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고 싶다

정우철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읽고

by 유쾌한 주용씨

정우철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은 내 논술 수업을 졸업한(내가 하는 논술 수업은 초4부터 중1까지만 대상으로 한다. 중1은 12월 수업을 마지막으로 졸업한다.) 우리 중1 아이들과 읽었던 책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책이다.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 유명한 화가들의 멋진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의 굴곡진 삶을 보여준 책이다. 감탄과 감동과 존경을 느꼈다. 예술이라는 것의 위대함, 예술가라는 사람들의 천재성과 집념에 고개가 숙여졌다. 당장이라도 미술 전시회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가의 의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사랑한 화가들』에 나오는 11명의 화가를 나의 짧은 감상과 함께 소개한다.


1장 사랑, 오직 이 한가지를 추구했던 화가들


유한한 삶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랐던
마르크 샤갈(1887~1985)

마르크 샤갈, <그녀 주위에>, 1945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굴곡진 삶을 살았던 샤갈. 화가의 꿈을 키워준 어머니와 연인이자 뮤즈였던 벨라 덕분에 그는 사랑을 그리는 화가로 기록되었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했던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또 한 번 사랑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를 살게 하는 사랑,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랑, 이번 생애에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샤갈처럼 사랑하고 싶다. 내 사랑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색채의 혁명가,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1869~1954)

앙리 마티스, <춤>, 1909~1910

한 사람의 생애가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안타까울 수 있을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미술을 놓지 않았던 마티스의 열정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건강 악화로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는데도 그는 컷아웃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85세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에 대한 집념은 꺽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자신의 곁을 지켰던 사람에 대한 보답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애를 더욱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있냐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매 순간 불타올랐던 보헤미안 예술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1917

미술계의 장동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잘 생긴 외모를 가진 모딜리아니는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원래는 부자였던 아버지가 모딜리아니가 태어날 즈음 파산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도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평생 화가의 꿈을 지원해준 어머니와 평생의 뮤즈가 되어준 잔 에뷔테른이 그의 곁에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그의 화가로서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 준 작품 <누워 있는 나부>가 오늘날 경매에서 1,973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이야기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가 죽자 그의 곁에서 연인 잔은 자살을 선택한다. 다행히 지금 두 사람은 묘지에 함께 있단다. 아마도 예술가는 보통의 사람보다 피가 뜨겁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삶이 한 편의 예술이다.


민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프라하의 영웅
알폰스 무하(1860~1939)

알폰스 무하, <백합의 성모 마리아>, 1905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천재성을 보였지만 알폰스 무하가 성공의 길에 들어선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것도 우연히 프랑스 연극배우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곡선, 여성, 꽃'이 필수 요소였던 그의 작품은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인데 타로카드 그림이나 애니메이션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신념으로 포스터를 그려 길거리를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알폰스 무하는 50대에 자신이 속해 있는 슬라브 민족에게로 눈을 돌린다. 민족을 위한 그림을 그렸던 말년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문을 받고 숨을 거두게 되지만 그는 '프라하의 별'이 되었다. 사람은 어떻게 살기로 마음먹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다양한 색깔로 색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50대가 되어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렸던 무하처럼 50대의 나도 전과는 다른 인생을 그려보고 싶다.


2장 자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


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프리다 칼로(1907~1954)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여섯 살에 척추성 소아마비, 스무 살도 되기 전 사고로 심각한 부상과 평생 불임 판정, 살면서 총 32회의 수술을 받았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서 보내다 47세에 세상을 떠난 프리다 칼로.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많은 유명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여자관계가 문란했던 디에고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림에 자신의 불행한 상황과 심정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았다. 『내가 사랑한 화가들』에 나오는 화가들의 삶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중에서도 프리다 칼로의 짧은 인생은 같은 여자여서인지 특히 가슴이 더 아프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너무나 고단했던 그녀의 인생에 그림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는 프리다 칼로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사람에게는 어떤 고난에도 꼭 붙들고 싶은 그 무엇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그것이 책과 글이지 않을까? 다행이다.



