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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Nov 05. 2024

칼럼보다 우화

율리시스 에피소드 7


1904년 6월 16일 정오

Freeman’s Journal 신문사, 더블린 중심가


아이올로스?

오디세우스는 항해 중 바다 위에 떠있는 섬, 아이올리아에 닿게 되는데 섬을 다스리는 아이올로스 왕은 바람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었다. 왕은 오디세우스가 고향까지 순항하게끔 모든 역풍을 소가죽 포대에 넣어서 배에 묶어 주었다. 10일간의 항해 후 고향 이타카 섬이 드디어 눈앞에 다가오자 긴장이 풀린 오디세우스는 잠에 빠지고 이 틈을 타 보물이라도 든 게 아닐까 궁금해하던 부하들이 포대를 열어 바람이 빠져나왔다. 바람은 폭풍을 만들고 배는 다시 아이올리아 섬으로 떠밀려가 버렸다. 아이올로스 왕은 다시 온 오디세우스를 신들이 저주한 사내라며 다시 도와주지 않고 내쳐버린다. 프리먼 저널의 편집장 마일스 크로포드가 이 에피소드에서 아이올로스 왕을 상징한다. 그는 더블린의 수많은 알코올중독자 중 한 명으로 내뱉는 말들로 보아 낮부터 술냄새를 풍기고 있다.


광고맨 블룸 투명인간으로 살다

친구 장례식에서 돌아온 블룸은 바로 업무에 착수하는데 음료 도매상의 광고 디자인 건이다. 인쇄 감독과 광고의 디자인을 의논하는데 감독은 광고주에게 3개월 갱신을 주문한다. 트램을 타고 광고주를 찾아가기 전 전화로 광고주의 현 위치를 확인하고자 블룸은 전화기가 있는 이브닝 텔리그라프 사무실에 들른다. 거기에선 웃음소리와 함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고전학자) 맥휴 교수, (빚쟁이 변호사) 제이 제이 오몰로이, (실업자) 레너핸 그리고 편집장인 마일스 크로포드이다. 그들 사이에 끼어 뻘쭘히 있다 기회를 봐 겨우 전화를 쓴 블룸은 크로포드에 보고한다.

—I'm just running round to Bachelor's walk about this ad of Keyes's. Want to fix it up. They tell me he's round there in Dillon's.

편집장은 앞으로 한쪽 팔을 쭉 뻗으며 대꾸한다.

—가보시게! 세상이 그대 앞에 펼쳐지리니.


블룸이 나가고 얼마 후 (저널리스트) 오마덴 버크가 스티븐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선다. 스티븐은 교장 디시가 부탁한 구제역에 관한 편지를 크로포드에 전하러 왔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리고 블룸이 크로포드와 통화하기를 원하는데 크로포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끊는 부름에 지옥에나 가라며 간단히 무시한다.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블룸이 일행과 펍으로 향하던 크로포드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편집장님! 광고주가 2개월 갱신한다고 새 디자인에 광고 기사 한 문단 넣어달라는데요.

—Kiss My Arse.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가서 전해. Kiss My Royal Irish Arse.

블룸이 말 뜻을 곱씹으며 미소 지으려던 참 크로포드는 성큼성큼 지나쳐버린다. 아이올로스 왕이 오디세우스를 내치는 지점과 겹치는 장면이다. 광고 계약 하나 연장하려고 동분서주했는데 돌아온 건 엉덩이뿐이었다.


주목받는 스티븐

스물둘의 스티븐은 더블린의 언론인들과 인맥이 있을 정도로 이름이 나있었다. 1902년 그가 대학서클에서 발표한 시평을 프리먼 저널이 호평한 적도 있었다. 편집장 크로포드는 스티븐에게 신랄한 칼럼을 써달라고 한다. 자네 젊은 혈기로 우리 지면에 힘을 불어주라고.


신문이란 선반 위 일일 수명.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풍향계, 언제 김이 샐 줄 모르는 공기주머니 같은 저널리스트. 저널리즘이란 불안정하게 떠있는 아이올리아 섬 같은 것. 스티븐은 크로포드의 부탁을 경청과 침묵으로 거부한다.


이브닝 텔리그라프 사무실에선 언론, 역사, 정치 등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 과거의 영광을 들먹이고 참다운 언론이 어떻고 당시 더블린 지성인들의 잡담이다. 그들은 과거에 묻혀 현재와 단절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란 인상을 준다. 여론의 맥박을 짚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클 밖 세상 일에는 완전히 무지한. 무료함을 느낀 스티븐은 휴회하고 한잔 하러 가자고 제안하고 그들 모두는 동의한다.


DEAR DIRTY DUBLIN

스티븐은 자신의 비전을 맥휴 교수에게 들려준다. 더블린에 사는 두 수녀가 넬슨 기념비를 등반한다는 우화이다. 평생을 궁핍하게 살아온 50세, 53세의 앤 커언스와 플로렌스 맥케이브는 이 날의 소풍을 위해 돈을 모아 왔다. 그들은 넬슨 기념비 꼭대기에서 더블린 시내 전경을 보고 싶었다. 호레이쇼 넬슨은 영국 해군 명장으로 이 기념비는 1809년 완공되었고 더블린 시티의 랜드마크였다. 잘 차려입고 보닛을 쓰고 비가 올지 모르니 우산까지 챙겨 들고 소풍 음식으로 돼지머리 고기와 빵 네 조각을 샀다. 기념비 아래 소녀 행상에게서 갈증을 해소해 줄 자두도 한 봉지(24개) 잊지 않았다.

감긴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공기통로로 바깥을 내다보며 서로를 격려하며 또 신을 예찬하면서 기념비 탑을 서서히 오르는데 이렇게나 높은 줄 미처 몰랐다. 꼭대기까지 힘겹게 오른 후 허기가 지자 빵과 돼지머리 고기를 먹고서 난간 가까이로 갔다. 40미터 높이의 기둥이 무너질까 조바심을 냈다가 지붕 모양으로 교회들(Rathmines' blue dome, Adam and Eve's, saint Laurence O'Toole's)을 찾아보다가 현기증이 나자 주저앉아 외팔이 불륜남 넬슨의 동상을 올려다본다. 그마저 목이 아파 그만두고 사가지고 올라온 자두를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자두 씨는 난간 사이로 쏘아 뱉는다. 이 에피소드의 모티프인 실망감이 앞서 블룸이 맛본 실망감에 이어 더해진다.


스티븐은 제풀에 크게 웃으며 이야기의 끝을 알린다. 넬슨 기념비는 스티븐에게 영국을 향한 경멸의 표상이다. 맥휴 교수는 외팔이(전투 부상) 불륜남(유부녀 애인)이라는 표현에 환호하고 크로포드는 결말에 암시된 성적 요소에 주목했다. 율리시스가 검열의 벽에 부딪혀 첫 출판에 난항을 겪는데 한몫한 대목이 아닐는지. 수녀들의 성적 판타지란 당시 얼마나 불경스러운 것이었을까. 불경스럽지 않은 불경스러움. 스티븐의 우화는 우화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해석이 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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