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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03. 2024

물레질과 평균의 종말

올해 5월에 경기도 상상캠퍼스에서 아이는 5분 정도 물레체험을 했다.


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부드럽고 촉촉한 점토의 감촉이 좋다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물레 체험을 또 하게 해주고 싶던 차에

발리 사누르 지역에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이 두 곳이나 있어서 그중 한 곳에 수업 예약을 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고 1:1로 이루어졌다.

물레체험을 시작할 때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했다.


틀려도 괜찮아. 물레가 멈추기 전까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어.


아이는 그림 그리는 데 자신이 없다.

틀릴까 봐 조심스럽고

그래서 그림을 자주 그리려고 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새로운 걸 시작할 때도 틀릴까 봐 불안해하는 편이다.

그런 아이에게 딱 필요한 말이었다.

틀려도 돼, 잘못해도 돼,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


물론 첫 번째 수업에서 아이는 불안을 모두 내려놓지  못했다. 오늘 두 번째 물레질을 할 때만 해도 손끝에 자신이 없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하는 듯했다. 선생님의 손길에 의존했다. 컵을 하나 완성하고 시간이 남아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더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해서 좀 의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한 번 더 해보라고 부추겼다. 두 번째는 항아리 모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나를 완성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조금 익숙해져서인지 이번에는 손끝에 자신감이 붙었다. 선생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예쁜 꽃병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아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기가 생각한 모양과 비슷하게 나왔나 보다.


나는 이런 류의 직업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일이 자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기 때문에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그런 일을 갖기를 바랐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아이가 커서 목수가 돼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배우라는 직업도 염두에 두었다.

스타 배우가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배우말이다.

뭐든 자신의 손으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삶에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다.

평생을 해도 모자라다고 느낄 만큼.

한 번도 회사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본 적은 없다. 물론 많은 부모들처럼 아들이 커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 본 적도 없다.

내 생각은 이런 면에서 확고하다.

다행히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영유나 학원 뺑뺑이가 아니라 그 돈을 모아

발리에서 80일 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한 달 전쯤 트렌드 변화에 대한 책을 많이 쓴 송길영작가의 영상을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내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준 느낌이었다. AI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말했다.


예전에는 ‘그냥 가운데 있어‘였어요.
지금은 가운데 있으면 그냥 죽어요.


AI는 미디엄 밸류, 즉 평균치를 가져간다고 했다. 일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가운데 값에 대한 데이터가 많을 것이고, 파이가 가장 크니까 그 자리를 대체할 때 경제적 이익도 제일 크겠지. 문득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에 따르면 인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평균’이라는 기준을 적용해 이상적인 존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평균에 도달하느냐 도달하지 못하느냐, 그리고 더 나아가 얼마나 평균을 웃도는지에 따라 계층을 나누어 왔다. 그래서 적어도 한 집단의 ‘평균’에 속하는 건 매우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체면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그 ‘평균’이라는 기준점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해 온 것일 테다. 어른들이 그토록 ‘공부’를 강요했던 이유도 대학이라도 나와야 적어도 ‘남들처럼’은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AI로 인해 공고하던 ‘평균’이라는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4차 산업혁명이나 미래세상에 대한 영상이나 책을 많이 찾아봤는데 내 마음속에 점차 형태를 갖추어 가던 생각이 ‘덕후가 성공한다.’였다. 이번에 본 송길영 작가 영상에서 그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점점 서비스라는 것도 양극단으로 가고 있다며, 완전 자동화와 극대화된 환대(hospitality)로 나뉘고 있는 현상을 언급했다. 누구나 쉽게 배워서 제공할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그만큼 경쟁자도 몰리기 때문에 버티기가 쉽지 않다. 깊이 있는 지식과 오랜 경험에 의해 체득된 기술은 그만큼 진입장벽도 높고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송길영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쉬운 걸 하면 안 된다고, 그럼 어려운 걸 해야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인공지능으로 인해 소득은 양극화될 것임이 틀림없다. 결국 대량 실업으로 인해 기본 소득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이 정말 최저의 생계비를 의미할지, 여가를 비롯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비용일지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 인공 지능 발전의 열매를 일부 최상위 층만 따먹게 할 수는 없다. 지구 행성의 똑같은 입주민으로서 우리는 똘똘 뭉쳐서 우리의 몫을 요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야만 한다. 노동의 종말이 찾아왔을 때,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적어도 내 아이는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심도 있는 취향과 지식을 가진 유일무이한 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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