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드디어 출간] 프롤로그와 추천사로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by 고재욱

[프롤로그]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산책 중이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새가 있을 법한 곳을 눈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를 낮추고 나무처럼 꼼짝 않고 섰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작은 새가 종종종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새가 놀라서 달아날까 봐 나는 조심조심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바닥에 핀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노란 들꽃 열 몇 송이가 마치 하나의 큰 꽃인 듯 한데 모여 피어있었다. 새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새를 찾느라 몸을 낮추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작은 꽃들이었다. 작고 노랗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 없는 모양의 들꽃 무리,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외에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꽃잎이 다 떨어지는 날까지 조용히 저물어갔을 흔한 들꽃 무리.

이 책은 요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두서없이 뒤섞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엮은 글이다. 치매 노인들의 조각난 기억들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반복되는 퍼즐 맞추기를 하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요양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 죽음 앞에서 하찮은 삶은 없었다.


예전에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처럼 삶의 재난은 나에게도 닥쳐왔다. 금융위기와 부도, 파산, 남의 것인 줄로만 알았던 낱말들이 내 것이 되었다. 갈 곳이 없어지니 발길이 마포대교로 향했다. 마포대교 위에서 꼼짝 않고 두어 시간 동안 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어 다다른 곳이 ‘영등포 광야 홈리스센터’였다. 사탕 상자의 밑바닥처럼 귀퉁이가 깨지고 동강이 난 사탕들, 이리저리 구르다 부서져 모래알처럼 조각난 사탕들이 눅눅한 설탕 가루와 함께 바닥에 엉겨 붙어 있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산산이 부서진 사람들, 무기력한 눈빛으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과만 남은 사람들 속에서 뒤엉켜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굳게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노숙인이 다른 노숙인을 돕는, 일종의 봉사 활동이었다. 겨울밤에는 영등포역 주변을 돌며 얼어 죽는 노숙인이 없는지 살폈고, 시설 입소를 거부하고 길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을 씻기는 일을 했다. 그때 거리에서 정말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가장 외롭고 차가운 죽음들을 목격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삶의 의지를 다잡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7년 간 세 곳의 요양원에서 근무하며 100여 명의 노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매일같이 살 부딪치고 식사를 돕고 몸을 씻겨드렸던 분들이다. 어쩌면 명절에야 간신히 마주 앉아 식사하는 부모님보다도 더 가까이 지냈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떠나는 날은 뭔지 모르지만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지켜봐 왔던 한 할머니는 떠날 무렵, 내게 하나만 약속하라고 말했다.

“미안해하지 말아라. 나랑 약속해.”

할머니께는 약속하겠다, 절대 미안해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작별의 순간에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몸이 자유롭지 않거나 마음이 흉터 투성이인 노인들, 이제는 다 커버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어린 내 새끼 배고플까 온통 자식 걱정뿐인 노인들, 숨이 꺼지는 고통의 순간에도 오히려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인들……. 그들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를, 조각난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의 오래된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내게 전해준 마음의 치유제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려 한다. 살아온 모든 기억을 잃고 그리운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에서 지내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마지막 날들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지금 내게 없는 것 같은 희망도, 사실은 늘 지나다니는 길옆 한 구석에 무리 지어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발 밑을 내려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작고 노란 들꽃 같은 희망을.

원주에서,

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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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글은 인생의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 글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이 그렇다. 한 사람의 어두웠던 인생에 글이 어떻게 길을 밝혀주는지,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 주는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분명 슬프고 아프지만, 아픔 사이로 마음이 따뜻하게 아물어간다. 그리고 문득 간절한 마음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우리가 미처 사랑하지 못한 시간들을 반성하게 된다. 외롭고 추운 이들의 마지막 삶을 지키고 있는 저자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이해인 수녀, 시인




* 인터넷 서점은 27일, 광화문엔 6월 1일 배포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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