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의 연세를 모두 합친 시간이다. 이 년 수는 줄어들거나 늘어갈 텐데, 그럴 때마다 사라지는 기억이 있겠고 추가되는 이야기가 생길 것이다. 이 매거진을 만들고 이야기들의 일부는 기록에 남겼고 어떤 기억들은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많은 어르신들이 쏟아내는 기억의 조각들을 찬찬히 주워 담지 못한 것은 그분들의 두서없는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부족한 나의 필력에 기인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담기에도 부족했을 내가 어찌 4,579년을 온전히 그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일부 내용의 이야기들이나마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워서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각인된 이야기,
아프기만 해서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
암탉이 병아리를 품 듯 온몸으로 자녀를 지켜낸 이야기,
앞만 보고 살아온 날이 후회된다는 할머니의 이야기,
식민과 전쟁과 가난의 시대에 실핏줄처럼 가늘고 끈질기게 흘렀던 그분들의 이야기는 한과 닿아있었다.
어르신들 마음에는 한이 스며있다. 나는 한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지만 깊이 느낄 수는 없는데, 어르신들은 고난이 어르신들께 한을 만들었고 다시 그 한이 고통을 이길 힘을 주었다고 했다.
나는 노인이 되면 한에 대해서 알아질까. 중년의 우리에게도 한이란 것이 생길까. 요즘 사회를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중년의 가장들은 자꾸 어깨가 처진다. 부모는 이제 스스로를 보살필 수 없고 자녀들도 아직 자신을 살필 수 없다. 효자가 되자니 자식이 떠오르고 자식 걱정을 하자면 부모가 생각난다.
사회는 또 어떤가. 퇴사를 종용한다. 임금피크제 얘기가 나온다. 용기 있게 사업을 시작하기엔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일은 사치로 느껴진다. 중년의 가장들은 어깨가 내려앉고 한숨이 늘어간다. 우리 중년들에게도 이미 한이란 것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생긴 그 한이 중년의 가장들을 이 사회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늦은 밤에 요양원을 찾은 중년의 사내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는 50대로 보였다. 그에게서 술냄새가 풍겼는데 그 냄새에 짠맛이 섞여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입원 중인 어머니 앞에 섰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눈을 맞추지도, 대화를 나눌 수도, 스스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중증의 환자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 앞에서 한참 서있었다.
돌아가는 그의 눈빛을 보았는데 그의 눈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그 눈은 한이 서린 눈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가로등 빛에 산산조각으로 흩어질 때 나는 그가 그 한으로 고통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는 분들과 오늘을 인사한다. 내일 나는 또 그분들과 오늘을 인사할 것이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할머니는 기억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할아버지는 새 기억을 가지고 요양원을 찾을 것이다. 4,579년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계속되고 수많은 한들이 드러나겠지. 하지만 그 한으로 고통을 이긴 이야기들도 들릴 것이다. 이곳은 요양원이다. 나는 박물관 같은 어르신들의 서기관, 요양보호사다.
물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줄 독자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커버 사진: Hermann, pixabay)
(그동안 매거진 Lost story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매거진은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서점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