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요일’에 태어났나요?

태국식 작명법의 신비함

by Jade

오늘도 치앙마이의 한 카페에 앉아 《I May Be Wrong》을 읽고 있다. 저자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뒤로하고 태국 북동쪽의 수행 공동체에서 ‘포레스트 몽크(Forest Monk)’가 되었다. 일반적인 수도승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 알아보니, 숲에서 은둔하며 훨씬 금욕적인 수행을 하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일정 기간의 수행을 마친 뒤, 저자는 수습 수도승으로서 공동체에서 불릴 법명을 받는다.


Natthiko(나티코), ‘지혜 속에서 자라는 자’.


이름 자체가 저자의 인생 궤적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키가 크고 푸른 눈을 가진 창백한 서양인이 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거두고도 늘 결핍과 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찾아 머나먼 태국에서 고행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장면이 겹쳐지며, 서양인들이 불교에 품는 호기심과 경외가 새삼 흥미롭게 느껴졌다.


오늘 읽은 챕터에서, 불교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도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저자가 스승에게 이름을 받는 방식이었다. 모든 수도원에는 명부가 있고, 태어난 요일에 따라 지을 수 있는 이름들이 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스승은 저자가 태어난 요일에 맞춰 가장 적절한 이름을 골라주었다. 이 이야기를 읽자 자연스럽게 4주 전, 왓 씨쑤판 사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나라를 가든, 성당이든 사원이든 소원 비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소원을 빌고 싶다고 졸랐다. 재작년에 방문한 말레이시아 페낭의 극락사에서는 소원의 종류에 따라 색깔이 다른 띠지를 팔았기에, 여기도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판매처로 향했다. 태국어를 번역기에 돌려가며 소원의 종류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을 때, 직원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생일이 무슨 요일인가요?”


우리 가족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태어난 날짜도 아니고, 요일이라니. 요일은 해마다 바뀌는 것 아닌가? 우리는 잠시 뒤로 물러나 이 질문의 의미를 추리했다. 그만큼 ‘태어난 날의 요일’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결국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아들이 화요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들은 요일을 알게 된 신기함보다, 이제야 소원 종이를 살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커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종이는 이름과 생년월일만 적을 수 있을 뿐, 소원 내용을 쓰는 칸이 없었다. 아들은 막무가내로 여백에 소원을 적었다.


‘제발 올해 한자 3급까지 통과하게 해주세요.’

부처님이 아들의 소원을 무사히 접수하셨을까.

그땐 그저 작은 해프닝으로 넘겼다. 그런데 오늘 책에서 태국인의 작명 방식을 읽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태국인들에게 태어난 요일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


태국 불교는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힌두 점성술에서는 요일마다 그날을 관장하는 수호신과 행성이 있다고 믿는다. 태국인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요일을 안다는 것은, 평생 자신을 지켜줄 기운을 아는 일에 가깝다. 요일마다 다른 모습의 부처상이 존재하고, 행운의 색 또한 다르다. 중요한 날에는 자신의 요일에 해당하는 색의 옷이나 소지품을 챙기기도 한다. 전 국왕 라마 9세의 상징색이 노란색이었던 것도, 그가 월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원 종이에 굳이 소원의 내용을 적을 필요가 없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태국인들에게 요일을 묻는다는 것은, “당신은 어떤 기운을 타고났으며, 어떤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 있나요?”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적기보다는, 타고난 기운과 복을 믿고 따르는 쪽에 더 가까운 태도다. 문득 우리 가족은 각자 어떤 기운을 타고났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월요일의 사람’이었다. ‘평화를 주는 부처’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운의 색은 노란색. 다정하고 세심하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설명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목요일의 사람’인 남편은 ‘명상하는 부처’를 따른다고 했는데, 평소 명상과는 거리가 먼 남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밌었다.

아들은 ‘화요일의 사람’이었다. 옆으로 누워 평온하게 휴식하는 와불이 그의 수호 부처라고 한다. 어디서나 잘 뒹굴며 눕는 모습이 아들과 닮아 있어 웃음이 터졌다. 겉으로는 편안하게 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거만한 거인을 압도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는 와불의 설화는 아이가 딱 좋아할 이야기였다. 다음 주 방콕에 가면 왓포 사원에 꼭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대한 와불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마음속 어딘가에 저만큼 큰 부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아이가 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있지 않을까. 왓포에서 108개의 시주용 발우에 동전을 넣으며 행운도 빌어볼 생각이다. 동전 하나를 넣을 때마다 아들은 무슨 소원을 빌까. 또 한자 시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치앙라이 사원에서는 몇 번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소원을 빌어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내주는 영어 시험에 꼭 합격해서, 내년 겨울에 또 영어 캠프 가게 해주세요.”

“그건 또 너를 위한 소원 아니야?”

“엄마를 위한 소원이지. 엄마도 영어 캠프 또 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 능청스러운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화요일에 태어나 와불의 보호를 받는 아들에게는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이름이란 좋은 의미를 담아서 짓는 거니까, 아이의 장점을 떠올려봤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이.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는 아이.

그리고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이.

아이의 성격을 설명하며 Gemini에게 아이의 탄생 요일에 맞는 태국식 이름을 몇 가지 추천해달라고 했다.


아룬(Arun)은 ‘새벽’이라는 뜻으로, 매일을 시작하는 빛 같은 이름이다.

마나(Mana)는 ‘끈기’를 뜻해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티띠(Thiti)는 ‘지혜롭게 머무는 자’, 단단한 평온함을 떠올리게 한다.


소리만 놓고 보면 Arun이나 Mana가 더 친숙하다. 하지만 의미를 곱씹을수록 Thiti에 마음이 간다. 다사다난한 삶의 희노애락 속에서도 지혜롭게 머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치앙마이의 느린 공기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말하는 ‘내려놓음의 지혜’에 내가 잠시 물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들은 언제나 그랬듯 내가 고른 이름 대신 다른 걸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Arun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요일이나 이름보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통해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Arun)’도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마음(Mana)’도 결국 잘 흔들리되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있어야만 피어날 수 있으니까. 치앙마이에서의 이 시간은, 아마도 그 마음을 천천히 길러주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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