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브런치와 함께 꿈을 향해 달리는 중
온몸이 땀에 젖었다. 속옷까지 흠뻑 젖어 상하의를 벗어 비틀어 짜면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다. 달리기를 한 덕분이다. 10km를 뛰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다음 날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좋은 책은 사람을 행동하게 한다. 누워 있던 사람을 일어나게 하고 걷는 것에 만족하던 사람을 달리게 하고 때론 죽으려고 했던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랬다. 3년 남짓 일을 쉬고 전업 주부이자 경단녀로 살면서 ‘글의 힘’을 믿게 되었다. 평생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설레는 꿈도 생겼다. 나도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꿈보다 현실이 더 세다. 바닥 난 통장의 독촉에 동네 종합학원 국어 강사로 재취업했다. 49살, 적지 않은 나이였다. 10월 한 달은 2학기 중간고사 대비 기간으로 일요일까지 보충수업을 한다. 일을 시작하고 두 달도 안 됐는데 나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밤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였던가 보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이 "괜찮아?" 묻는다. 사실 내가 괜찮지 않은 이유는 학원 일로 인한 육체적 힘듦보다는 다른 데 있었다.
몇 주 전,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는 홍보 문구에 심쿵했다. '나도 하고 싶다!' 혼잣말에 맥박이 빨라졌다. 10인의 작가를 선정해서 상금도 주고 출판사와 함께 책 출간의 기회를 준단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에 응모하려면 우선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쉽게 기회를 줄 리가 없지. 찾아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한 번에 수락이 된 사람도 있지만 10번 이상 거절된 사람도 부지기수고, 도전하다 포기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브런치를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고 핸드폰에 앱을 설치했다. 수시로 브런치에 들어가 어떻게 하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유튜브에서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다가 '아직은 안 될 것 같다'고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학원 일에 치여 그냥 포기할까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는 거절 멘트를 받게 되더라도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도전이라도 해봐야 '안녕하세요,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멘트를 기대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해보지 않고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2020년 10월 21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0일에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단 하루 만에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학원에서 수업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수업 중에 놀라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쌤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대!" 했더니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와우! 쌤, 축하해요."라며 박수를 쳐 주었다. 그날 밤 남편은 축하 파티를 해주며 나를 ‘이 작가’라고 불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출간 제안을 받았다. 11월에 출간 계약서를 썼다. 2021년 6월에 내 생애 첫 책 『일을 그만두니 설레는 꿈이 생겼다』가 세상에 나왔고, 코로나 시절 온라인 북토크를 하고 독서 모임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책 출간 후 나는 브런치와 블로그로 알려졌다. 나를 논술 선생님으로 점찍었다는 국어학원 원장님의 제안을 받아 지금 4년 넘게 논술 강사로 수업한다. 일주일에 3일,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아이들과 즐겁게 읽고 쓴다.
지금 내 브런치에는 402명의 구독자, 작품 14개, 글이 318개다. 5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의 설렘은 희미해졌어도 난 아직 ‘진짜 작가’를 꿈꾼다. 자주 글을 발행하진 못하지만 매년 브런치북 프로젝트 일정이 나올 때마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서 두 번째 책을 출간하겠노라 다짐한다. 브런치와 함께 생애 첫 책 출간과 나이 50에 내게 딱 맞는 직업을 얻었다. 그야말로 꿈을 이룬 셈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하루키의 말처럼 나는 브런치와 함께 앞으로의 꿈을 향해 계속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