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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리아를 꺾다

1 March

by 블루검

늦은 이월이었다. 이곳에서 5년째 맞는 여름이지만 꽃의 이름을 안 건 며칠 전이다. 화병에 꽂을 꽃이 없나 건물 주위를 휘익 둘러보며 주차장에 들어섰다. 항상 거기 있지만 보이지 않던 나무들도 철 따라 날씨 따라 변하고 있었다. 큰 나무에 핀 꽃을 꺾어 실내로 옮겨놓는 건 한번으로 족해야 한다.


다음날 꽃잎은 거뭇해지고 줄기는 여위었다. 딜레마. 이런, 또 꺾어와야겠는 걸 하고 생각했다.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니 튜브모양의 대롱에 달린 자색 꽃들이 하늘을 향해 일렁이고 있었다. 한다발 더 꺾고 싶지만 팔이 닿을 성싶지 않았다. 키 큰 사람 함께 내려가요. 수제 천가방을 비스듬히 매고 상체를 웅크린 채 테이블 아래 핸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학생. 잠깐 따라와줘요.


학생은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듯 가지를 잡아당겨내려 내가 쥐워 준 가위로 꽃대를 몇 개 잘라냈다. 꿀벌 한 마리가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세상모르고 꽃송이를 맴돌고 있었다. 엊그제 쨍쨍한 정오에 꺾인 묶음에는 무당벌레일까 세 마리가 묻어 나왔다. 버들리아! 꿀향이 나서 버터플라이 부시라고도 한단다. 흰색도 분홍색도 있단다. 꺾꽂이하기가 쉽단다. 내 수고에 보답하듯 꽃이름부터 이런저런 걸 아는 동료들이 있었다.


교실 안 학생들은 꽃꽂이를 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교사를 차분히 맞이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짧은 영어라도 신나게 건넬 수 있는 한마디. 이 한마디로 하루가 시작된다. 닮은 사람들. 볕에 그을러 사과주스 같던 얼굴색이 희미하게 변색되어도 금세 꺾이지 않을 양 연필을 쥔 손에 그 입가에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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