓여갔지만 축제란 자고로 젊은이의 상징이었다. 대학별 초대가수 라인업 리스트가 돌아 다니는 SNS를 열심히 공유하며 버킷리스트 마냥 투어 스케줄을 짜곤 했다. 이 대학 저 대학 축제를 돌아다닐 때면 다양한 대학친구들을 만났다.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는 축제인 만큼 소속학교보다 비슷한 또래면 ‘누구나’ 환영이었던 거다. 비슷한 학력을 공유하는 연대의 장 같아 보였다.


실은 차려 놓은 이와 팔아 주는 이가 있는 거래의 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대학생’이라는 포장된 연대 안에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대학 동아리와 학과들이 주점을 열어 더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 실은 대학 축제의 이유였다. 대학 축제의 화제도 늘 등록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는지가 논란거리였다. 과도한 비용을 들여 연예인을 섭외할 때면 그것을 즐기는 타학교 학생과 등록금으로 내야했던 본학교학생들의 희비가 교차했다. 연대랄 것도 크게 없었다. 초대 가수들을 관음할 때 동시에 함성을 외쳐 댈 뿐이었다. 어떤 대학에서는 광장 한 가운데에 ‘혁신적인’ 야외 클럽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각자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헤드셋을 끼고 춤을 췄다. 함께 있었지만 같이 있지 않았다. 공간을 소비하는 학생 무더기일 뿐이었다. ‘연대’라는 것은 없었다.


지역 여러 축제를 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늘 노점상인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줄을 치고 서있었고 어릴 적 나의 부모님들은 나를 위해 팔아주는 이들에 속해 있었다. 유년 시절엔 다양한 지역 축제를 다니며 도자기 빚기, 한지 만들기, 천 가방 리폼하기 등 각종 축제의 주제에 맞는 체험 학습을 했다. 도와주는 누군가가 이미 정해진 것들로 무엇을 만들도록 하는 수동적인 놀이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열심히 만든 것들은 결국 사용한 적 없이 고대로 구석 어딘가에 쳐박아 놓곤 잊어버린 것 같다. 빙어잡기 축제, 봄나물 축제 등 많은 축제들의 목적은 ‘소비 증진’, ‘지역경제살리기’에 있었다. 고기를 잡는 것 자체가 축제가 되는 곳에선 의도적으로 호수에 물고기를 방류하는데 그때만큼 물고기는 곧 살육의 현장에 방류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실 참여형 소비자에 지나지 않았다.


‘참여의 장’의 축제를 간 적이 있다. 2019년 런던에서 열리던 퀴어축제인 ‘pride 퍼레이드’가 그랬다. 이성애자인 내가 가도 될 것인가 망설였지만 막상 가본 현장은 더 일찍 오지 못한 걸 후회하게 했다. 축제를 즐기는 방식은 간단했다.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꾸미곤 거리에 나와 걷는 것이 전부였다. 어떤 성 지향성이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참여하고 있었다. 얼굴 뿐만 아니라 온몸에 무지개 색깔의 페인트 칠을 한 사람들이 서로의 커스튬을 보고 감복해했다. 머리를 닭벼슬 마냥 빳빳히 세워 무지개 염색을 한 이가 있는가 하면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커플들이 젊은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소수가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는 파티였다. 소수의 해방이 이 축제의 이유였지만 사실은 소수와 다수가 한데 어우려저 경계를 허무는 어울림의 현장이었다.


이 축제에선 누가 누가 더 자신의 정체성을 뽐내는가가 관건이었다. 소비집단과 생산집단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와 하나였다. 집단의 부속에서 벗어나 몸에 그린 페인팅의 독보성이 이 곳에서는 최고 자랑거리였다. 개성이 넘치는 이들이 더 각광받는 현장. 남과 다른 나의 개성과 의견을 죽이고 집단에 속하기를 요구 받아온 한국인으로서 나로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한 아시아계 레즈비언이 어깨에 둘러맸던 무지개 색 망토는 내 눈을 사로 잡았다. 그녀의 등을 채우던 빨,주,노,초 무지개 위엔 ‘아시아계 첫 번째 동성결혼 합법 국가’라고 적혀져 있었다. 당시 그녀는 LGBTQ의 세계에서도 또 하나의 소수자자로 용기를 내고 있었다. 국가와 국가, 인종과 인종, 성과 성, 사랑과 사랑의 평등이 한 데 어우러졌다.


축제는 문화, 집단, 역사의 개성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축제야말로 독보적인 개성이 폭발해야 하는 장이었다. 문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문제는 지배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뚜렷한 구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규정하고 집단과 집단으로 갈라냈고 그안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20대인 나는 대학축제를 그저 ‘대학생’이란 집단의 한 명으로 소비하며 좆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내가 본 퀴어 행진은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지만 자신들의 색을 뽑아내는 색깔의 향연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아닌 개개인이 하나의 개성을 구현하는 생산자로서 주체되어 참여하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참여였다.


규정짓고 분리하는데서 역사는 멈춘다. 소설 책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소수의견이 후세의 제도로 승격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발전이라고 부린다”는 대목이 나온다. 다름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태도를 문화로 안착시켜 직접 향유할 때, 사회는 비로소 한 단계 나은 사회로 발전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문명사회’다. 자유란 함께 사는 타인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유효하다. 안철수가 쏘아 올린 ‘보지 않을 권리’는 소수의 인권을 해하는 ‘나다울 권리’에 앞설 수 없다.


퀴어축제는 다수와 소수, 이성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리하는 축제가 아니다. 소수의 이익만을 외치는 현장도 아니다. 나와 네가 어떤 성을 사랑하든지 간에 그래봤자 우리 모두 같이 살아야하는 인간임을 공유하는 혁명의 파티다. 뉴욕에서 가두시위를 시작으로 50주년을 맞았다는 퀴어 운동 pride는 코로나19 시대 이후 작년엔 SNS와 비대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어졌다. 거창할 것은 없었다. 생각을 강요하는 거래의 장도 아니었다. 그저 개개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했다. 이 쉬운 파티는 모두가 초대되어야 마땅했다. 2019년 런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 게이에게 한 신문 기자가 물었다. 오늘날 각국에서 축제처럼 번지는 이 퍼레이드를 ‘파티’라고 봐야하나, ‘혁명 운동’이라고 봐야하느냐고. 그 게이는 이렇게 답했다.


“혁명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그리 좋은 혁명은 아니겠죠?”.


꼴보기 싫다는 ‘그’를 초대하고 싶다. 혁명은 즐겁다는 것을 발견할 좋은 기회임을 놓치게 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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