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라떼'

by 고재욱

"내가 광주여자 보통학교 나온 사람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네. 이제 병신이 다 되었는데 고마, 나를 어디다가 콱 버려."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이던 할머니가 두어 걸음을 걷다가 휠체어로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는 이제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화장실 사용이 어렵게 되어서 기저귀를 사용한다. 병실 앞에 할머니의 사진과 그 밑에 92세라고 적혀있는 숫자에도 할머니는 82세라고 우긴다.

할머니는 기저귀를 착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꾸만 기저귀를 엉덩이 아래로 내려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옷과 침대 시트가 젖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 할머니는 '라떼는 말이야'를 외친다.


할머니께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두 개 있는데, '내가 학께'와 '광주여자 보통학교'이다. 내가 '할 게'를 할머니는 '내가 학께'로 말씀하신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해드릴 때도, 내가 학께. 옷을 갈아입혀드릴 때도, 내가 학께. 뭘 해도 내가 학께라고 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그러는 것이란 걸 모두 알고 있다.


학교에 대해서는 할머니의 자부심이 한 몫한 것 같았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운 것을 내세웠는데, 배움이 오히려 할머니를 더 슬프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똑똑하다는 소릴 들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네. 고마, 나를 어디다가 콱 버려다오."


일거리를 자주 만드는 어르신을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힘 빠진 다리로 혼자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화장실이나 거실로 걸어 나올 때도 많았다. 놀라서 달려간 직원에게 할머니는 "내가 학께"라고 외친다. 그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이곳에 오기까지 몇 군데 요양원을 거쳤다고 한다.

할머니는 일명 요주의 노인인 것이다.


할머니가 처음 요양원에 입소했을 때 보호자인 아들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그의 눈에는 모두가 엄마를 학대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여러 요양원을 전전하는 어르신들을 자주 보는데, 그런 일은 대개는 노인의 문제라기보다 보호자 때문인 경우가 많다. 보호자 입장에서야 내 부모를 더 자주 봐주기를 원하겠지만 현실은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병을 앓고 있는 십수 명을 돌봐야 하기에 그런 일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가슴 아프지만 그게 현실인 것이다.


아들의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우리 엄마는요, 꼭 김을 드셔야 하고, 우리 엄마는요, 하루에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해야 하고, 우리 엄마는요, 우리 엄마는요......


그리고 그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엄마, 김 먹었어?

- 엄마, 운동했어?

- 엄마, 과일, 과일도 깎아줬어? 먹기 좋게 조그맣게 깎아 준거 맞아? 그냥 크게 준거 아니야?

- 엄마, 누가 괴롭히고 그런 거 아니지?

- 엄마, 엄마, 엄마,


할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항상 같은 말을 한다.

- 내가 학께, 내가 학께, 내가 학께.


할머니에게 여쭤봤다.

- 어르신, 김 좋아하세요?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아니, 나, 김 싫어.

- 그런데 왜 아드님은 그렇게 김을 드시라고 하시는 거예요?

- 몰라, 내가 학께.


아들은 매일 전화해서 할머니의 동정을 살폈다. 그런데도 매일 전화를 받는 할머니의 표정은 늘 어둡기만 했다.

나는 그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얼마나 요양원이 믿음을 주지 못했기에 저리 의심을 할까. 그동안 그가 본 요양보호사들의 모습이 어땠기에 저럴까.


다행히 할머니는 나를 무척 좋아해 주셨다. 출근을 하면 손을 잡고 볼을 비비셨다. 할머니 고향이 전라남도인데 고향사람이라고 반가워하셨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이다. 할머니가 나를 고향사람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할머니는 고향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앞에서는 전라도, 고향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내가 학께'를 되뇌던 할머니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 나가실 때는 병세가 위중하지는 않았는데, 며칠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금세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요양원에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녀들은 유품 정리를 위해 연락을 한다. 그러고는 끝이다. 의외로 그동안 부모님을 모셔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딱히 그런 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씁쓸할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학께, 할머니의 아들이 연락을 했다.

그동안 어머니를 잘 모셔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말이다.




할머니! 거기서는 '내가 학께' 외치지 말고 편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고백 한 가지 드립니다. 제 고향은 광주가 아니라 남해랍니다.

마지막 시간을 저와 보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쪼매만 기다리쇼~잉~ 하늘에서 고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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