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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20. 2023

아주아주 큰 까치에게 바라는 일

 몇 년 전 재개발구역에 처음 왔을 때다. 낙후된 지역의 골목길은 좁았고 길고 좁은 골목엔 치아 빠진 노인처럼 몇몇 집만 띄엄띄엄 남아있었다.

그 집들 대문이나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눈에 확 띄는 플래카드가 달려있었는데, 대개는 개발을 빙자한 약탈을 멈추라든지 죽어도 못 나간다든지 혹은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글씨는 붉은색이었다. 세 곳의 재개발현장을 보았는데, 골목길은 모두 비슷했다. 억울한 심정이 어디 장소를 가릴까.


 오전 열 시쯤이면 사무실 앞을 지나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할머니 연세를 감안하더라도 작은 체구에 굽은 허리다.

성남시 언덕은 경사도가 보통이 아니다. 젊은 사람도 두어 번은 허리를 펴야 한다. 험난한 길을 매일 오르시는 모습에 호기심이 들었다. 가볍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아래로 돌아가면 편하실 텐데 왜 매일 이렇게 힘든 길로 다니세요?"

"에휴, 집이 저 꼭대기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아직 이사하지 않은 세대인가 보다.

할머니께서는 며칠 전에 강제집행을 알리는 경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사할 집을 찾아다니시는 중이라고.   


"진작 이사했을 텐데, 저번에 부동산에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나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고 하신다. 더군다나 가해자를 찾았는데, 무단횡단으로 몰려서 보상 한 푼 못 받았다며 가슴을 치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이사할 곳을 정해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계약금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상대방이 집주인을 사칭했다는 것이다. 진짜 집주인은 임대를 낸 적도 없다고 했다나.

할머니께서는 한글을 모른다고 하셨다. 아파서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을 보러 다니기는 하지만, 계약서 쓰는 게 무섭다는 할머니다. 저리 가난한 사람들의 얼마 안 되는 돈까지 등 처먹는 자들에게 화 있으라!   

할머니께서 잔뜩 허리를 숙인 채 까마득한 언덕을 다시 오르신다. 금세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원주민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땅값은 오르고 새 아파트를 받게 되는 일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구역 내에서 아파트를 받는, 그런 자격이 주어지는 조합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집이나 건물을 소유한 이보다 세입자들이 훨씬 많다.

"이사 계획은 잡혔어요?"

"알아보고 있지만, 지금 가진 돈으로는 갈 데가 없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묻고 같은 대답을 수십 번 듣는다.

원주민 구천여 세대 중 아파트를 분양받는 삼천여 세대를 제외한 육천여 세대는 여기저기로 떠나야 한다. 그러면 이주민들이 몰린 근처 지역은 임대료가 오르고 소문은 갑자기 오른 임대료를 자꾸 부풀리며 퍼져 나갈 것이다.  


물론 재개발구역에 남은 이들 중에 사면초가에 처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정말 이사할 돈이 없어 버티고 있다면 그나마 해결방법을 구할 수 있겠지만, 다른 목적이 있다면 지루한 소모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재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이 10년을 훌쩍 넘기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들은 또 그분들대로의 이유가 있겠지.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다만, 그럴수록 더 힘겨워지는 쪽이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겨워진 쪽의 상황은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가난한 이들은 어디로도 갈 곳이 없어진다.


어렸을 때, 아마 예닐곱 살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안방에 앉은 내 앞니에 실을 묶고 방문고리에 실 끝을 매달았다. 억지 눈물을 짜내고 머리를 흔들어 보아도 어머니는 요지부동, 빙긋이 웃으실 뿐이다. 그러고는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내 이마를 붙잡고는 밖에 있는 누나에게 신호를 준다.

"어서 문 열어라."

아야! 소리도 내기 전에 이빨이 달려 나간다. 눈물이 맺히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마당에 선 나는 손톱보다도 작은 앞니를 집어 들고 힘껏 지붕 위로 던졌다. 까치가 물고 가서 새 이로  바꿔준다고.

나는 까치가 빨리 새 이빨을 가져다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까치는 며칠 동안이나 지붕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얼른 이빨을 물어가지 않고 높은 나무에서 울기만 하던 까치가 나는 원망스럽기만 했다. 얼마 후 작고 하얀 새 이빨이 생긴 일은 말해 무얼 할까.

빠진 앞니를 지붕 위에 던진 후에 새 이가 생겼듯이, 사람들이 빠진 휑한 골목길에도 까치가 얼른 날아와주면 어떨까. 빈 집을 물어가고 새 집을 가져다주는 까치가.


오래전에 까치가 헌 이빨을 물어가지 않고 애를 태웠던 것처럼, 모습을 감춘 채 저 멀리서 소리만 지라도 더 이상 원망은 안 할 것 같다. 까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다녀간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아주 큰 까치는 더욱더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매일 사무실 앞을 지나다니는 할머니께서 월세 계약하는 날에 동행을 부탁하셨다. 아무래도 큰 새가 프린터 된 티셔츠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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