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건 모르는 건께

by 블루검

오늘도 알록달록..


반짝 온라인 수업을 했다. 이번 텀 마지막 수업이라 마음도 가볍게 줌 줌. 정각이 되어서도 도착한 학생이 없다니. 역시 시작은 그룹 콜을 날려줘야 제맛이지. 수업은 줌과 왓츠앱으로 진행된다. 30분 정도 지나니 한 명 빼고 모두 출석해 있다. 대개 인터넷 연결이 원만하지 않아 출석이 지연된다.


불안하면 내일은 온라인 수업해도 돼. 코로나 확진자가 네 명이 나왔다는 공지에 아침부터 움츠러들자 코디네이터가 내게 제안했다. 확진자는 어제 나와 말을 주고받았거나 스쳐 지나며 안부를 묻던 직원들이었다. 학생들에 의견을 묻자 페로자가 반 전체를 대변했다. “헤브리 바디 원트 컴 투 스쿨.” 온라인에선 이해가 풀가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 의견을 수용해 내일도 교실에서 수업하는 걸로 했다.


저녁 8시 즈음 코디네이터가 전화를 했다. 확진자가 네 명 더 나와서 내일부터 잠시 휴교에 들어간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통보했다. 지난 텀까지 온라인 수업을 해 온지라 모두 익숙해져 있다.


줌 스크린을 공유하면 MS워드가 화이트보드가 된다. 한두 명을 제외하곤 컴퓨터나 랩탑이 없는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수업에 참가한다. 수업 중에 필기한 것이나 숙제는 사진을 찍어 왓츠앱 단체방에 올린다. 열심히 찍어 보내는 학생, 한 번도 안 보내는 학생, 자발적이긴 하다.


온라인으론 역시 노란책(교과서)을 따라가는 게 서로 편리하다. 그래서 오늘 과감히 미래 시제를 펼치기로 했다. 기초반인 우리 반은 말로 글로 열심히 설명해 가면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그건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에 해당되는 진리. 각자 문화가 다르듯 개인마다 지닌 교육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듣고도 모르겠는 걸 알아들은 척할 필요도 없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심각보다는 단순이 우리의 모토이다. 점수나 등급, 체면 같은 것이 필요 없는 클라스랄까. 단지 열심히 뭔가 말해준 것 같은데 감이 안 올 때는 스몰 스몰, 리틀 리틀 하며 그 순간을 넘기기도 한다.


스크린에 알록달록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으로 읽어요. 의미 단위로 나누어 주고 바뀐 순서에 화살표를 쏘며 키워드는 하일라이터로 덧칠하고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을 동원해 이 낯선 문장을 해부하고 분석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구글 이미지로 단어도 체크하며 기록해둔다.


난데없이 이름을 불러 주는 것도 좋은 자극제가 된다. 학생의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는 밥을 먹는지 요리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오프라인 수업을 주장하던 페로자는 방금 남편과 커피를 마셨다며 호호거렸다. 그 후로는 수업에 열중했는지 모르겠다.


'비 고우잉 투'로 만드는 미래를 말하던 중, 니게스테와 아브라가 몇 분 전 보낸 왓츠앱 메시지를 확인했다. ‘목소리 안 들림.’ 다른 학생들은 잘 듣고 있는데 신기했다. 이제는 들려서 다행이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연습문제에 답할 시간이 되었다.


그때 니게스테가 “첫 번 것, 첫 번 것을 모르것어” 한다. 첫 번 것이 뭘까. 아까 목소리가 안 들려서 첫 페이지에 했던 내 설명을 놓친 것 같았다. 모두가 연습문제에 향해있는 동안, 첫 페이지로 돌아가, 글자를 크게 하고 화살표를 정돈하며 대충 설명을 더했다. 그러곤 연습문제로 돌아와 모두 함께 정답을 맞춰 나갔다. 한 명씩 돌아가며 답을 넣은 문장을 읽는데 “첫 번 것 모르것어” 가 다시 줌을 갈랐다. 나는 첫 페이지의 스크린 샷을 찍어서 왓츠앱에 올렸다. 문제를 끝낸 학생들의 사진도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비 고우잉 투’와 의문사를 결합하는 과정에 접어들었다. 우리 학생들에겐 조금 빡센 과정이지만 노란책의 같은 페이지를 모두 커버하려면 여기까지 하는 게 나았다. 어쨌든 오늘은 방학 전 날이라 조금 과식해도 무리는 없을 듯했다. 나는 또 무지개 색 범벅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련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열중해서 하다 보면 얼마간 채워지는 걸로 착각을 한다. 학생들도 뭔가를 터득한 듯 끄덕끄덕 토닥토닥.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다음 텀 교실에서 판명 나리라. 오늘은 미래 시제 첫날이니 no worry be happy.


그때 추임새 달듯 그녀가 한 번 더 읊조렸다. “첫 번 것 모리 겄어” 어느 지역 아짐씨같은 뉘앙스로 이건 뭐 ‘모르는 건 모르는 건께 끝까지 해볼껴’ 하는 식이었다. 낯빛에는 나타나지 않을 만큼의 풍파가 일었던 걸까. 금방 졸 것 같은 풀린 눈을 깜박이며 교실에서도 적시 적소에 질문을 던지곤 했다. 추임새가 들어가니 수업이 수업다웠다. ‘얼씨구 잘한다!’ 하고 응대하고 싶었지만 용케 참고 이 숙제를 하면 알 거라고 왓츠앱에 숙제 링크를 날렸다.


Do you like this country? Yes.. but language is the problem. 다 좋은데 발에 걸리는 게 언어란다. 그러니 고향 떠나 타향 사는 심정을 만학의 열정으로 승화할 밖에.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모르는 건 짚고 넘어가야 속이 편하다. 그 갈증이 반갑고 기특하다. 이 순간 이국 사는 허기를 채우는 우리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