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것이 다 쪼그라드는 것일까?
인지증 환자인 할머니는 기억이 옅어지는 것 못지않게 몸 또한 줄어들고 가벼워졌다.
할머니는 자부동(방석의 할머니식 표현) 위에 올라 복도를 항해 중이다. 두 팔을 노 삼아 젓고 있다. 두 번 손질에 한 번씩, 휴우~ 장단을 넣고 다시 노 젓기를 반복한다. 노는 낡고 가늘어 언제 부러질지 몰라 보인다. 할머니는 돛대도 없이 잘도 전진 중이다.
"할머니! 어디 가시게요?"
거친 물질에 작고 허연 얼굴이 붉어진 홍시처럼 터질 것만 같다.
"집에 가야지. 집에..."
눈두덩이 눈의 반을 덮어 무어 보이기라도 할까 싶은 작은 눈에 간절함이 가득하다.
집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곧 점심시간인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자, 달래 보지만 작은 공처럼 웅크린 할머니를 실은 방석은 요지부동이다.
"집에 누가 있길래요?"
대답은 안 하시고 입만 삐죽거리신다.
단춧구멍만 한 눈이 부르르 떨리고는 물인지 땀인지 한 방울이나 맺힌다.
"며느리가 있지. 며느리가 나를 얼매나 기다리고 있을 건데."
올해로 92년의 세월을 살아낸 할머니의 남편은 이십여 년 전에 서둘러 이 땅을 떠났다고 했다.
남편이 떠나기 전 다섯 아들 중 세 명의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냈고 남편과 사별 후 남은 두 아들 중 하나를 또 잃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로 시작하여 첫째, 셋째, 넷째, 다섯 번째 며느리가 모두 과부라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다 과부야.
나도 과부고 며느리도 다 과부니....
내가 가서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나 집에 좀 데려다줘.
요양원에 계신 지 삼 년쯤 되어가시는 할머니,
둘째 아들이 집에서 보살피다 끝내는 요양원으로 모셨다.
많은 이들이 어르신을 요양원에 모신 후에 시간이 지날수록 발길이 뜸해지는 것을 보는데 이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 년을 넘기는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은 빼놓지 않고 할머니를 찾아온 터였다.
그런 하나 남은 아들이 요 몇 달 발길이 뜸해지자 부쩍 더 떼를 쓰시는 할머니다.
"내가 가서 며느리들 괜찮은 자리 알아나 보고 올 테니 문 좀 열어봐"
할머니의 색 바랜 사각 방석이 들썩거린다.
몇 개월 전,
둘째 며느리가 홀로 요양원에 왔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남편이 더 이상 어머니를 찾아뵐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하나 남은 아들은 병에 걸렸는데, 간암이라고 했다.
할머니께는 아들이 멀리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드님이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 멀리 외국에 가게 되었답니다. 한참 걸릴 듯하니 너무 기다리지 마세요. 아드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다행히 아들의 출세 소식에 할머니는 조용히 그리움을 삭히는 눈치였다.
간암 말기로 할머니 곁을 지킬 수 없게 된 아들의 마음과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돌아서는 며느리의 뒷모습에 나는 그저 엷은 미소를 지어드리며 할머니의 안정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 이의 마지막 꿈이여.
과부 며느리들 시집 좀 보내게 해 줘.
얼마 후 아드님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신다.
끝까지 알려드리지 않을 생각이다.
언젠가 두 분이 만나게 되면 이해해 주실 거라 믿으면서....
오늘 밤 할머니 꿈에
네 분 며느리가 연지 곤지 찍고 나타나면 좋겠다.
그 모습 보시며 할머니께서 꿈에서라도 활짝 웃으시면,
꼭 그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