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에서 온 엄마, 화성에서 온 아들

혹은 그 반대.

by Jade

“Three, zero, six. Card key, please.”

호텔 로비에서 아이와 그랩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앳된 여자아이가 또박또박 영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들과 같은 차량을 타고 캠프에 가는 동갑내기 친구가 높은 프런트 데스크를 올려다보며 직원에게 카드키를 받고 있었다. 카드키를 건네받고 돌아서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영하고 방에 올라갔는데 엄마가 없어서요. 그래서 내려와서 카드키 받아가는 거예요.“

아이 얼굴에는 내가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는, 그리고 성공적으로 실행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야무지구나! 좋은 생각이야.“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화살이 아들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유난히 야무져 보이는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거나 그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아들을 비난할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들에게도 이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이렇게 대처하면 된다고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너도 엄마가 방에 없으면 연재(가명)처럼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된다고?”

“뭐하러 그래. 전화하면 되지.”

“휴대폰이 없잖아.”

“친구한테 빌려서 하면 되지.”

“그게 아니라, 방 앞까지 왔는데 엄마가 없다고. 친구들도 다 들어갔을 거잖아.”

“친구한테 가서 휴대폰 좀 빌려달라고 하면 되지.”

“(입술을 깨물으며) 친구들 다 들어갔다고.”

“재윤(가명)이 312호야. 거기 가면 되지.”

거기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엄마가 상황을 다 정해줬잖아. 왜 자꾸 안 되는 상황만 가져오는 거야? 어? 엄마가 준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 내려와서 카드키 받아가라고! 넌 항상 그게 문제야!”


사실 아들과의 대화가 종종 이런 식으로 흐를 때가 많았다. 어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들 녀석은 순순히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는 자꾸 불가능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우회로를 제시하며 대화를 산으로 끌고 갔다.

“7시까지 식당에 가야 해.”

“만약에 못 가면?”

“예약해서 가야 돼.”

“택시가 안 잡히면?”

“미리 나가야지.”

“그래도 안 잡히면?”

그때마다 나는 도무지 아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속만 답답해진다. 커다란 벽이 다가와 부딪히는 기분이다. 결국 어김없이 폭탄에 불이 붙는다. 3, 2, 1, 펑!

“왜 자꾸 부정적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이제 조용히 해. 말 시키지 말고.“

엄마가 하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매우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남의 딸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괜히 유행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내 속에서 나왔어도 결국 여자인 엄마와 남자인 아들은 외계인급의 의사소통 장애를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걸까? 택시 안에서 자기가 던진 개그에 혼자 빵 터져서 깔깔대고 있는 아들 녀석을 흘겨볼 뿐이다.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캠프에 보내다 보니 이렇게 남의 자식과 비교해서 내 자식이 어딘지 부족해 보이고 못나 보이는 상황이 왕왕 생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내 아들이 기특해 보이는 순간도 분명 찾아온다. 살짝 눈높이를 낮추기만 한다면, 아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치앙마이 호루몬'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도보 20분 정도 거리였다. 아이는 걷기 싫다며 택시를 타자고 했다. 내가 택시비 아끼는 대신 캠프에서 과자 사 먹으라고 10바트를 준다고 했더니 “그럼 무조건 가야지”라며 냉큼 따라나섰다. 그러면서 “10바트 왜 주는 거야?”를 계속 물었다. 그만 좀 하자, 이 녀석아! 아들은 엄마의 선택적 무응답에도 아랑곳없이 재잘거렸다. 갑자기 생긴 10바트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형은 200바트를 가져와서 그날 간식 사 먹는 데 다 썼다더라, 내 친구는 엄마한테 “아잉~” 애교를 한 시간 동안 부려서 100바트를 받았다더라, 또 누구는 형들한테 돈을 빌려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더라 등등. 그동안 다른 친구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쉬는 시간에 무엇을 사 먹고 있었는지 자세히 지켜본 모양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다른 친구들 아이스크림 사 먹을 때 너도 먹고 싶지 않았어?”

“먹고 싶었지.”

“근데 왜 엄마한테 간식 사 먹을 돈 달라고 안 졸랐어?“

“엄마, 내가 엄마랑 8년을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뭔데?”

“엄마는 떼쓰면 더 안 해준다는 거야.“

아이의 말에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통통하고 말랑한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엄마에 대해 잘 알고 있네. 엄마가 좀 그렇긴 해.”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았어?”

“그래도 대견하긴 하다. 먹고 싶은데 떼 안 쓰고 참은 거. 지금까지 잘 참았으니까 엄마가 이번 주에는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30바트로 올려줄게.“

”아이스크림 25바트인데 왜 30바트 줘?“

”그건 특별 보너스! 과자도 하나 사 먹어!“

사실 캠프 1주 차가 지나고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간식을 사 먹는다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과자가 보통 5바트 정도밖에 안 한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정말 딱 5바트만 들려서 보냈다. 하지만 아이는 5바트만으로도 뛸 듯이 기뻐했다. 캠프에서 돌아오자마자 5바트짜리 과자 중에 자기는 맛도 있으면서 양이 제일 많은 토마토 맛 과자를 골랐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마치 천재적 두뇌를 활용해 최적의 선택을 한 것처럼 으스대는 모습이 너무 웃기면서도 대견했다.


나는 종종 아이를 누군가와 비교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자기중심이 잘 잡혀 있는 단단한 사람이다. 누가 과자값으로 10바트, 50바트, 100바트를 쓴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친구들이 교실에 모여 로블록스에서 어떤 게임을 했는지 얘기할 때도 아들은 집에 와서 자기도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단지 몇 달 전에 한 번, 자기는 게임 언제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상의한 끝에 1년 뒤에 닌텐도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뒤로 아들은 친구들의 게임 무용담을 내게 전해주긴 하지만 더 이상 언제 게임을 할 수 있냐고 묻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 끼어서 자기도 게임 얘기를 하고 싶을 법도 한데, 잘 참는 아이가 대단해 보일 정도로.


여전히 우리는 화성과 금성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헤매겠지만, 뭐 어떤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린 서로의 궤도를 관찰하며 '통역법'을 익혀왔다. 몸의 탯줄은 사라졌어도 아이는 이미 나를 온전히 꿰뚫어 보고 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단단한 내면을 발견하며 함께 자라고 있는 중이다.




Gemini와 ChatGPT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토대로 봤을 때 아이와 저는 각각 어떤 행성에 부합하는지 알려달라구요. 그런데 두 인공지능의 답은 정반대였습니다. Gemini의 논리를 읽어보면 제가 금성인, 아이가

화성인인거 같고, ChatGPT의 의견을 보면 또 제가 영락없는 화성인, 아이는 금성인 같아요.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의 의견이 문득 궁금하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목소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