과거와 현대를 동시에 간직한 모순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구스타프 클림트, <삶과 죽음>, 1915


오스트리아 빈에서 벽화로 유명해진 구스타프 클림트는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으로 슬럼프를 겪게 된다. 그후로 당시의 예술적 관습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빈 분리파'를 결성해 자신만의 예술관을 마음껏 표현한다. 모자이크에 매료되어 그린 그 유명한 금빛 작품 <키스>의 여성은 클림트와 27년을 함께한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뤼게였다고 한다. 악필이었던 그가 에밀리에게 400통의 편지를 썼다고 하니 그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어머니 사망 후 그리기 시작해서 5년이나 걸려 완성한 작품 <삶과 죽음>이 무척 인상적이다. 성공을 위해 그렸던 초기 벽화 작품들과는 무척이나 다른 느낌이다. 도슨트 정우철의 말처럼 '성공과 부를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지만 우리 두 아들은 젊었을 때부터 성공과 부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물랭루주의 밤을 사랑한 파리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툴루즈 로트레크, <침대>, 1892


귀족이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난 로트레크는 평생 최하층의 일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 서른 일곱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너무 고단한 삶을 산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깊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자라지 않는 다리, 아버지의 외면, 알코올 중독, 반신불수 등 그의 짧은 인생에 그리 아름다울 거라고는 없어 보이는데 하층민의 일상을 그리면서 그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도 놓고 싶지 않았던, 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나는 내 일상의 아름다움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오늘부터라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봐야겠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케테 콜비츠(1867~1945)


케테 콜비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


평생 한 번 겪는 것도 힘든 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판화가. 독일에서 활동한 그녀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아들을, 2차 세계 대전에서 손자를 잃었다. 콜비츠는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를 사회 참여에서 찾고, 평생 억압을 당하는 절대적 약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반전, 반나치 운동에 참여하며 전쟁에서 젊은이들을 구해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삶은 전쟁으로 인해 너무 가혹했다. "나는 이 시대에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내 글은 이 시대에 어떤 사람들에게 읽히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좀 거창한 것 같지만… 언젠가 나도 내 글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3장 배반,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


원시의 색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폴 고갱(1848~1903)


폴 고갱, <안녕하세요 고갱 씨>, 1889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와 엘튼 존의 노래 '고갱 고즈 할리우드'의 모델이 된 화가 폴 고갱의 삶은 정말 치열하다. 평일엔 주식을 팔고 주말엔 그림을 그리다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건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때였다. 늦게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고갱은 자신만의 색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비난도 기꺼이 감수한다. "나의 능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뭔가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결국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가족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챙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가장을 봐줄 수 있는 아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역시 위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보다. 나와 우리 남편은 가족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보통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으로 물든 파리의 민낯까지 사랑한
베르나르 뷔페(1928~1999)


베르나르 뷔페, <죽음>, 1999


뷔페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화가라고 한다. 잘 생기고 부자인데다 재능까지 갖췄고 아름다운 아내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삶이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열 시간씩 그림을 그린 노력파였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진정한 화가였다. 인기가 떨어지고 오히려 사람들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림에 대한 진심과 사랑하는 아내 덕분에 그는 버틸 수 있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하고 싶은 일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역시 읽고 쓰고 싶다. 사랑하는 남편 곁에서.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본 비운의 천재
나르시시스트 에곤 실레(1890~1918)


에곤 실레,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


28세에 요절한 화가 실레. 짧지만 강렬한 그림 만큼이나 독특한 삶을 살다 간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정말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인생이 드라마틱한지... 당시 유행하던 누드화의 형식을 벗어나그는 육체를 추하고 추상적으로 그렸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지만 오묘하기도 하다. 스물한 살에 열일곱 살 발리를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에디트와 결혼해 함께 스페인 독감으로 죽기까지 그의 짧은 인생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어렸을 적에는 나도 불타오르는 사랑,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꿈꿨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순탄하고 평온한 삶을 원하게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내 어린 날의 뜨거웠던 꿈이 그립고, 사그라든 내 열정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삶에 버거운 고통이 찾아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 도슨트 정우철의 설명은 친절했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11명 화가들의 삶과 작품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말한다. 엄살 부리지 말고 좀 더 치열하게 살아가라고,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넘어 온몸을 다해 도전하고 뜻한 바를 이뤄내라고. 오랜만에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직접 미술관에 가서 이들의 그림을 보고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