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행복

7월 18일

by 블루검

“아침부터 폭탄 맞은 줄 알았는데 다 먹었다. 이리저리 나눠줘서.. ”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보내며 엄살을 떨었다.

“왜 폭탄? 입에 안 맞아서?”

“몸에 폭탄”

“글치, 칼로리 폭탄”


아무 날 아닌데 아프가니스탄 학생인 우리 반 페로자와 샤히다가 쿠키와 밀크 케잌을 만들어 왔다. 재료를 사서 집에서 각각 한 시간, 세 시간을 들여 만들어온 정성 깃든 파티스리였다. 아프간 쿠키는 은은한 허브향을 냈고 밀크케잌은 피스타치오 가루와 코코넛 토핑이 이국적이었다.


이 많은 걸 우리 반이 다 먹을 수 없을 테니 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아프리카 아낙네들 (학생이지만 아낙이고 주로 남수단, 콩고 출신들이다) 등 부엌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아있던 다른 반 학생들과도 나누었다. 그러고도 남은 건 교사, 직원들에게도 접시 접시 날랐다.

큰 기대는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못 먹을 물건 취급을 하니까. 무슨 벌레 보듯 피해 가는 사람도 있다. 그 근처는 얼씬도 말자는 게 내 쇼핑 룰이기도 하다. 예의로야 고맙다고 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케잌같은 달콤한 죄악은 가까이해봤자 신상에 좋을 일 없다는 게 불문율이라서 건넨 사람이 느낄 서운함은 크지 않다. 만들어온 정성을 생각해서 남을 경우를 대비해 모자랄 듯 나누고 나누었다.


한편 한 아프리카 아낙이 먹은 접시를 들고 우리 반 교실에 들어왔다. 다 먹은 접시를 가져다준다 짐작했는데 케잌이 맛나다며 한 접시 더 주라는 거였다. 그 단순한 한마디가 짜릿하게 다가왔다. 물론이지 하며 밥 한 그릇 퍼주듯 담아주었다. 차에 적신 통통한 마들렌느 맛의 효과라도 본 걸까. 그게 뭔지 아리송해 2차 3차 확인해보려는 걸까. 오랜만에 느끼는 작은 쾌감이었다. 어쩌다 맡는 사람 냄새라는 게 있다. 단지 이번엔 모르는 학생에게서 예상치 않게 왔다.


예를 들면, 그녀가 먹다 남긴 케잌 조각에도 신음해야 하는 남자가 있었다. 케잌을 아끼는 남자는 롤케잌을 김밥 썰듯 잘라서 먹지 않고 가로로 길게 1층 만을 뜯어먹다 남긴 여자의 촌스러운 짓거리에 경악을 토해냈다. 그러고 있는 남자를 마주하며 느끼는 작은 고소함 같은 것이 있다. 촌닭같이 빙충맞게 구는 그녀의 시골뜨기성도 때론 쓸모가 있었다.


케잌은 이렇게 먹는 게 예의라는 듯 사람들은 부스러기 크림 묻은 빈 접시와 스푼을 남겨준다. 이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배려의 총량이라고. 고맙게도 아프리카 세련된 아낙들은 몸에 겹겹이 쌓인 지방 씻어내듯 먹은 접시들을 깨끗이 물에 헹궈 싱크대 옆에 층층이 두고 갔다.


행복이 뭔지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녀들은 순간 만끽하고 잊어버릴 그런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행복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느긋한 마음으로 아무 걱정 없이 달콤한 케잌을 즐길 줄 아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 능력을 배우고 싶었다. 그녀들의 단순함이 생각없음이 마구 닮고 싶어졌다.


한 접시 나눔에 힘을 얻어 치마 자락 날리며 교실로 돌아간 그녀들의 행복이 내게도 전파됐다. 부스러기 케잌만 이리저리 맛보던 나도 한 조각의 완연한 행복을 감지했다. 행복은 전파력도 길어서 2주가 지난 오늘 케잌 재료를 일일이 묻는 수고를 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져서이다. 그러자 페로자는 또 폭탄을 깔았다. 선생이 좋아하니 또 만들어 오겠다는 것이다. 공들일 시간 세 시간을 기억하라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매거진의 이전글목요일 아침 영어회화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