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ay Be Wrong
Ever since I was little, I’d had a voice
inside me whispering I wasn’t good
enough. A voice that grew a lot louder
whenever I did something awkward or
stupid, like if I misunderstood something or failed. And fell silent whenever I did
something good(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는 '너는 충분하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무언가 어색하거나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를 때면 그 목소리는 기다렸다는 듯 더 크게 울려 퍼졌고, 반대로 내가 잘해냈을 때는 차갑게 침묵했다).
이 구절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지독한 목소리가 바로 나 자신인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향하던 그 가차 없는 검열의 칼날을, 이제는 여행 중인 내 아이에게 똑같이 겨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행 중 아이와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매일의 태도에 따라 'Great'이나 'Excellent'를 받으면 여행 끝에 200바트의 용돈을 주는 규칙. 'Good job' 이하로 떨어지면 국물도 없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했고, 덕분에 나의 여행은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 관계는 겉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웠다. 하지만 오늘, 책의 한 페이지를 읽다가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한 이물감을 느꼈다. 순간, 매일 밤 나를 올려다보며 "엄마, 오늘 나 어땠어?"라고 묻던 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아이는 행동의 판단 기준을 자신의 내면이 아닌, '엄마의 입술'에 두고 있었다. 나의 평가에 따라 아이의 하루는 '성공'이 되기도, '실패'가 되기도 했다. 내가 편안함을 누리는 동안, 아이는 혹시 자기 안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을 조용히 쌓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음이 요동쳤다.
오늘 저녁에도 아이는 어김없이 물었다.
“엄마 나 오늘 어때?”
좀 전 영어공부를 할 때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을 해서 한 차례 혼이 난 뒤라 아이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꺄졌다. 아이를 붙잡고 서둘러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가 네 행동을 지적한다고 해서 네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야. 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엄마는 네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지, 네 존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나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보았다. 엄마의 평가에 예민하게 촉을 세우느라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을 긴장과 응어리를. 저자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괴롭힐 “넌 충분하지 않아.”라는 차가운 목소리의 씨앗을 내가 직접 뿌리고 있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여행은 아직 3주가 남았고, 우리가 세운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다. 내가 건넨 위로가 아이의 불안한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았을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먼저 피어나, 아이에게로 조용히 옮겨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어미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불안을 품은 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이 고민이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위로를 얻는다. 누구나 마음속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흔들리는, 연약한 아이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이제부터라도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멈춰 서는 태도가, 나와 아이를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지 않을까. 비록 그 걸음이 아주 더딜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