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영어회화반

7월 21일

by 블루검

에구.. 목욜은 일 안 할 건데..


어제는 매니저 리디아가 교실문을 두드리며 오늘 두 시간만 수업을 해줄 수 있냐고 했다. 표정으로 짐작한 그녀의 절박한 구조요청에 주저 없이 예스라고 했다. 이번 주 만이라는 확언을 받았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좋다고 했다가 요즘 코비드-19가 증가 추세라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 하는데 했다가 혼자 오락가락하다가 아침 9시 집 근처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민자 엄마들과 하는 목요일 아침 영어 대화반이다. 담당교사가 코비드-19로 지난 2주간 쉬었는데 이번 주는 인플루엔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게 떨어진 미션. 인도인 세 명 이집트인 한 명 이란인 한 명해서 다섯 명의 엄마들과 반짝 만남을 가졌다. 이민을 온 지 5년 이상 된 베테랑 시민이었지만 언어가 말처럼 늘지 않아서 조금 불만인 눈빛 초롱한 젊은 여성들이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하는 동네라서 이런 캐주얼한 배움의 장도 이민자 영어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구나 싶었다.


대화반이라 함은 대화의 중심이 학생이 되고 교사 밀당의 기술로 고루 말할 기회를 주는 게 이상적일 텐데 그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두 시간은 대부분 나의 성의 어린 수다로 이어졌다. 말하다가 혼자 울컥하기도 하고 이것만은 한번 시도해보라는 간절함을 더하며 두 시간이 20분처럼 지나갔다. 호기심과 공감의 눈빛들이 나를 타오르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민 와서 지금까지 쌓인 내 경험과 통찰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 내용은 대강 이랬다.


1. 인도인 엄마가 여기 사람들의 액센트가 달라서 잘 못 알아듣겠다고 했다. 액센트로 불거진 이슈는 여러 요인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성인에게 영어공부의 시작은 듣기 말하기 쓰기 전에 읽기라고 했다. 듣고 말하기는 그 속도를 내가 조절할 수 없지만 읽기는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하든 내가 조정할 수 있다. 단어 찾기와 문장 구조에 집중한 읽기를 한 후에 따라오는 듣기는 귀에 딱 붙는다. 신문기사와 같은 날 TV 뉴스가 제격이다.


2. 이란인 엄마는 이민 초기에 특히 남편이 들이민 전화 수화기에 흔들렸다고 했다. 못 알아들을까 내말이 통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신감이 떨어져 힘들었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들 이야기책이나 오디오북을 추천했다. 자막이 뜨는 유튜브 오디오북도 활용할 수 있다. 계속 틀어놓고 집안일을 해본다.


3. 자녀들에겐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보다 중요한 게 엄마의 모국어라고 했다. 모국어를 잘 모르고 크면 정체성에 위기가 올 때가 있고 그런 박탈감으로 부모를 탓하게 된다. 부모와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도 견딜수 없게 될 것이다.


4. 인도인 엄마는 실수를 할까 봐 말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거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영어가 아니라고 했다. 이태리어 그리스어 힌디어 아랍어 페르시아어처럼 영어도 이민 온 언어이고 이 나라는 이민자가 모여 사는 곳이다. 여기 원주민은 아웃백 (주로 사막) 에 흩어져 사는 애버리지니이다.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영어 하나를 하지만 엄마는 힌디와 영어 두 개를 할 줄 안다고 뻔한 사실을 환기시켰다.


5. 또 한 인도인 엄마는 매일 몇 줄 일기를 쓴다고 했다. 우리 모두 배울 점이라 동의했고 모국어로 글쓰기를 하는 것은 제2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격려했다.


내 시간을 욕심내었던 목욜 오전. 일하며 봉사를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못 느끼던 스트레스를 한 겹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그 외에 인도 뭄바이에 간 이야기며 인도 친구 이야기도 곁들였다. 고국에 나가 2, 3주가 지나면 여기가 생각나 돌아오고 싶어진다는 이집트인 엄마의 말에 이란 엄마도 맞장구쳤다. 나도 비행기 타고 몇 주 떠나 있으면 어김없이 멜번이 그리워진다. 서로 마음이 맞아 흐뭇해졌다.


내가 담임을 하는 반은 기초반이라서 교실에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했었다. 가능은 하겠지만 이야기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흥미있는 주제로 시도해 봐야겠다.


좋은 하루이다. 지금 좋은 건 이 글을 바로 썼다는 것이다. 강원국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쓰기 전에 먼저 말을 해보면 쓸 내용이 정리가 되어 글쓰기가 쉬워진다고. 미루기 쉬운 글쓰기가 오늘은 쉽게 쓰였다. 선뜻 응한 대화반 수업을 통해 공감과 긍정을 덤으로 받은 셈이다. 고맙다는 리디아에게 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