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타콰 칼리지
신형철이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비평가 제임스 우드를 언급하는 순간 St James Wood Drive 라는 도로표지를 보았다. 작은 우연의 일치. 좋은 아침이다. 긴급교사로 오늘 하루 투입된 학교로 운전 중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이렇게 새로운 학교를 돌며 일하는 것이 마치 여행 같고 만만치 않은 모험이다.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은 제각각의 룰을 가지고 작동하고 움직이기에. 오늘은 알 타콰 주니어 무슬림 학교. 룰은 룰인 만큼 준비한 스카프로 머리를 감추고 지정받은 일학년 귀요미들의 교실로 향했다.
—쟤 지난번에 자기 샌드위치 버렸어요.
한 아이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자 아이를 가르켰다.
—치즈 안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치즈 한장 낀 샌드위치와 프링글스 포테이토칩 몇 장이 담긴 런치 박스를 앞에 두고 아이가 옆에 다가선 내게 속삭였다.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10센트와 5센트짜리 동전을 런치박스에 빠뜨렸다 집어내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오빠랑 동생들하고만 놀아요.
—그래? 남자형제가 몇 명인데?
—다섯 명이요.
일학년 파티마는 반에서 유일하게 히잡을 쓴 아이였다.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오목조목 이목구비가 안이쁜데가 없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젊은 엄마일텐데 요즘에도 그런 엄마가 있나? 다른 아이들의 런치 박스도 훑어보았다. 대부분 과일과 과자가 함께 담겨 있었고 작고 예쁘게 자른 다양한 과일이 칸칸이 담긴 아이의 것도 있었다. 쉬는 시간 파티마는 15센트를 쥐고 매점으로 갔다. 파티마 바로 뒤에 줄을 서서 매점에 뭐가 있나 두리번거리던 나는 동전이 부족해 퇴짜를 맞고 돌아선 파티마를 보지 못했다. 우선 먹는 것이 다급했던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밖에서 노는 점심 시간. 파티마는 혼자 교실에 두번 왔다 갔다. (정확히 말해 나는 아이가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다른 일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파티마는 수업시간에도 보란듯이 딴청을 피웠다. 이게 맞나 틀리나 확인하고 빨리 끝내서 선생님께 보여주고 싶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화이트보드에 낙서를 하거나 하며 내 옆을 맴돌았다.
마지막 수업이 끝날 즈음 한 교사가 스쿨버스로 집에 가는 아이들을 호출하러 왔고 가방을 싸는 아이들,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각을 주워담는 아이들로 교실이 들썩였다. 나중에 보니 종이와 공책을 그대로 펼쳐두고 간 파티마의 테이블이 보였다. 아이는 이미 방향 감각을 잃고 있었다. 아이 데릴러 올 엄마가 아니지.. 하긴 일하느라 못 오는 것 일수도 있어. 파티마 동생들 돌보느라.. 파티마는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아이들 중 한명이었다.
그렇게 파티마의 엄마를 대면하고 싶었던 나의 호기심은 충족되지 못했다. 담임교사도 아니고 하루 메꾸러 온 교사가 한마디 건네는 것도 그리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의 런치박스는 다만 추억일 뿐인 교사의 자비로운 오지랖이라 여기며 말없이 귀가했다. 파티마는 엄마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선생님에게 알렸다. 순해터져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반항하더라도 싫은건 싫고 아닌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낼테니까. 그렇게 자기를 지켜낼 테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집에 와서도 파티마의 런치박스가 어른거렸다. 아무래도 학교에 보고를 했어야 했다. 어른의 잘못을 다른 어른에 털어놓았는데 나는 그 메시지를 빈말처럼 듣고 말았다. 아이는 겨우 초등 일학년. 아무래도 나는 뒷북을 칠 것 같다.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 것 같냐고. 다행히 우리 학교엔 속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사이마, 말리하, 쉬린 같은 무슬림 동료 교사들도 있다.
대추야자수 뒤로 초록 모스크와 첨탑이 이국적인 교정. 낼 모레로 임박한 라마단을 환영하며 라마단 카림이라고 쓰인 휘장 위로 초승달과 별이 달린 램프, 사우디에 하나 있다는 카바 kaaba 미니어처. 집에서 차로 불과 10분 남짓 거리의 이곳은 아라비안 왕국. 발목까지 닿는 교복 스커트에 희고 검은 히잡을 입고 네가 왜 여기에 라고 묻는 듯 이방인을 보는 어린 학생들. 낯선 것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아프다.
오 뻑, 한번 안아주고 올 걸. 난 아직도 허깅이 자연스럽지 않아. 파티마, 친한 친구도 만들고 아라비안 나이트, 백설공주 같은 동화책도 읽어보렴. 우리.. 생존하지 말고 살아가자. 굿바이, 리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